친인척과 계약한 게 아니라면…"사해행위 몰랐을 것, 계약 유효"

전남편 채무초과 상태서 유일한 재산 부동산에 근저당권 설정
전처, 근저당권자에 소송…대법 "선의의 수익자로 볼 여지 충분"

ⓒ News1 DB

(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 계약 상대방의 재산 상황을 알 수 있는 특수한 관계에 있지 않거나 계약조건이 정상범위 내에 있었다면 상대방의 사해행위(재산 처분을 해 채권 회수를 어렵게 하는 행위)를 모르고 거래한 것으로 볼 수 있어 계약은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A 씨가 B 씨를 상대로 낸 사해행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에 환송했다.

A 씨는 2014년 남편 홍 모 씨와 이혼하고 재산분할을 받아 홍 씨로부터 4억3900만 원의 채권을 갖게 됐다. 2014년 3억2700여만 원의 채권이 남았는데, 홍 씨는 2015년 파주의 한 땅을 6600만 원에 산 뒤 단독주택을 지었다. 그는 2022년 B 씨와 채권최고액 2억4000만 원의 근저당권 설정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또 다른 근저당권 설정자의 신청으로 부동산이 경매에 넘어갔는데, B 씨에게 1억5500여만 원이 배당됐다. 이에 A 씨는 "전 남편이 사해행위를 한 것"이라며 B 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 2심은 부동산에 대한 여러 차례 단기간 내 말소된 근저당권 기록 등으로 홍 씨가 채무초과 상태인 것을 충분히 알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A 씨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수익자가 채무자와 친인척 관계 등 채무자의 재산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특수한 관계에 있지 않고 거래관계가 그 내용과 경위 등에 비춰 정상적인 범위 내에 있고 현저히 비합리적이거나 이례적인 사정이 없는 경우 등을 수익자가 증명하면 수익자가 채무자의 사해행위를 몰랐다고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B 씨와 홍 씨가 친인척 관계 등 재산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특수한 관계가 아닌 점 △근저당권 설정계약의 내용과 경위가 현저히 비합리적이거나 이례적이라고 볼 사정이 없는 점 등을 볼 때 계약이 사해행위가 된다는 점을 알지 못한 선의의 수익자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비록 부동산에 여러 건의 근저당권 설정등기가 마쳐졌다가 단기간 내 말소된 내역이 존재하고 A 씨가 근저당권자들에 대해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제기했었으나, 소 제기 사실이 등기부에 나타나 있지 않은 이상 B 씨가 홍 씨의 채무초과 상태를 의심할 만한 사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ho86@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