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락치' 시켜 민간인 불법도청한 국정원 직원들 2심서 무죄

동료 시켜 대학생 조직 녹음…1심 징역형 집행유예
2심 "제보자 진술 신빙성 부족…미필적 고의 없어"

국가정보원 전경 2013.6.24/뉴스1

(서울=뉴스1) 홍유진 기자 = 박근혜 정부 시절 민간인들을 상대로 불법 도청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받았던 국가정보원(국정원) 직원들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정재오 최은정 이예슬)는 12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국정원 직원 최 모 씨(48)에게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한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직원 3명도 모두 무죄를 받았다.

이 사건은 국정원이 지난 2007년 한 대학교 학생조직에서 활동하는 제보자 A 씨를 속칭 '프락치'로 포섭해 '지하혁명조직'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최 씨 등은 2014년 10월 A 씨를 처음 만난 뒤 이듬해 3월 유급정보원으로 채용했다. 이후 A 씨가 속한 대학교 학생조직의 윗선인 상부 조직의 존재와 대공 혐의점 유무를 밝혀내기 위해 내사에 착수했다.

최 씨 등은 2015년 7월 A 씨로부터 지하혁명조직 소속 선배에게 가입을 권유받고 곧 '총화'(지하조직 활동 적격성 확인 절차)를 하게 될 것 같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들은 총화 장소였던 충남 서산의 캠핑장을 미리 답사하면서 캐러밴 내부 구조를 확인한 후, 녹음장치가 은닉된 소화기 모양의 비밀녹음장비를 제작해 대학생들의 대화를 5시간가량 녹음했다. 또 캠핑장 부근에 대기하며 오가는 시민들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국정원은 녹음에 동의한 A 씨를 제외한 다른 일행의 대화를 감청하는 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반된다는 점을 알고도 사전에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지 않았고, 긴급 감청에 따른 사후 허가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이에 검찰은 최 씨 등 수사관 2명과 이들의 보고를 받은 윗선 2명을 함께 재판에 넘겼다. 이 사안은 제보자 A 씨가 국정원에 협조한 프락치 활동 사실을 폭로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최 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나머지 직원 3명에 대해서도 모두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 형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국정원 내부에서 주도적으로 계획을 세웠고, 직접 비밀녹음장치를 설치해 녹음을 실행했다"며 "비밀녹음장치가 무작위로 타인의 대화를 녹음할 수 있단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했음에도 제거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 미필적으로나마 그 고의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핵심적인 유죄 증거였던 A 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정원에서 A 씨가 더 이상 정보원으로서 가치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해 관계를 끊자, A 씨는 변호사와 기자들을 만나 폭로하겠다는 문자를 보내고 정보원 활동 대가로 10억을 요구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A 씨가 양심의 가책을 지고 국정원에 정보를 넘겼음에도 결국 유급 정보원 지위와 보수를 잃게 되자 보복 목적으로 허위 진술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제보자 진술만으로 합리적 의심 여지없이 공소사실을 확신하게 할 증거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항소심 재판부는 최 씨 등이 '민간인들의 사적 대화를 녹음할 미필적 고의가 없었다'는 주장도 받아들였다. 대공 수사를 위해 '총화 과정'을 녹음하려던 거였기 때문에 조직원이 아닌 일반인들의 사적 대화까지 녹음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A 씨는 이미 총화 녹음을 위해 캐러밴 특정 호수를 빼놨고,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할 수 있었다"며 "(피고인들은) 일반인이 해당 캐러밴에 들어가서 대화한다는 걸 상정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cyma@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