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양승태·고영한·박병대 '무죄'…5년 만에 결론(종합)

법원 "임종헌 위법 행위 일부 인정…공모관계 인정 안돼"
양승태 "당연한 귀결, 재판부께 경의"…검찰, 항소 검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사법농단 혐의'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 2024.1.26/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서울=뉴스1) 정윤미 박승주 이세현 서한샘 기자 =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정점 양승태 전 대법원장(76·사법연수원 2기)이 재판에 넘겨진 지 5년 만에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부장판사 이종민 임정택 민소영)는 26일 오후 양 전 대법원장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고영한(69·11기)·박병대(67·12기) 전 대법관 역시 무죄를 받았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9월 결심공판에서 양 전 대법원장 징역 7년, 박 전 대법관 징역 5년, 고 전 대법관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 취임 이래 임기 6년간 고·박 전 대법관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에게 법원의 위상 강화와 이익 도모를 위해 각종 반헌법적 구상을 보고받고 승인하거나 직접 지시한 혐의 등으로 2019년 2월 구속기소 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각종 재판에 부당 개입하고 대내외적 사법부 비판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법관 블랙리스트를 작성, 불법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47개 혐의를 받는다.

공소장에 따르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공무상 비밀누설·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직무 유기·위계공무집행 방해·공전자기록 위작 및 행사·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국고 손실 등 죄가 적용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왼쪽부터), 고영한 전 대법관, 박병대 전 대법관이 4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9.9.4/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1심 "임종헌 직권남용 일부 인정…피고인들과 공모관계 불인정"

부당 개입 혐의를 받는 재판은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휘 확인 소송 등이다.

재판부는 임 전 차장 등 하급자들의 재판 개입 행위는 대부분 직권남용죄 등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무죄 판단했다. 다른 법관 재판에 개입할 권한 자체가 없기 때문에 권한을 남용했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일부 직권남용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검찰이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들과 공범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헌법재판소 상대로 한 시도에 대해서는 일부 직권남용이 인정됐다. 파견 법관을 통한 헌재 내부 사건정보 및 동향 수집, 법률신문에 헌재 부정적인 내용의 대필 기사 게재,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결정 사건 일부 혐의 등이다.

다만 이러한 혐의들은 임 전 차장 등에 의해 이뤄진 것일 뿐 피고인들이 공모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나왔다.

비판 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법관 블랙리스트' 일명 '물의야기 법관' 보고서 작성 및 지시 혐의는 인사상 불이익을 준 게 아니라 재량껏 인사권을 행사한 것으로 '일반적 직무권한'에 해당하지만 직권남용이나 의무 없는 일을 한 것은 아니라고 봤다.

국제인권법연구회와 그 소속 인권과사법제도모임(인사모) 와해 시도를 위한 각종 보고서 작성 지시 혐의는 임 전 차장 등이 직권을 남용해 의무 없는 일을 한 것은 인정됐다. 다만 피고인들이 공모한 증거가 없어서 직접 가담했다 볼 수 없다고 했다.

이 밖에도 각급 법원 공보관실 예산 관련 허위공문서 작성 등 일부 혐의에 대해서도 임 전 차장 등의 직권남용이 인정됐지만 피고인들과 공모 사실은 입증되지 않았다면서 무죄가 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검찰의 피의자 신분 소환조사를 앞두고 서울 서초구 대법원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입장발표를 하기 전 굳은표정을 짓고 있다. 2019.1.11/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5년 재판 끝 무죄 양승태 "당연한 귀결…재판부께 경의를"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오후 선고를 마치고 취재진에게 "당연한 귀결"이라며 "이렇게 명쾌하게 판단해 주신 재판부께 경의를 표한다"고 짧게 소회를 밝혔다.

'법정 판단과 별개로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하실 말씀 있느냐', '검찰 수사가 무리했다는 비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 이어진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박 전 대법관은 '무죄 판결에 대한 입장', '1심 재판 마친 소감', '법원 구성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 등 어떠한 물음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고 전 대법관은 취재진을 피해 법원을 빠져나갔다.

이날 1심 선고는 오후 2시부터 시작해 10분 휴정을 포함해 6시30분경 종료됐다. 선고만 4시간20분 가까이 소요돼 역대 최장 기록을 갈아치웠다.

양 전 대법원장이 기소된 지 약 4년11개월 만에 나온 결론이다. 2017년 3월 판사 출신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표 사건으로 처음 세상에 알려진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6년10개월만, 2018년 6월 서울중앙지검이 수사에 착수한 지 5년6개월만이다.

검찰은 이날 "1심 판결의 사실인정과 법리 판단을 면밀하게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younm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