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날 D-1…이재용 재판의 키워드 '추단'
25일 오후 2시30분 1심 선고
- 장은지 기자
(서울=뉴스1) 장은지 기자 = 이재용 재판에서 자주 등장한 단어는 '추단(推斷)'이란 용어다. 재판과정이나 판결문에도 나오는 법률용어로, '추측하여 미루어 판단한다'는 뜻이다. 직접증거가 나오기 힘든 뇌물 혐의 재판에서 정황증거 등으로 혐의를 입증하려는 검찰 측과 변호인측이 매번 대립하는 지점도 바로 '추단'에 관한 것이다.
이재용 재판도 마찬가지였다. 약 5개월간 진행된 53차례의 공판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제시하는 각각의 정황에 대해 삼성 측 변호인단은 "추측과 비약"이라고 맞섰다. 결정적 증거가 없다보니 특검 측은 "이례적이었다", "추측할 수 있다", "정황에 비춰보면" 등의 표현을 자주 사용하며 재판부를 설득하는데 공을 들였다.
지난 7월19일 열린 42차 공판이 대표적이었다. 특검 측은 이날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안종범 수첩은 대통령과 이재용 사이에 있었던 추정과 추단의 근거가 되는 간접증거"라며 "대통령과 이재용이 독대에서 있었던 일을 증명하는데 있어 두 사람 모두 증언을 안하고 있으므로 간접사실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안종범 수첩에 의해 인정되는 사실은 이재용과 대통령 사이에 있었던 일을 추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간접증거다"라며 "최태원 SK 회장 횡령사건과 오리온, 대상, 한화, 한보, 두산 등 과거에 있었던 기업형 조직범죄에 있어서 대기업 회장들의 지시사실에 대해 과거 재판부도 모두 '추단'에 의한 입증을 인정했다"고 강조했다.
삼성 측 변호인은 "안종범은 삼성의 청탁을 받지 않았고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증거도 전혀 없다"며 "대통령과 이재용 간 뇌물수수 대가합의를 추단할 수 있는 증거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법정에서 제시된 2차 독대 이틀후인 2015년 7월27일자 '안종범 수첩'에 따르면, '삼성, 엘리엇 대책, M&A 활성화 전개, 소액주주 권익, Global Standard(글로벌 스탠더드), 대책 지속 강구'등의 단어가 독대 이틀 후 수첩에 적혔다. 그러나 제시된 수첩에는 '요구'나 '합의'에 대한 메모는 없었다. 안 전 수석은 7월4일 35차공판 증언대에 올라서도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공정거래위원회의 삼성SDI 처분주식수 축소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등 특검이 제기한 의혹 대부분에 대해 "대통령으로부터 관련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안 전 수석은 "대통령이 말이 빠른 편이라 수첩에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 발언을 그대로 적었다"며 "최순실, 정유라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고 박 전 대통령이 말한 적이 있었다면 내가 받아 적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등 특정 기업을 도와주라는 지시나 질문도 받은 적도 없다"고 덧붙였다. 안 전 수석은 "삼성물산 합병에 대해 대통령으로부터 질문이나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며 "저는 청와대가 뭘 하라고 지시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어 개별 기업 사안에 개입하지 말라고 얘기한다"고 증언했다.
특검이 이 부회장의 뇌물죄를 입증하는 주요 증거로 제시한 '안종범 수첩' 63권은 결정적 증거로 꼽혀왔다. 그 수집 경위에 대한 삼성 측의 문제제기는 차치하고서라도 그 내용에 대한 공방이 치열했다. 부정청탁과 대가관계 합의가 있었다고 특검이 주장하는 대통령과의 세차례의 독대에는 배석자가 없었기 때문에 안종범 수첩에 대한 증거능력 공방은 뜨거울수밖에 없었다. 독대를 녹음·녹화한 파일이 없고 독대 당사자인 대통령과 이 부회장 모두 독대에서 부정청탁 등이 없었다고 혐의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애초에 직접증거는 있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간접증거일수밖에 없는 안종범 수첩의 증명력에 대한 공방은 재판 초기부터 끝까지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앞서 7월6일 36차 공판에서 김진동 부장판사는 안종범 전 수석의 증인신문을 마무리한 후 "안종범 수첩 기재내용과 같이 대통령과 이재용 피고인이 개별 면담에서 '말'을 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진술증거로서의 증거능력을 인정 못한다"며 "수첩의 기재가 존재한다는 자체에 대한 간접사실로서의 정황증거로는 채택하겠다"고 밝혔다.이는 2015년 7월25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이뤄진 독대 이후 작성된 안종범 수첩의 '메모'와 관련, 현장에 기록자인 안 전 수석이 없었으므로 그의 메모 내용이 곧 독대 대화내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안종범 수첩'을 유력한 정황증거로 보고 앞으로 심리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통상적 뇌물 사건의 대부분은 뇌물을 준 쪽(공여자)의 진술이 직접 증거로 작용해 받은 쪽을 처벌하는 구조를 보인다. 그러나 이 사건에선 뇌물공여 혐의를 받는 쪽이나 수수 혐의를 받는 쪽 모두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이경우 증거를 통해 의심할 여지가 없이 뇌물공여와 수수가 이뤄졌다는 것이 입증돼야 유죄가 선고된다. 직접증거든 간접증거든 증거들이 가지는 증명력에 따라 판결의 향방이 정해진다. 이번 사건의 경우 당사자들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들로만 공방이 진행되고 있어 특검이 제시한 '안종범 수첩' 등 간접증거들의 증명력이 유무죄를 가르게 된다.
법정에서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고 공정한 재판을 실현해야 한다는 형사소송의 대원칙인 공판중심주의에 따라 유무죄는 법정에서 가려진다. 법관은 공판 심리에 의해서만 유죄의 심증을 형성해야 한다.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을 법정에서 번복했을 때도 진술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자료가 있지 않은 한 재판부는 법정 증언에 더 무게를 둔다. 이 부회장은 법정에서 피고인신문을 통해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증언을 거부하며 불출석해 증인신문이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한편 이 부회장 등 전·현직 삼성 임원 5명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25일 오후 2시30분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고심 끝에 이 부회장 선고 공판의 촬영·중계를 불허한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모두 재판 촬영·중계에 부동의 의견을 제출했고 선고재판 촬영·중계로 실현될 수 있는 공공의 이익이 피고인들이 입게 될 불이익이나 손해를 넘어선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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