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개명허가 20년…'김하녀, 경운기, 임신' 등 사라져

대법원, 이름 때문에 억울함 해소 위해 개명허가 기준 완화
축구선수 샤리체프는 '신의손', 데니스는 '이성남' 등 얻어

(서울=뉴스1) 성도현 기자 = 대법원은 최근 펴낸 소식지 '법원사람들' 3월호에서 지난 20년 간 법원이 개명을 허가한 대표적 유형 13개와 해당 사례들을 소개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출생신고서에 이름을 잘못 기재한 경우'는 신고서 작성시 실수인 사례가 많았다.

한자 넓을 홍(弘)을 큰물 홍(洪), 밝을 철(哲)을 밝을 절(晢), 형통할 형(亨)을 누릴 향(享) 등으로 잘못 쓰거나 한글이름 빙그레를 빙그래로 잘못 쓴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실제로 쓰이는 이름과 일치시키기 위해 쌍(雙)경을 우(又)경, 강신영을 강신성일, 노갑성을 노유민 등으로 고치는 경우도 있었다.

'족보상의 항렬자와 일치시키기 위한 경우', '이름에 선대나 후대의 항렬자가 포함돼 있는 경우', '친족 중에 동명인이 있는 경우' 등도 단순한 사례에 해당한다.

'이름이 부르기 힘들거나 잘못 부르기 쉬운 경우'는 다른 경우보다 개명 허가건수가 많았다. 이미매, 신재채, 지하아민, 김희희, 정쌍점 등 이름들이 이 과정을 통해 바뀌었다.

'성명의 의미나 발음이 나쁘거나 저속한 것이 연상되거나 놀림감이 되는 경우'도 허가 건수가 많은 사례에 속한다.

김치국, 김하녀, 이창년, 서동개, 조지나, 경운기, 신간난, 구태놈, 양팔련, 임신, 신기해, 방기생, 홍한심, 강호구, 송아지 등이 이름이 이에 해당한다.

또 '이름이 악명 높은 사람의 이름과 같거나 비슷한 경우', '성명철학상의 이유로 개명하고자 하는 경우 등도 있었다.

한자이름을 한글이름, 한글이름을 한자이름 등으로 바꾸려는 경우도 있었다.

외국식 이름을 한국식 이름으로 고친 경우도 많았다. 김다니엘을 김다혜, 한소피아아름을 한아름, 김토마스를 김태욱, 윤마사꼬를 윤정임 등으로 바꾸는 등 다소 일반적인 이름으로 바뀌었다.

귀화외국인들이 한국식으로 개명한 경우도 있었다.

축구선수 샤리체프는 '신의손', 데니스는 '이성남' 등이란 한국 이름을 얻었다. 방송인 로버트 할리는 '하일', 러시아 출신의 학자·교수인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는 '박노자', 전 한국관광공사 사장인 베른하르트 크반트는 '이한우' 등으로 이름을 바꿔 활동하고 있다.

과거에 법원은 개명허가에 대해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에 신청건수도 적었고 허가율로 낮았다.

그러던 중 지난 1995년 대법원이 '국민학교 아동에 대한 개명허가신청사건 처리지침'을 마련해 1년간 한시적으로 시행했고 7만3186명의 국민학생(초등학생)이 개명허가신청을 해 96%가 허가를 받았다.

이후 개명에 대한 사회인식이 바뀌면서 개명신청이 늘고 각급법원도 심사기준을 완화해 허가율이 높아졌다.

대법원은 지난 2005년 11월 개인의 성명권을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인격권의 한 내용으로 인정하는 판례를 내놓아 개명허가 요건을 완화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개명을 인정할 상당한 이유가 있고 범죄를 기도·은폐하거나 법령상 제한을 회피하려는 불순한 의도나 목적이 개입돼 있는 등 개명신청권의 남용이 아니라면 원칙적으로 개명을 허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개명신청사건이 더욱 증가해 지난 2007년에는 허가건수가 10만건이 넘었고 허가율도 90%를 넘어섰다.

대법원은 개명허가 심사기준을 정한 '개명허가신청사건 사무처리지침'을 만들어 2008년부터 시행 중이다.

dhspeopl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