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시민이 판단하세요"…민사배심재판(종합)

연예인-SK플래닛 간 '키워드 검색' 성명권 침해 사건
배심원 "침해 맞다…'영리 목적'을 '정보 제공'으로 포장"
재판부, 평결에 기속 안돼…변론 한 차례 진행 후 선고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부장판사 장준현)는 30일 탤런트 김남길 등 연예인 58명이 인터넷 오픈마켓 11번가를 운영하는 SK플래닛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3차 변론기일을 배심재판으로 진행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 © News1

(서울=뉴스1) 김수완 기자 = 최근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이 여러 정치적 형사사건의 피고인에 대해 잇따라 무죄 평결을 내려 '배심재판'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서울중앙지법이 민사사건에 대한 배심재판을 진행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부장판사 장준현)는 30일 탤런트 김남길 등 연예인 58명이 인터넷 오픈마켓 11번가를 운영하는 SK플래닛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3차 변론기일을 배심재판 행사로 운영했다.

이번 배심재판은 국민의 재판 참여를 확대하고 법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마련된 행사로 본격적인 배심재판 절차는 아니다.

장 부장판사는 변론에 앞서 "장기적으로 민사에서도 배심 제도를 도입하고자 한다"며 "이를 염두에 두고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것은 이른바 '키워드 검색'으로 포털사이트 혹은 해당 인터넷 오픈마켓 사이트의 입력창에 '김남길 가방', '소녀시대 원피스' 등을 입력하면 해당 상품이 결과로 뜨는 시스템이다.

이에 대해 연예인 측은 "오픈마켓 운영자는 클릭 횟수에 따라 해당 상품 판매자로부터 광고대가를 지급받는다"며 이를 퍼블리시티권, 인격권으로서의 성명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1번가 측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데이터베이스 제공 계약을 체결해 자연적인 검색 결과가 노출될 뿐"이라며 "검색 결과는 판매자가 어떤 정보를 기재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뿐 별도의 이익을 얻은 바 없다"고 침해를 부정했다.

또 "'HOT클릭' 등 11번가 웹사이트 내부 검색결과 웹페이지 상단에 해당 상품이 노출되도록 하는 시스템은 연예인 성명을 등록할 수 없도록 관리하고 있다"며 "11번가 측은 적절한 방지 조치를 모두 취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양측 변호인들은 이날 재판이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배심재판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해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한 판례들을 연이어 비교 사례로 제출됐다.

우선 원고 측은 '푸딩카메라(사진을 찍어주면 닮은 꼴 연예인을 찾아주는 스마트폰 프로그램)'에 대해 초상권 침해를 인정한 판결을 제시했다.

또 피고 측은 '욘사마(배용준)'의 이름을 차용한 여행지를 상품으로 제공한 여행사에 대해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판결을 재판부와 배심원들에게 제시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배심원들은 "자유롭게 진행하고자 하니 배심원들은 적극적으로 질문을 해 달라"는 재판부의 당부와 달리 변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여러번에 걸쳐 쟁점들을 정리하고 질문을 던졌지만 배심원들은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서너개의 질문을 던졌을 뿐 변론이 진행되는 2시간 내내 양측 변호인들의 주장을 듣기만 했다.

배심원들은 변론 직후 1시간이 넘도록 진행된 평의 끝에 4대 1의 의견으로 "성명권 침해가 맞다"며 연예인 측의 손을 들어줬다.

침해를 주장한 배심원들은 "연예인의 이름은 광고로서 가치가 있다"거나 "영리 목적으로 연예인 이름을 사용해놓고 정보 제공이라고 포장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침해가 아니라고 주장한 배심원은 "정보 제공의 측면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날 배심재판은 형사재판에서의 '그림자 배심'(참여자가 배심원과 같은 절차로 재판 모든 과정을 참관한 뒤 유·무죄에 대한 평의·평결과 양형 의견을 낼 수 있는 참여 프로그램)과 같은 형태로 진행됐기 때문에 재판부는 이 평의 결과에 기속되지 않고 판결을 내릴 수 있다.

실제 이 사건에 대한 선고는 양측 변호인들의 증거자료 제출 등 한 차례 더 변론기일이 진행된 후에야 내려질 예정이다.

앞서 안도현 시인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는 "(무죄를 평결한 배심원들과) 의견이 다르다"며 선고를 연기해 논란을 불러온 바 있다.

또 이에 앞서 주진우·김어준의 사자(死者)명예훼손 등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배심원들과 의견이 대부분 일치한다"며 무죄로 평결한 배심원들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하는 등 정반대의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이같은 논란 가운데 이번 민사배심재판을 진행한 재판부가 시민 배심원들의 의견을 얼마나 받아들일지 주목되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다음 변론기일은 다음달 4일 오후 2시 진행된다.

abilityk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