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아파트인데 전세 11억 차이…서울 '이중가격' 심화

신규·갱신 계약 보증금 격차 중윗값 5500만원…강남권선 수억 원
임대차2법·전세 공급 부족 영향…전문가들 "내년 더 심화 가능성"

서울 아파트 단지 모습.(자료사진) ⓒ 뉴스1 임지훈 인턴기자

(서울=뉴스1) 김동규 기자 = 서울 아파트 전세시장의 '이중가격'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같은 단지·같은 평형인데도 신규 계약과 갱신 계약 간 보증금 차이가 수억 원씩 벌어지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임대차 2법 시행 이후 누적된 가격 차이가 시장 전셋값 상승과 맞물리면서 세입자 부담이 구조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6일 양지영 신한은행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이 국토교통부 전월세 실거래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1월 5일부터 4월 30일까지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에서 신규 계약과 갱신 계약 간 보증금 격차는 중윗값 기준 5500만 원으로 나타났다.

서울 전체 평균 격차는 5000만 원대 수준이지만, 서초구 등 강남권 일부 단지에서는 같은 평형 안에서도 보증금 차이가 11억 원을 넘어서는 사례까지 나왔다.

이를테면 서울 서초구 대단지 아파트 전용 84~85㎡에서는 기존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7억~8억 원대에 재계약한 반면, 동일 평형 신규 세입자는 19억 원에 전세 계약을 체결한 사례가 확인됐다.

이 같은 전세 이중가격의 배경에는 2020년 도입된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이 있다. 갱신 계약에는 직전 임대료의 5%까지만 올릴 수 있는 상한이 적용되지만, 신규 계약은 시장 상황에 따라 사실상 제한 없이 가격을 책정할 수 있다.

임대차 2법 시행 5년 차에 접어든 올해는 갱신권을 이미 한 차례 사용한 세입자들이 순차적으로 보호막을 잃고 시장 가격에 재진입하는 구간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세 공급 줄고 월세화 가속…"내년 더 심각할 수도"

오는 9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를 앞두고 매도와 임대 공급이 모두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요인들이 전셋값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세 매물 부족 역시 이중가격 심화를 부추기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KB부동산과 민간 분석을 종합하면 올해 4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약 6억 8000만 원, 중위 전셋값은 6억 원을 넘어 집계 이래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신축 아파트에서 전세 대신 월세·반전세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24~2025년 입주한 신축 단지 임대차 거래 중 약 70%가 월세 형태로 이뤄졌다. 전세 공급이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이 과정에서 저렴한 갱신 전세는 줄고, 소수의 신규 전세가 높은 가격에 계약되면서 시세를 끌어올리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전세 이중가격 현상이 더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유지되던 갱신 계약들이 시장가로 재조정되는 과정에서 세입자 체감 부담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양지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갱신권을 소진한 임차인들이 시장 가격에 노출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성적인 공급 부족과 대출 규제, 전세사기 후유증 등으로 전세에서 월세로의 구조적 전환이 진행 중"이라며 "이중가격 확대는 단순한 가격 문제가 아니라 세입자 주거비 부담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구조적 위험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중가격 구조화…"단기간 해결 어려워"

전문가들은 해법 역시 결국 공급 문제 해결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다만 단기간 내 해결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당분간 이중가격 현상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다주택자 규제 강화와 공급 부족이 동시에 이어지는 상황"이라며 "공공과 민간 모두 임대 매물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는 단기간에 이중가격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비거주 1주택자 역시 자녀 교육이나 부모 부양 등의 이유로 상급지에 전세로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의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공공임대와 민간임대 공급이 충분하다면 이런 이중가격 현상은 지금보다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결국 시장 안정의 핵심은 안정적인 공급 확대"라고 했다.

d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