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전세는 '속도'가 됐다…확산하는 '노룩 계약'

노룩 전세 ⓒ 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노룩 전세 ⓒ 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오현주 기자 = 최근 서울 전세시장에서 집을 보지 않고 계약하는 '노룩(No-Look) 전세'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전세 매물이 급감하면서 시세보다 1억 원가량 높은 가격에도 계약금부터 보내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조금만 늦어도 매물이 사라진다는 불안감이 크다. 학군지에서는 오전에 나온 전세 물건이 당일 소진되기도 한다. 세입자는 수도·곰팡이 등 기본적인 상태조차 확인할 시간 없이 계약에 나선다. 전세사기 여부를 점검할 여유도 없다.

서울 전세시장은 '가격'보다 '속도'가 우선되는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해 10·15 대책 이후 갭투자(전세 낀 매매)가 사실상 막히고 실거주 중심 구조가 강화되면서 전세 공급이 줄어든 영향이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강북구 미아동 'SK북한산시티'(3830가구)의 전세 매물은 4일 기준 2건에 불과하다.

무주택자의 주거불안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KB부동산에 따르면 4월 넷째주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181.4로 약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세수급지수는 100을 넘으면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의미다.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전셋값도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4월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6억 8147만 원(KB부동산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노룩 전세계약'은 단순한 신조어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주택 공급 부족이 이어지는 한 이러한 계약 방식은 점차 일반화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이달 10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부활까지 겹치면 '똘똘한 한 채' 선호가 강화되면서 전세 공급은 더 위축될 수 있다. 전월세 임대료 상승 압력도 함께 커질 전망이다.

서울 임대차 시장은 더 이상 가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계약 속도가 우선되는 구조 속에서 임차인은 충분한 정보를 확인할 기회조차 갖기 어렵다. 집주인과 세입자 간 정보 비대칭이 심화되면서 시장의 균형도 흔들리고 있다.

결국 충분한 선택권과 검증 과정 없이 계약이 이뤄지는 구조가 고착화될수록, 그 부담은 고스란히 임차인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woobi12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