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가구역인데 아파트값 오르는 까닭 [박원갑의 집과 삶]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토지거래허가구역이라면서요. 이런 조치가 나왔는데도 집값이 계속 오를 수 있나요?"
얼마 전 점심시간, 회사 근처 식당에서 후배 B 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전세로 살며 매수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는 무주택자였다. 정부의 극약처방이 시장을 식히는 신호일 것이라 기대한 눈치였다.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 "이론상으로는 그렇죠"라고 다소 애매한 답을 내놓았다. 고강도 규제가 발표됐으니 집값 상승도 멈출 것이라는 기대가 그의 질문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택시장은 규제 하나로 설명될 만큼 단순하지 않다. 정책은 분명 중요한 변수지만 가격을 결정하는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수급 구조와 기대 심리, 자금 흐름 같은 요소들이 서로 얽히며 가격과 거래량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규제가 강화됐다는 이유만으로 집값 하락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역시 마찬가지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주식시장의 '서킷 브레이커'(circuit breaker·주식매매 일시 정지제도)에 비유할 수 있다. 과열된 시장의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장치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원칙적으로 실거주 목적의 무주택자만 아파트를 매수할 수 있다.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사는, 이른바 '갭투자'는 사실상 차단된다. 거래가 급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수요 측면만 놓고 보면 가격이 약세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그러나 가격은 수요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공급 역시 함께 봐야 한다. 가격은 결국 수요와 공급의 함수이기 때문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는 매도자 역시 전세를 끼고 집을 파는 행위가 제한된다. 전세를 낀 아파트의 경우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 최대 4년간 매도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공급이 줄어드는 것이다.
실제로 부동산 정보업체 '아실' 통계를 보면 서울 전역과 경기 12곳 일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10월 20일 이후 매물은 눈에 띄게 감소했다. 두 달 새 서울 아파트 매물은 14.8%, 경기도는 7.2% 줄었다. 수요가 줄었지만, 공급 감소 폭 역시 작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거래량 감소 속에서도 가격은 쉽게 꺾이지 않는다. 오히려 매물이 귀해지면서 한두 건의 거래가 가격을 끌어올리는 '계단식 상승'이 나타나기도 한다. 규제가 정상적인 가격 형성 과정을 왜곡하는 셈이다. 외곽의 임야나 농지처럼 투기적 수요 비중이 높은 부동산에서는 토지거래허가제가 시장 안정의 즉효약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도심 아파트는 다르다. 실수요가 여전히 시장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적용됐던 과거 주택투기지역 지정 당시와도 닮았다. 거래는 얼어붙지만 매물은 잠기고, 그 결과 가격이 되레 오르는 역설이 반복됐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아파트 가격이 인근 비(非)허가 구역보다 더 오르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다. 상급지로 갈아타려는 수요가 규제에도 불구하고 쉽게 식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허가구역 아파트값의 오름세는 과잉 유동성이나 심리적 불안뿐 아니라 가격 결정 과정에서의 구조적 수급 불균형까지 함께 봐야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이런 국면에서는 집값 거품에 대한 경계도 필요하다. 거래가 드문 상황에서 형성된 신고가는 시장의 평균적인 판단이라기보다 제한된 선택의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매물이 잠긴 채 가격만 오르는 흐름이 장기화할 경우 작은 충격에도 가격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
실수요자라면 더욱 냉정할 필요가 있다. 신고가를 경신했다고 해서 그 가격이 곧 '정상 가격'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인근 단지나 유사 입지의 거래 사례와 꼼꼼히 비교하며 판단해야 한다. 규제가 가격을 대신 결정해 주지는 않는다. 결국 집값은 수요와 공급 그리고 그 사이에서 누적되는 선택의 결과다.
opinion@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