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규제에…작은 집 몸값 치솟는다 [박원갑의 집과 삶]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스1 ⓒ News1 이호윤 기자

최근 평일 서울의 한 아파트 견본주택.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왼편 소형 평수(전용면적 60㎡) 부스 쪽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부스 입구에는 관람을 기다리는 10여 명이 줄지어 서 있었다. 하지만 중대형 평수 부스에는 관람객이 드물었다.

소형 부스 앞에서 기다리던 40대 여성은 "분양가가 너무 비싸 중대형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청약 예정인 소형의 평면과 마감재를 꼼꼼히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견본주택 풍경은 요즘 소형과 중대형 아파트 선호도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수도권 주택시장에서 소형 아파트 몸값이 치솟고 있다. 주택 가격과 분양가가 많이 상승한 데다 대출 규제까지 겹치면서 소형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불과 1~3년 전만 해도 중대형 강세가 뚜렷했지만 올 들어 상황이 확연히 달라졌다.

24일 부동산정보회사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월까지 서울 아파트 1순위 청약경쟁률은 60㎡ 이하가 163.3대 1로 가장 높았다. 그다음으로 60㎡ 초과~85㎡ 이하가 151.2대 1을 기록했고, 85㎡ 초과는 49.9대 1로 현저히 낮았다.

1순위 청약자 수 역시 60㎡ 이하가 16만 7141명으로 가장 많았다. 서울 아파트 분양시장에 '소소익선'(小小益善) 현상이 뚜렷하다. 하지만 지방은 대형 경쟁률이 더 높은 곳도 있다. 가령 경남의 경우 같은 기간 85㎡ 초과가 1.58대 1로 가장 높았다.

서울 매매시장에서도 소형과 중소형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최근 1년간(2024년 9월~2025년 9월)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격은 중소형(60㎡ 초과~85㎡ 이하)이 10.3%로 가장 많이 올랐다. 그다음으로 소형(40㎡ 초과~60㎡ 이하) 10.2%로 나타났다.

중대형(85㎡ 초과~135㎡ 이하)과 대형(135㎡ 초과)은 각각 8.1%, 8.3% 상승에 머물렀다. 다만 초소형(40㎡ 이하) 상승률은 4.9%로 극히 낮았다. 너무 작은 평수는 살림집으로 활용하기 어려워 수요층이 얇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울지역에선 1년 전만 해도 큰 집 강세 현상이 강했다. 실제로 2023년 9월~2024년 9월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는 전체 평수 가운데 '대형'이 가장 많이 상승(7.0%)했다. 이 같은 흐름이 바뀐 가장 결정적 원인은 대출 규제인 것 같다. 대출 한도가 줄면서 작은 집 중심의 알뜰 소비가 새 트렌드가 자리 잡은 것이다. 물론 서울 평균 아파트값이 14억 6132만 원(10월, KB부동산)으로 비싸 대형 평수는 접근조차 어렵다는 점도 한몫했다.

수도권에서도 작은 집 강세 현상은 뚜렷하다. 최근 1년간 전체 평수 가운데 '소형' 아파트 실거래가 상승률이 4.7%로 1위였다. 반면 지방은 거꾸로다. 최근 1년간 지방 아파트 실거래가는 모두 떨어졌는데, '중소형'과 '대형'보다 '초소형'과 '소형'이 더 하락했다.

지방은 수도권과 달리 대출 규제가 심하지 않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점이 시세 흐름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광주광역시에서 만난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이곳에선 신혼부부도 아파트를 살 때 60㎡보다 84㎡를 더 선호한다"고 전했다.

서울과 수도권의 소형 강세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주택시장이 급랭하지 않는 한, 현재의 대출 규제가 완화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요컨대 수도권에서 작은 집 강세는 1~2인 가구 증가라는 인구 구조도 일부 영향을 미쳤지만, 이보다는 정부 정책과 가격 부담이 더 큰 요인으로 분석된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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