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투자·대출 막혀 '내 집 마련' 포기…'전월세 부담'도 커진다

서울 전 지역 '토허구역·규제지역'…실거주 의무 부과
주담대 비율 70%→40% '강화'…"전세의 월세화 심화"

부동산 규제지역 추가지정 현황.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오현주 기자

# 30대 초반 직장인 김 모 씨는 최근 서대문구 이화여대역 인근 아파트를 '갭투자'(전세 낀 매매)하려고 바쁘게 임장을 다녔다. 그러나 이번 10·15 부동산 대책으로 서울 전역이 규제 대상에 포함되면서 '내 집 마련' 전략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정부가 서울 전역과 경기 주요 지역 12곳을 규제지역으로 묶으면서, 갭투자를 계획했던 실수요자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대출 규제가 강화되고 갭투자가 금지되자 대출 의존도가 높은 수도권 외곽·비핵심 지역에서는 실수요자의 진입이 사실상 어려워졌다. 이로 인해 전세 매물이 줄고 월세 전환 현상은 심화될 전망이며,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16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이번 10·15 대책은 서울 전역과 경기권을 중심으로 대출과 갭투자를 원천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에 따라 다수 실수요자들은 수도권 아파트 매수 계획을 당분간 보류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수원 장안구 율전동 아파트 매수를 준비하던 30대 직장인 박 모 씨는 "직장 근처 아파트를 찾던 중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규제로 매수 계획을 잠정 보류했다"고 말했다.

그는 신혼집 마련을 위해 5억 원대 아파트를 염두에 두고, 전세보증금 2억 원을 승계받아 잔금 3억 원 중 2억 원은 주택담보대출, 1억 원은 예적금과 부모 지원으로 충당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주택담보대출이 낮아지면서 필요한 대출 한도가 1억 원 이상 줄어든 데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으로 갭투자가 불가능해지자 계획이 무산됐다.

박 씨는 "옆집 친구 지갑까지 꽁꽁 묶는 것 같아 억울하다"며 "대출이 조금만 막혀도 당장 잔금 계획이 틀어지는데, 정부는 이런 실수요자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고 토로했다.

또 생애 최초 대출을 받아 강남권 집을 사려던 30대 회사원 김 모 씨는 "사실상 매수 타이밍을 놓쳐 매매 계획을 포기했다"며 "매매 수요가 크게 줄면서 지금 집을 사려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외곽지역 포함 전 지역 '갭투자 불가'…주담 70%→40% '강화'

정부는 기존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를 포함한 서울 나머지 21개 자치구 전역과 경기권 12곳을 조정대상지역 및 투기과열지구로 추가 지정했다. 경기권 신규 지정 지역은 과천시, 광명시, 성남시(분당·수정·중원), 수원시(영통·장안·팔달), 안양시 동안구, 용인시 수지구, 의왕시, 하남시다.

규제지역 지정에 따라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은 기존 70%에서 40%로 강화돼, 대출 문턱이 한층 높아졌다.

이들 지역은 내년 12월 31일까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였다. 허가 대상은 해당 구역 내 아파트와 동일 단지 내 1개 동 이상 포함된 연립·다세대 주택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으로 갭투자는 금지되며, 2년 이상의 실거주 의무가 부과된다.

1주택자의 전세대출에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적용된다. 수도권·규제지역 내 시가 15억~25억 원 주택은 4억 원, 25억 원 초과 주택은 2억 원까지 대출이 제한된다.

실수요자 내집 마련 문턱 높아져…월세화 현상 가속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로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 문턱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현금 부자가 많은 강남권보다는 외곽 지역에서 타격이 클 것으로 분석된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교수는 "대다수 실수요자들은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했는데, 이번 조치로 무주택자들에게 제공됐던 기회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기존에는 단계별 '상급지 갭투자 후 입주' 전략을 활용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불가능하다"며 "아파트 매수 금액대를 낮춘 '알뜰 소비' 전략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갭투자가 금지되면서 전세 매물이 줄고 월세 전환 현상도 심화될 전망이다. 신규 주택 매입을 통해 전세 물량을 공급하던 경로가 차단되기 때문이다.

양지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과 실거주 의무로 임대 목적 주택 매입이 불가능해지면 민간 임대 물량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며 "도심 정비사업이 본격화하면 이주 수요가 몰려 임대 공급 부족 현상이 더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세입자의 선택지가 줄고, 월세 전환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KB부동산에 따르면, 9월 서울 아파트 월세가격지수(129.7)는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달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지수(94.0)는 34주 연속 상승했다. 업계는 이러한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 랩장은 "구매 수요 억제로 인해 임대차 시장에 내 집 마련 실수요가 머무르거나, 기준금리 인하 등으로 전세가 상승 압력이 지속될 것"이라며 "보증부 월세 등 월세화로 인한 임차인 주거비 부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숙제"라고 강조했다.

woobi12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