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중대재해, 영국 신중·독일 배제…법인까지 처벌 나서는 한국
당정, 과징금·영업정지 등 제재 추진…업계 "이중처벌 우려"
해외선 법인 처벌 신중하거나 제외…"예방 중심 정책이 우선"
- 황보준엽 기자
(서울=뉴스1) 황보준엽 기자 = 정부와 국회가 건설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기업에도 막대한 과징금과 영업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법인에까지 형사책임을 지우려는 한국의 움직임은, 법인 책임을 신중하게 판단하거나 아예 인정하지 않는 영국·독일 등과는 다른 방향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건설안전특별법'은 중대재해 발생 시 해당 건설 현장의 매출액 최대 3%를 과징금으로 부과하거나 최대 1년간 영업정지를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안전난간, 추락방호망 등 안전시설 미설치나 공사 중지 명령 위반 등 명백한 안전관리 의무 위반 시 적용된다.
정부도 해당 법안에 긍정적이다. 이상경 국토교통부 1차관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매출액 대비 3% 정도의 과징금 강화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건설업계는 법인과 개인 모두에게 중복 처벌을 적용하면 경영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건설사 평균 영업이익률이 3% 초반에 불과해, 매출액 기준 과징금은 기업 존립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사고는 당연히 없어야 하지만 개인 처벌뿐 아니라 과징금, 대출 규제, 공공 입찰 제한까지 모두 적용되면 기업 운영 자체가 어렵다"며 "처벌보다 예방 중심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요 선진국들도 중대재해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적용하지만, 일반적으로 법인과 개인에 대한 처벌을 구분하거나, 처벌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는 경향이 있다.
영국은 '법인과실치사법'을 통해 법인이 주의 의무를 위반해 사망 사고를 일으킨 경우, 기업에 매출액 대비 과징금을 부과하고 형사 처벌할 수 있다. 만약 사망자가 다수 발생하면 기업에 상한선 없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한다. 2011년 한 토목회사는 기업살인법 적용을 받아 연매출의 250%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받고 파산하기도 했다. 반면 기업이 유죄를 인정하면 경영자 개인에 대한 기소를 면제하거나 철회하는 경우가 많다.
독일은 법인의 범죄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업주나 경영자의 과실이 있을 경우 형법상 과실치사죄를 적용할 뿐, 기업 자체에 대한 형사처벌은 없다.
캐나다는 1992년 5월 26명의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간 '웨스트레이 광산 폭발 사건'을 계기로 2004년부터 웨스트레이 개정안(Westray Bill)이라 불리는 형법 개정을 시행했다. 이 법안은 기업 및 대표자, 타인의 업무를 지시하는 사람을 포함한 조직에 형사 책임을 묻는다. 하지만 적용 기준이 엄격해 10년간 유죄 판결은 10건 중 4건에 그쳤다.
호주는 산업안전보건법 내 '작업장 과실치사죄'를 통해 법인과 개인 모두를 처벌할 수 있다.
작업장 과실치사죄는 법인과 개인을 구분해 형벌을 규정하고 있다. 개인에 대해 노던준주에서는 최대 무기징역, 빅토리아주에서는 25년, 퀸즐랜드주에서는 20년,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에서는 20년, 수도준주에서는 20년 이하의 자유형을 규정한다.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는 500만 호주달러의 벌금형도 같이 규정하고 있다.
법인에 대해서는 빅토리아주 약 1800만, 수도준주 약 1600만, 퀸즐랜드 1300만,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와 노던준주 약 1000만 호주달러의 벌금형을 규정한다.
대신 인정 기준이 엄격하다. 안전보건 등에 관한 의무담지자는 과실행위로 사망이라는 결과를 발생시키거나 단체 또는 개인의 과실행위와 피해자의 사망 간의 인과관계 등이 인정돼야 한다.
국내에서는 법인을 포함한 전방위적 처벌 강화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건설안전특별법 외에도 산재 발생 시 면허 취소, 공공 발주 입찰 제한, 대출 규제 등 법인 대상 제재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법인과 개인 모두를 동시에 규제하는 강경 기조가 강화되는 양상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안전 의무를 소홀히 한 기업에는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며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업계에서는 과도한 중복 규제가 오히려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안전 관리비용의 급증으로 공사비 상승 등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건설 현장의 안전 강화를 위한 '실행력 있는 예방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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