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에 보유세 전가?…'원론'보다 '맥락'을 보라 [박원갑의 집과 삶]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정부가 집값 안정을 위해 세제와 금융 등을 아우르는 강력한 수요 억제 대책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 시내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DB) ⓒ 뉴스1 황기선 기자

부동산 세제 개편안이 발표될 때마다 정치권과 학계는 해묵은 논쟁으로 뜨겁다. 논쟁의 핵심은 하나다. "보유세 인상이 과연 세입자의 임대료 부담으로 전가되는가." 이 문제는 세금을 누가 최종적으로 부담하느냐를 따지는 '조세 귀착'의 문제다.

흔히들 세금은 법적 납세 의무자가 내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경제학의 세계에서는 다르다. 정부가 집주인에게 부과한 세금이 임대료라는 통로를 타고 세입자에게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이런 논리가 성립한다고 믿는 것은 위험하다. 보유세 전가 문제는 단순한 산수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의 문제'다.

첫째, 시간의 지평을 단기와 장기로 나눠 봐야 한다. 단기적으로 집주인은 보유세 인상을 세입자에게 떠넘기기 어렵다. 이미 체결된 계약 기간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시장 가격을 무시하고 세를 올렸다가는 공실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세금을 전가하려다 임대 수익 자체가 끊기는 악수를 둘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은 전혀 다르다. 보유세 부담으로 임대수익률이 낮아지면 임대주택 시장으로 유입되는 신규 자본이 줄어든다. 투자 가치가 떨어진 시장에서 신규 착공은 위축되고, 기존 주택 소유자들 또한 비용 절감을 위해 유지보수에 소홀해진다. 이러한 공급 부진은 시간이 흐를수록 수급 균형을 무너뜨리고, 결국 임대료 상승을 유발하는 불씨가 된다. 다만 늘어난 보유세가 임대 수익에 별다른 타격을 주지 않을 만큼 적다면 세금을 남에게 떠넘긴다는 논리는 힘을 잃게 된다.

둘째, 시장의 교섭력(Bargaining Power)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살펴야 한다. 만약 세입자들이 임대료 인상에 대응해 즉시 다른 지역이나 다른 형태의 주거지로 옮길 수 있는 충분한 대안을 가졌다면(수요의 탄력성), 집주인은 세금을 전가하기 어렵다. 즉 시장에서 더 '아쉬운 쪽', 즉 교섭력이 낮은 쪽이 세금을 떠안게 되는 구조다.

가령 다세대·다가구주택 같은 비(非)아파트 전세 시장에서는 세입자가 우월적 지위를 점하고 있다. 빌라 전세 사기와 깡통전세 여파로 세입자들이 거주를 꺼리면서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보유세가 아무리 올라도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떠넘기기 어렵다. 하지만 아파트 시장에선 집주인이 상대적으로 강한 교섭력을 갖는다. 결과적으로 아파트는 비아파트보다 세금이 임대료로 전가되기가 훨씬 수월한 환경인 셈이다.

셋째, 지역별 수급 불균형의 깊이를 따져야 한다. 조세 전가는 진공 상태가 아니라 구체적인 지역 시장의 수급 상황 위에서 일어난다. 공급이 넘치는 지방이나 미분양 적체 지역에서는 세입자가 '갑'의 위치에 선다. 집주인은 보유세 부담을 온전히 스스로 흡수하는 것을 넘어 임대료를 낮춰야 하는 처지에 직면한다. 이런 시장에서 세금 전가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하지만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지역은 정반대의 양상을 띤다. 대표적으로 서울지역의 주택보급률은 2024년 기준 93.9%로 전국 평균(102.9%)을 크게 밑돈다. 가구 수보다 살 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서울에서는 집주인이 가격 결정권을 쥐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직장, 교육 때문에 서울을 벗어나기 힘든 '비탄력적 수요'가 집중된 곳일수록 보유세 인상은 세입자 부담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요컨대 보유세의 임대료 전가는 정답이 정해진 명제가 아니라 시장의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조건부 현상이다. 보유세 전가로 세입자가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하려면 세입자의 교섭력을 실질적으로 높여주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

그 핵심은 단연 공급 확대다. 세입자가 언제든 다른 대안을 선택할 수 있는 '수요자 우위 시장'이 형성될 때 비로소 집주인의 임대료 전가 시도는 시장의 외면을 받게 될 것이다. 시장의 역학 관계를 도외시한 채 교과서적인 원론만 되풀이하는 것은 논쟁만 키울 뿐 해답 찾기와는 거리가 멀다. 경제적 귀착의 원리를 이해하고 수급의 본질을 꿰뚫는 정책적 혜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 뉴스1 양혜림 디자이너

☞ 한쪽에 쏠리기보다 중심추를 잡고 부동산시장을 균형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노력하는 전문가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을 나와 강원대에서 부동산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KDI 경제전문가 패널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인의 부동산심리', '부동산미래쇼크','박원갑 박사의 부동산트렌드수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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