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KTX, 황당한 '끼어들기' 접촉 사고
지난주말 대구역에서 고속철도(KTX)와 무궁화호 열차가 충돌하는 어치구니 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KTX가 버젓이 대구역을 통과하던 중 다른 선로에서 대기 중이던 무궁화호 열차가 진입하면서 부딪친 사고였다. 여기에 뒤따라오던 KTX가 다시 사고난 열차를 들이받는 2차 추돌까지 겹쳤다.
열차 승객들이 찰과상 등 경상만 입는데 그쳐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다. 충돌 사고로 인해 탈선한 열차는 가슴을 쓸어내리기에 충분할 정도다. 2008년에도 대구역에서 비슷한 열차 충돌이 있었음에도 효과적인 재발 방지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은 매우 우려스럽다.
역 안에서는 열차의 진출입 과정에서 수시로 선로 변경이 이뤄진다. 역으로 들어오는 열차는 선로를 바꿔 진입하고 역을 빠져 나가는 열차 역시 선로를 옮겨 탄다. 이 때문에 철도 관제는 각 열차별 선로 변경을 파악, 진입과 출발시 이를 통제·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처럼 '끼어들기' 접촉사고 같은 황당한 일이 발생한 걸 보면 관제시스템마저 무용지물일 수 있다는 걸 방증한 셈이다.
결국 철도 관제시스템을 보완해야 하는 건 사람의 몫이다. 이 때문에 이번 사고는 인재에 가깝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승강장에서 무궁화호 열차가 출발해도 된다고 잘못된 신호를 준 '여객 전무'와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출발한 기관사의 책임은 피할 길이 없다.
코레일 내부에서도 "일어나서는 안될, 변명할 수조차 없는 사고"였다는 자성론이 나오고 있다. 책임을 해당 직원들에게만 돌리기엔 본질적인 문제점도 드러난다.
철도노조는 최근 휴일근무를 거부했고 코레일은 여객 전무의 대체인력을 편성해 투입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적자운영을 개선해야 한다는 압박이 심해 이용량이 많은 휴일에 열차 운행을 늘릴 수밖에 없고, 인력을 줄여오던 상황에서 과부하가 걸리자 노조차원에서 휴일근무를 거부해 대체인력을 투입했다"고 말했다.
노조의 휴일근무 거부는 KTX 경쟁체제도입을 둘러싼 정부와의 마찰과도 맥이 닿아 있다. 국토교통부는 코레일 독점구조인 철도운영 사업자를 확대하기 위한 KTX 경쟁체제도입을 추진하면서 사사건건 코레일과 마찰을 빚어왔다.
한 철도 관계자는 "코레일이 수익을 높이기 위해 시간외 수당을 주며 휴일근무 독려해 온 상황에서 정부가 적자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철도경쟁체제 도입을 밀어부치자 이에 대한 반발 차원에서 휴일근무를 거부하는 데 영향을 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밥그릇 싸움 때문에 국민의 안전을 볼모로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 역시 철도 사고의 재발방지보다 이를 다른 목적으로 활용하려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면 국민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른 관계자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정부는 철도 관제권을 코레일에서 철도시설공단이나 다른 기관에게 넘겨야 한다는 기존 주장에 힘을 얻게 됐고 궁긍적으로는 철도경쟁체제 도입의 논리를 펴는 데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이번 사고가 엄중함에도 코레일의 대응 방식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코레일은 당초 사고 복구 시점을 성급히 예단, 1일 새벽으로 발표했으나 작업 지연으로 여러 차례 수정하면서 혼란을 부추겼다는 지적을 받는다.
코레일은 사고의 원인에 외부적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열차 운행의 책임을 지고 있는 이상 모든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의무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건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추석연휴 귀성 열차를 예매한 승객들의 심정이 어떨지 진심으로 헤아려 볼때다.<br>
byje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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