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87년 이후' 초유의 대법관 재제청 요구…조희대와 신경전 반복되나
李대통령 손봉기 제청 반려, 재제청 요청…서면 제청 10일 만
대통령 임명권 확립 의지…대법관 인선 조율 안된 데 대한 불만도
- 한재준 기자
(서울=뉴스1) 한재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8일 조희대 대법원장이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서면 제청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2기)에 대한 임명동의안 국회 제출을 거부, 재제청을 공식 요청했다. 대통령이 대법원장이 제청한 대법관 후보자를 반려한 건 1987년 헌법 체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후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손봉기 후보자에 대해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제출하지 않기로 했다"며 "이에 대법원장에게 대법관 후보자를 재제청할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조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를 제청한지 10일 만에 임명 거부 의사를 전한 것이다.
앞서 조 대법원장은 지난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과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손 부장판사와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24기)를 각각 임명 제청했다. 대법관후보추천위는 지난 1월 두 후보자를 포함해 박순영 서울고법 판사(25기), 김민기 수원고법 판사(26기) 등 4명을 추천했는데 조 대법원장은 7개월간 제청을 미루다가 이달 들어서 제청안을 청와대에 보냈다.
늑장 제청도 문제였지만 조 대법원장이 관행을 깬 것이 여권의 반발을 샀다. 그간 대법원장은 청와대와 조율해 대법관 임명을 제청했는데 이번에는 손 후보자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서면으로 제청안이 제출됐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내에선 손 후보자에 대한 비토 여론이 컸던 터라 조 대법원장의 '서면 제청'은 논란이 됐다.
이에 이 대통령은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보내지 않고 조 대법원장에게 재제청을 요청했다. 민주당이 다수당인 만큼 국회에서 부결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절차상 문제를 삼아 임명을 거부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강 대변인은 "제청권은 임명권을 대체하거나 무력화하는 권한 아니라 임명권이 올바르게 행사되도록 뒷받침하는 권한으로 이해돼야 한다"라며 "그동안 역대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사전 협의를 거쳐 제청에 이른 것도 각 기관 간 권한을 상호 존중하라는 헌법 취지에 따른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노 전 대법관 후임자에 대한 제청은 절차적 완결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라며 "손 후보자에 대해 현재 상태로 국회에 임명 동의안을 제출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제청이 기관에 대한 존중의 토대 위에서 이뤄지도록 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청와대가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 삼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청와대의 인사 방향과 부합하지 않은 손 후보자를 임명 제청한 것에 대한 불만이 '제청 반려'라는 초유의 상황으로 이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대법관 성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여성 대법관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인 김민기 부장판사가 진보 성향이라는 점에서 1순위 고려 대상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조 대법원장이 이를 배제하고 손 후보자 임명 제청을 강행하면서 청와대와 대법원 간 갈등이 극에 달했다. 손 후보자는 부산 출생에 남성이다.
강 대변인은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는 오랜 기간 시민과 법조계가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요구"라며 "소수자 및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호, 국민의 재판 청구권 보장이라는 대법원 본연의 역할을 고려할 때 손 후보자의 이번 제청이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라는 국민 요청에 부합하는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손 후보자 제청을 반려했지만 재제청을 놓고도 한동안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법원조직법 제41조 2는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를 제청할 때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 후보자를 추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추천위는 대법관 후보자를 추천하면 해산된 것으로 본다고 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법상 조 대법원장이 다시 후보자를 제청하려면 추천위를 구성해 추천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기존 추천위에서 추천된 후보자 중에서 재제청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대법원장에게 대법관후보추천위의 추천 내용을 존중해 신속히 재제청 절차를 진행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손 후보자를 제외한 후보군 중 윤 부장판사는 서울고법 내란전담재판부 재판장으로 선임되며 후보군에서 사실상 제외된 상태다. 청와대 입장대로라면 조 대법원장은 여성인 김 부장판사와 박 부장판사 둘 중에서 임명 제청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만 법조계에서도 추천위 구성을 둘러싼 의견이 분분한 만큼 후속 절차에 난항을 겪으며 대법관 공석 사태가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법관 임명이 다시 지연될 수 있다는 질문에 "가정을 전제로 한 답변은 마련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편, 강 대변인은 "김성수 후보자는 협의를 거쳐 의견이 모인 만큼 오늘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제출할 것"이라며 "청와대는 국민 재판 청구권 절차에 차질이 없도록 후속 절차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hanantwa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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