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구체적 숫자' 빠진 미완 합의…트럼프 청구서 '과제'
'실용외교' 통상·안보·新협력 진전…동맹현대화 '유연성' 대신 '미래형' 관철
투자펀드, 기업 투자와 시너지…한미 정상 한반도 평화 의지 확인
- 한재준 기자, 심언기 기자
(워싱턴=뉴스1) 한재준 심언기 기자 =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처음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이 마무리됐다. 애초 우리 정부 목표인 △경제·통상 안정화 △국익에 맞는 동맹 현대화 △새로운 협력 분야 개척 등 세 가지 분야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화에 대한 양국간 구체적인 합의는 없이 미국이 우리 정부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수준에서 논의가 마무리 됐다.
대미 투자 부분에서 우리 정부는 기존 3500억 달러에서 추가로 1500억 달러의 직접 투자를 제시했음에도 미국측은 알래스카 가스전 투자와 농축산물 개방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분야 청구서는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이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2시간 반 가량 정상회담을 갖고 통상·안보부터 남북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제를 놓고 의견을 교환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오후 워싱턴DC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통해 한미 정상회담 결과와 관련 "전체적으로 한미동맹 발전, 통상·안보 협의의 기대감과 확신을 재확인했다"며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양국 정상의 의지도 표명됐다"고 밝혔다.
위 안보실장은 통상·안보, 새로운 분야 협력 개척 등 3가지 분야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하면서도 "(경제·통상 분야는) 세부 내용에 대한 협의 과정은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미국 측이 요구해 온 '한미동맹 현대화'를 한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냈다.
미국은 한반도 방어에 집중된 주한미군 전력을 '전략적 유연화'라는 명분으로 중국·대만해협·남중국해 등 인도·태평양 전역의 사안에 대응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을 밝혀 왔다. 한국의 대중(對中) 견제 동참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의 '미래형 전략화'라는 문구로 협상에 나섰다. 유연화를 통한 인태 지역 억지력 강화보다는 전력 첨단화를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 또한 "(주한미군) 유연화에 대한 요구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주한미군의 미래형 전략화, 그런 얘기는 우리 입장에서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 측은 우리 정부의 제안을 상당 부분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 안보실장은 "(동맹 현대화는) 연합 방위 능력을 강화하고, 우리 안보를 더 튼튼히 하는 방향으로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진행해 왔다"며 "구체적인 문구는 조정하고 있지만 큰 방향은 의견 일치가 이뤄졌다. 그게 정상회담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동맹 현대화에 대한 세부 조율은 계속되고 있지만 '미래형 포괄적 동맹'이라는 범주에서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통령이 선제적으로 국방비 증액을 제시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미국 측도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국방비 증액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미국산 무기 구매도 상당 부분 충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 안보실장은 "미국 무기 구매는 첨단, 꼭 필요한, 중요한 무기를 구매하려는 것이라 서로 간의 '미팅 오브 마인드'(meeting of minds, 의견일치)가 있었다"고 전했다.
논란이 됐던 방위비 분담금 증액 문제는 일단락 됐다. 위 안보실장은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을 재론하자거나 다시 오픈해서 늘려보자고 하는 논의는 없다. 오늘까지도 그건 없었다"고 강조했다.
위 실장은 "원자력 협력에서도 의미있는 논의를 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역량 확보'를 위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의 여지가 생긴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미 정상회담과 연계해 열린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한미 관세협상에서 우리 측이 제시한 대미 투자 방안이 구체화했다. 앞서 한국은 상호관세 인하를 조건으로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이날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2시간 가량 협상을 진행, 조선 분야 1500억 달러를 포함해 에너지·핵심광물·배터리·반도체·의약품·인공지능(AI)·퀀텀컴퓨터 등 전략 산업 강화를 지원하는 데 금융 패키지를 활용하고, 구속력 없는 업무협약(MOU)으로 펀드를 조성·운영하기로 합의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미국의 조선업이 누렸던 영광을 회복해 군사력 강화까지 이룰 수 있도록 대한민국은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이라며 조선 분야 협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
1500억 달러 규모의 직접투자도 발표됐다. 조선·원자력·항공·액화천연가스(LNG)·핵심광물 5개 분야에서 2건의 계약과 9건의 업무협약(MOU)이 체결됐다. 대한항공은 미국 보잉(Boeing)사 항공기 103대를 추가 도입하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김 정책실장은 "직접투자는 펀드와 별개"라면서도 "우리 기업이 앞으로 투자할 FDI(직접투자)와 펀드는 미국이 우선순위를 선정하는 사업에 투입될 텐데 두 개가 시너지를 낼 분야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알래스카 가스전에 대한 한국 투자도 과제로 남아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한국과 합작사업을 통해 에너지 사업을 개발할 것"이라는 조율되지 않은 발언으로 압박에 나서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정책실장은 "조인트벤처 논의가 이뤄진 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농축산물 시장 개방도 미국 측이 포기한 의제는 아니다. 러트닉 장관은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미국은 시장 개방을 원하고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문제를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사로 끌어오는 데도 성공했다는 평가다.
이 대통령은 회담에서 "저의 관여로는 남북관계가 개선되기 쉽지 않은 상황인데 이 문제를 풀 유일한 인물이 트럼프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피스 메이커를 하면 저는 페이스 메이커로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미국 측의 호응을 유도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안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며 "남북 관계에 있어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고 한국의 지도자와 함께 협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위 안보실장은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양 정상의 의지를 확인했다"며 "앞으로 긴밀한 협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이 대통령의 안미경중 및 친중 오해도 불식했다는 평가다. 미국에 앞서 일본을 방문해 한미일 공조 의지를 보인 것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도 높이 평가했다고 위 실장은 전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초청 연설에서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란 입장을 가져온 건 사실"이라면서도 "미국의 정책이 명확하게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가면서 한국도 과거와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미국의 기본 정책에서 어긋나게 판단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hanantwa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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