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대북 유화책…'제재' 언급한 文보다 진전된 메시지

"남북 원수 아냐, 北 체제 존중"…'실용주의' 녹인 한반도 평화 구상
'할 수 있는 것부터' 철학 반영…"기존 제재 조치 안 하겠다는 건 아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광복 80주년, 대통령의 초대’ 행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SNS. 재판매 및 DB금지) 2025.8.15/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한재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광복 80주년을 맞은 15일 남북 대화 복원을 다시 한번 제안했다. 현 북한 체제를 인정하고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으로 복원하겠다 하는 등 '제재'보다는 '대화'에 방점을 찍었다.

우리 정부의 유화책에도 북측은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와 상관 없이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굳건한 의지를 먼저 보여주겠다는 이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광복 80주년인 올해가 대립과 적대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 공존과 공동성장의 한반도 새 시대를 함께 열어갈 적기라고 생각한다"며 "단절된 대화를 복원하는 길에 북측이 화답하길 인내하며 기대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남과 북은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고 인정하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의 특수관계라고 우리는 정의했다"며 "남북기본합의서에 담긴 이 정신은 6.15 공동선언, 10.4 선언, 판문점 선언, 9.19 공동선언에 이르기까지 남북 간 모든 합의를 관통하고 있는 정신이다. 우리 정부는 기존 합의를 존중하고, 가능한 사안은 곧바로 이행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남과 북은 원수가 아니라"라는 연설문에 없던 발언까지 내놓으며 "현재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행위를 할 뜻도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또 "남북 간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해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으로, 그리고 단계적으로 복원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광복 80주년에 나온 이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는 문재인 정부와 비교해도 파격적이란 평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반도 평화를 언급하면서도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강경한 발언을 내놨었다. 당시 문 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제재와 대화는 선후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북한이 추가적인 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해야 대화의 여건이 갖춰질 수 있다"고 조건을 달았다.

반면 이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대해 "비핵화는 단기에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매우 어려운 과제임을 인정한다"며 "남북, 미북 대화와 국제사회의 협력을 통해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나가겠다"고 했다. 압박보다는 대화를 통한 해결책을 찾겠다는 메시지다.

특히 이 대통령은 '통일' 언급을 자제하며 남북이 공존하는 한반도 평화에 무게를 뒀다. 문 전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에게 분단은 성장과 번영의 가장 큰 걸림돌인 동시에 항구적 평화를 가로막는 강고한 장벽"이라며 통일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과는 결이 다르다.

이 대통령이 통일보다는 남북 공존을 통한 한반도 평화 해법을 먼저 제시한 것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는 대통령의 평소 철학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먼 미래를 지향하는 대북 정책을 펴기보다는 대화부터 복원하자는 것.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에서 "남북 간 평화 공존이 우리 안보를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선택지"라고 언급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단절된 남북 대화를 조속히 복원해야 한다는 의지도 반영됐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자유가 박탈된 동토의 왕국, 빈곤과 기아로 고통받는 북녘 땅으로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확장돼야 한다"며 대북 강경책을 고수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 정권에서 남북관계가 경직돼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 가겠다는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라며 "기존에 했던 제재 조치 등을 전면적으로 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우리 군의 대북확성기 철거 조치에 '서울의 희망은 어리석은 꿈에 불과하다'는 제하 담화를 내놓는 등 대화 복원에 선을 긋고 있지만 이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유화적인 제스처를 유지하고 있다. 오는 18일부터 열리는 '을지 자유의 방패'(UFS) 한미 연합훈련 중 야외 기동훈련(FTX) 40여 건 중 절반가량인 20여 건을 9월로 연기한 것도 '한반도 평화 구상'의 연장선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이 9·19 군사합의의 선제적 복원을 언급하면서 향후 우리 군의 후속 조치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접경지 일대에서의 군사훈련 축소 등 가시적 조치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대통령의 발언은 9·19 군사합의를 복원하는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라며 "이후 액션 플랜이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hanantwa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