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의 '전두환 추징금' 환수… 朴대통령과의 '구원' 탓?
부친 재임 때 靑경호실 발탁…10·26 때까지만 해도 '돈독'
'5공' 출범 뒤 前 정부와의 차별화 시도에 점차 소원해진듯
- 장용석 기자
(서울=뉴스1) 장용석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올 6월11일 국무회의에서 전직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를 피력한 지 꼬박 석 달 만이다.
박 대통령의 관련 발언이 있은 뒤 국회는 같은 달 27일 본회의에서 공무원이 불법 취득한 재산에 대한 추징 시효와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을 여야 합의로 처리했고, 이에 검찰은 7월16일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등 재산 압류를 위해 연희동 자택과 가족 일가의 집·회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하면서 전 전 대통령 측을 압박해왔다.
결국 전 대통령 측이 이날 미납 추징금의 자진납부 계획을 밝히게 된 것은 이처럼 입법·사법·행정부를 넘나드는 '전 방위 압박'과 그에 대한 국민 여론의 호응 때문이란 게 정치권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더불어 청와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의 '전 전 대통령과의 관계 청산' 의지가 결국 전 전 대통령 측의 추징금 자진납부란 결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 따르면, 박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의 첫 만남은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대통령은 선친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지난 1976년 '퍼스트레이디 대행' 역할을 하면서 당시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로 발탁된 전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육군사관학교 11기 후배인 전 전 대통령은 종종 박 전 대통령의 가족 식사 자리에도 함께할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전 전 대통령은 1979년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박 전 대통령을 시해한 '10·26사건' 땐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았고, 사건 직후 박 전 대통령의 청와대 금고에서 발견한 9억5000여만원 가운데 6억원 가량을 박 전 대통령에게도 전달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도 지난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6억원을 받은 배경에 대해 "전 전 대통령의 심부름을 왔다는 분이 만나자고 해서 청와대 비서실에 갔더니 '박 전 대통령이 쓰시다 남은 돈이다. 생계비로 쓰라'고 해 감사히 받고 나왔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박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 서거 뒤 청와대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전 전 대통령과의 관계엔 크게 나쁠 게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시 박 대통령에게 '최초 전달'된 돈의 액수에 대해선 박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이 엇갈린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금고에서 발견된 돈 가운데 6억원만 받았다고 밝혔지만, 전 전 대통령 측 민정기 비서관은 지난달 언론에 배포한 자료에서 9억5000만원 전액을 박 대통령에게 전달했으나, 박 대통령이 '10·26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밝혀달라는 부탁과 함께 수사비에 보태 쓰라'며 3억5000만원을 다시 보내왔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박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후보 간 TV토론 과정에서 '6억 수수' 문제가 재차 논란이 되자, "아버지도 흉탄에 돌아가시고 어린 동생들과 살 길이 막막한 상황에서 '배려 차원에서 해주겠다'고 할 때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받은 것"이라며 "난 자식도 없고 아무 가족도 없으니 나중에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 간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멀어진 시점은 전 전 대통령이 1979년 '12·12쿠데타'에 이어 이듬해 집권한 뒤부터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전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정의사회 구현'을 국정목표로 내걸고 과거 정부를 '부정과 부패, 부조리의 시대'로 규정하면서 차별화를 시도했다.
박정희 정부의 실세 가운데 한 명으로 박 대통령의 사촌형부이기도 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도 '권력형 부정축재자'로 몰려 자신의 재산을 몰수당해야 했다. 당시 김 전 총리처럼 재산이 몰수당했던 사람은 3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도 6년 동안 선친의 추도식을 공개적으로 열지 못하는 등 '칩거' 생활을 계속했다. 언론 접촉도 1980년 초 일본 월간지와 일본 TV방송 인터뷰 외엔 전두환 정부 내내 하나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 박 대통령은 1989년 방송 인터뷰에서 "5공(제5공화국) 시절을 대단히 가슴 아프게 살아왔다. 아버지와 아버지가 하신 일이 극심하게 매도되던 시절이었다"며 "딸로서도 가슴 아픈 일이지만 국가에도 정신적으로 큰 손해를 입혔다"고 말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2007년 펴낸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도 선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18년간 한 나라를 이끌어온 대통령으로서 사후에 정치적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권력에 줄을 서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거짓과 추측, 비난 일색으로 매도되고 왜곡된다면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말로 당시 심경을 전했다.
박 대통령은 또 "아버지의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들조차 싸늘하게 변해 가는 현실은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며 "아버지가 이루셨던 일을 폄하하고 무참히 깎아내리는 것도 모자라 무덤 속에 계신 아버지에 대한 인신공격은 그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고 적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노태우 정부 출범 뒤인 1988년부터 각종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선친의 '명예회복'을 위해 힘을 썼고, 이후 '박정희·육영수 기념 사업회' 설립과 더불어 관련 활동을 본격화했다.
박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한 뒤에도 전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여전히 가까워지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박 대통령은 지난 15년 간의 국회의원 활동 기간 2001년 한나라당 부총재, 그리고 2004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등 단 두 차례 전 전 대통령의 자택을 예방한 것 외엔 따로 만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된 뒤엔 자신을 '독재자의 딸'이라고 지칭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물론,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를 각각 만났지만 전 전 대통령을 찾진 않았다.
박 대통령은 올 2월25일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자신의 대통령 취임식 때도 전 전 대통령과는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박 대통령은 개정 이전 관련 법률에 따라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 시효가 오는 10월로 만료되는데 따른 논란이 일자, "이 문제는 과거 10년 이상 쌓여온 일인데 역대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고 이제야 새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후 국회의 관련 법 개정과 검찰 수사 등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러나 청와대는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 문제와 관련해선 앞서 논란이 됐던 원자력발전소 불량부품 납품비리 등과 마찬가지로 "'비정상적 관행의 정상화' 차원에서 엄정한 법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일 뿐"이라며 박 대통령과의 개인적 관계와 연관 짓는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다른 여권 관계자도 "박 대통령이 과거 인터뷰나 자서전을 통해 5공 시절 경험에 대해 서운함을 표현한 것은 전 전 대통령 본인보다는 그 주변 인사들, 특히 박 전 대통령을 모시다 변절했던 사람들에 대한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최근 추징금 논란을 박 대통령과의 '구원(舊怨)' 때문이란 식으로 몰고 가는 건 좀 지나치다"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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