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지방선거, '표심'을 움직이는 말의 품격 [전문가 칼럼]
최태호 중부대 한국어학과 명예교수
온 나라가 선거의 열기로 뜨겁다. 가는 곳마다 현수막이 지천으로 널려 있고, 선거 방송 차들은 갖은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동원해 사람의 마음을 현혹하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우리 사회의 언어 생태계는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으로 변한다. 거리마다 나부끼는 현수막, 미디어를 채우는 정치인들의 발언 속에는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언어들이 압축돼 있다.
선거에 참여해 본 필자도 이런 것이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국어 교육과 언어학을 연구하는 필자의 눈에 최근의 선거 풍경은 단순히 권력을 주고받는 정치 행위를 넘어 우리 사회의 '말'이 가진 무게와 가치를 시험하는 거대한 언어 실험장으로 보인다. 정치철학이나 정책보다는 상대방을 비방하고, 자신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는 말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새로운 어휘나 용어들이 난무하는 것이 마치 코미디 프로에서 유행어를 난사(?)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우선 선거(選擧)라는 단어의 의미부터 살펴보자. '가릴 선'(選)에 '들(움직일) 거'(擧) 자를 쓴다. 단순히 마음에 드는 사람을 뽑는 행위(選)에 그치지 않고, 우리 공동체를 위해 귀하게 들어 쓸 인재를 거두어들인다(擧)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한국어학적으로 볼 때 선거는 국민이 주어로 참여하는 가장 거대하고 능동적인 '선택의 문장'이다. 주체가 국민이 된다는 말이다.
그 선택의 구체적인 행위가 바로 투표(投票)다. '던질 투'(投)에 '표 표'(票)를 사용한다. 과거 그리스 아테네에서 도자기 파편에 이름을 적어 던지던 도편추방제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던진다'는 아날로그적 역동성을 유지하고 있다. 유권자가 던지는 것은 한 장의 종이가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를 향한 '책임의 무게'다. 이 책임의 무게를 등한히 여기면 안 된다. 한 표의 무게가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
특히 최근 정착된 사전투표(事前投票) 제도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는 언어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미리 사'(事), '앞 전'(前). 선거 당일이라는 단 하루의 시점(時點)에 갇혀 있던 국민의 주권 행사를 '기간'(期間)의 개념으로 확장했다. 이는 언어학에서 말하는 '시상의 확장'처럼, 유권자에게 더 깊이 고민하고 참여할 수 있는 시공간적 여유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언어의 성숙을 뜻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전 선거가 요즘은 부정적인 의미로 작용하는 면이 없지 않다. 당리 투표만 강조하는 단체가 있고, 사전 선거로 모두가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로 설득하려는 무리도 있다. 중요한 것은 공정성이다.
선거 언어의 핵심인 공약(公約)에 이르면, 우리 선거 문화의 그늘과 마주하게 된다. 공약은 '공변될 공'(公)에 '맺을 약'(約), 즉 대중과 맺는 공식적인 약속이다. 하지만 많은 유권자는 이를 '빌 공'(空) 자를 쓴 '공약'(空約), 즉 '헛된 약속'으로 냉소하곤 한다. 동음이의어가 만들어낸 이 슬픈 언어유희는 정치권이 자초한 결과다.
언어학에서 '말'은 신뢰라는 사회적 계약을 바탕으로 존재한다. 귀를 현혹하는 화려한 수식어와 실현 불가능한 숫자로 점철된 말은 언어의 본질을 훼손하는 '공허한 기호'에 불과하다. 그래서 공약을 얼마나 실천했는가 살펴야 하고, 실천할 수 있는 공약인가 검토한 후 투표에 임해야 한다. 말의 잔치로만 끝나는 공약(空約)은 이제 투표로 날려 보내야 한다.
한국어 교육 관점에서 선거는 가장 훌륭한 '소통의 텍스트'여야 한다. 좋은 정치인은 유권자의 언어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다. 현란한 외래어나 갈등을 조장하는 배제의 언어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보듬는 정제되고 품격 있는 한국어를 구사해야 한다. 설득의 언어는 날카로운 칼날이 아니라 공감의 온기를 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거는 끝이 나도 그들이 남긴 말은 기록으로 남는다. 유권자의 '표심'(票心)을 잡기 위해 내뱉은 말들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지 않으려면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무게를 직시해야 한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파수꾼 역할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투표소에서 우리가 행사하는 '투표'(投票)라는 언어가 가진 진짜 힘이다. 이번 선거가 끝난 후, 우리 사회의 언어적 품격이 한 단계 더 성숙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opinion@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