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가족부로 재도약 시동…"기능마비 회복 급선무"

[李대통령 100일] 강선우 낙마 후 원민경 지명에 기대감
딥페이크·교제폭력 교육 절실…성평등 의제 공론화 의지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일대에서 열린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대응 긴급 집회 ‘불안과 두려움이 아닌 일상을 쟁취하자!'에서 참석자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9.6/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이비슬 한지명 기자 = 이재명 정부의 여성가족부는 성평등 의제, 아동·청소년 지원, 외교·역사 문제를 아우르는 컨트롤타워로서 전열을 재정비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폐지 기로에 놓인 지 3년여 만에 '성평등가족부'로 재도약을 앞둔 여가부는 힘 있는 정부 부처로서 리더십을 증명하기 위한 시험대에 섰다.

긴 수장 공백에 후보 낙마까지 늦어지는 조직 개편

여가부는 2022년 윤석열 정권 출범과 동시에 존치 논란으로 흔들리며 예산 삭감, 사업 조정 등 불안정한 지위를 유지해 왔다. 1년 반 넘게 수장 자리가 비어 있었지만 새 정부 들어서도 강선우 장관 후보자의 낙마로 조직개편은 더 늦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가족법 분야 전문가이자 여성 인권 활동을 오랫동안 해온 원민경 후보자를 지난달 13일 지명하며 조직 안정화에 시동을 걸었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100일, 이재명 정부가 여가부를 성평등가족부로 확대 개편해 이루겠다고 약속한 국정 과제는 크게 △아동·청소년·가족 지원 △성평등 사회 실현 △여성 안전 및 건강권 보장으로 대표된다.

이 가운데 아동·청소년·가족 지원을 위해 정부는 성착취 피해아동·청소년을 발굴하고 자립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온라인 성착취 대응을 강화하고 아이돌봄과 아동양육비 지원도 확대하겠다고 했다.

여가부 내 청소년 정책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청소년 인권 단체 '아수나로'의 수영 상근활동가는 "전반적으로 필요한 정책들이라 생각한다"며 "여가부의 내년도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도 윤석열 정부에서 사라진 성평등 지원 사업을 복구시키려는 흔적이 보였다"고 평가했다.

반면 "아쉬운 점은 기존 청소년 정책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예컨대 학생인권법 제정, 청소년 참정권 등 바뀐 시대상에 맞는 새로운 의제와 요구가 반영되지 않아 성평등가족부에서는 청소년 정책 기조도 전환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가부는 지난 2022년 대선 당시 젠더 갈등의 정점에 섰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여가부 폐지를 공약하자 '이대남' 유권자들은 높은 지지율로 화답했다. 당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이하 남성의 59%, 30대 남성의 53%가 윤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3년 만에 치른 이번 대선에서 이 대통령이 젠더 이슈에 정면 돌파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게 된 배경이다. 역차별이 공정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2030남성들의 표심을 섣불리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N번방 실체를 밝힌 '추적단 불꽃' 활동가 박지현 씨를 캠프에 영입하는 등 적극적이었던 행보와는 대조적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국무회의에서 "남성들이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영역이 있는데 공식적 논의를 어디서도 안 하고 있다"며 "여성정책을 주로 하겠지만 특정 부분에서의 남성 차별을 연구하고 대책을 만드는 방안을 점검해달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탄핵 광장에 20대, 30대 여성들과 성소수자, 사회적 약자가 많았음에도 국정을 이끄는 조직과 현장의 괴리는 여전히 크다"고 말했다.

성평등에 관한 이 대통령 신뢰도는 원 장관 지명 결정 이후에서야 회복되고 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수영 활동가는 "강선우 전 후보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이재명 정부도 다를 바가 없다는 평가가 많았다"고 했다.

원민경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2025.9.3/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성평등 정책 총괄 부서로 역할 잡아야"

원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모두발언에서 "여성가족부를 힘 있는 성평등가족부로 확대 개편해 성평등정책 총괄 조정과 거버넌스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여가부 소관 업무를 현장 일선에서 경험한 전문가들 또한 입을 모아 '여가부 기능 회복' 필요성을 강조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윤석열 정부에서 효율이란 이름으로 상담소 예산을 줄이고 특별한 기준 없이 통폐합했다"며 "여성폭력과 성평등에 대한 시민 의식 고양을 위한 예산 등을 모두 없애 굉장히 우려스러웠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몇 년간 엉망진창이다가 역할이 완전히 희미해진 것 같다"며 "여가부가 무엇을 하는 부처인지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이를 강화해야 한다. 성평등 정책 총괄 부처로서 역할을 잡아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원 후보자는 또 비동의 강간죄, 차별금지법, 생활동반자법을 포함해 주요 성평등 의제를 공론의 장에 올려 논의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인사청문 과정에서는 "성평등 사회와 성매매는 공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여가부가 1년 반 수장 공백 상태를 겪는 사이 교육부 등 유관 부처와 협업이 절실한 청소년층 디지털 성범죄는 급격히 확산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따르면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 중 여성 비율은 97.1%, 10·20 연령대가 전체의 90%를 넘었다.

정부는 여가부 국정과제로 딥페이크 성범죄물 탐지 시스템 고도화,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지원 강화를 다짐하는 한편 디지털 성범죄예방교육을 추진하고 교제폭력·스토킹 피해자에 대해서도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송 대표는 "딥페이크 범죄는 여성에 대한 고전적 성폭력이 기술에 발달에 힘입어 새로운 형태로 등장한 것일 뿐"이라며 "이같은 성폭력이 무엇에 기인해 계속해서 다른 얼굴로 우리 사회에 등장하는지를 놓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성폭력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가해자에 대한 분명한 처벌"이라며 "방향성 없는 피해자 지원 확대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앞서 원 장관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주권 정부에서, 제가 장관이 된 후에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시각 조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나영 이사장은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윤석열 정부는 대놓고 퇴행했다"며 "야당 기조가 협조적이지 않아 무너진 부분들을 세워나가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 장관은 여가부를 개혁과 회복의 중심에 세워야 하는 무거운 기대를 안고 출발선에 섰다. 수영 활동가는 "윤석열 정부 여가부는 제 기능을 상실했고 사실상 후퇴의 연속이었다"며 "원 장관이 소신 있게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가 크다"고 당부했다.

b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