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尹 파면 1년, 헌재 결정문에서 잊힌 그 문장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진행되고 있다. 2025.4.4 ⓒ 뉴스1 사진공동취재단

(서울=뉴스1) 장성희 기자 =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헌법재판소는 전원일치 의견으로 12·3 불법 비상계엄을 저지른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추운 겨울 영하 20도의 날씨에 여의도 국회와 광화문, 한남동 대통령 관저, 헌재 앞에서 윤 전 대통령 파면을 외친 시민들은 그날 서로를 얼싸안고 환호했다.

2026년 4월 4일. 계엄으로 뒤숭숭했던 나라의 분위기는 1년 사이 빠르게 수습되고 있다. 대통령 선거를 통해 평화로운 정권 교체가 이뤄졌고, '내란 우두머리'로 기소된 윤 전 대통령은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며 청산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내란 전담 재판부 설치법, 1차 3대 특검에 이은 2차 종합특검 출범, 그리고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를 골자로 한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신설까지 형사·사법제도 전반에 걸친 변화가 숨가쁘게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속도를 둘러싼 우려도 적지 않다. 법조계와 일선 수사 현장에서는 졸속 입법과 부작용 가능성을 경고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됐다고 보긴 어렵다. 절대 다수 의석을 가진 여당이 입법을 밀어붙였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야당인 국민의힘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민의힘은 주요 법안마다 강하게 반발하며 장외 투쟁과 보이콧으로 맞섰지만, 대안을 제시하거나 협상의 여지를 넓히는 모습은 충분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지난 1년간 내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나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

지난 1년 간 숙의와 타협은 사실상 실종됐다는 점에서 지금의 국회는 여야 모두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쯤에서 다시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지난해 탄핵심판 말미에 국회 측을 주시하며 읊은 결정문 문장이다.

문 전 대행은 "국회는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윤 전 대통령의 위헌·위법했던 계엄 선포와 별개로 입법 권력을 쥔 국회 역시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일침이자 경고였다. 당시 국회 측에는 법제사법위원장으로서 탄핵소추단장을 맡고 있던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앉아 있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 탄핵 1년이 지난 국회에선 헌재가 언급한 소수의견 존중, 관용, 대화와 타협 같은 단어를 찾아보기 어렵다. 여전히 '속도전', '강행 처리', '파행' 같은 단어가 익숙하다. 여당은 개혁과 청산의 이름으로 밀어붙이고, 야당은 저지의 명분으로 맞선다.

정 대표는 탄핵 1년이 된 지난 4일 "헌법의 적을 헌법의 힘으로 물리쳐준 헌재에 감사했다"고 파면 순간을 회상했다. 그러나 거대 여당 대표가 기억해야 하는 것이 주문을 읊던 순간만은 아닐 것이다.

민주당과 정 대표는 다수 의석이 주는 힘만큼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입법의 정당성은 속도가 아니라 과정에서 나온다. 충분한 논의와 설득 없이 이뤄진 개혁은 오래가기 어렵다.

국민의힘 역시 반대를 넘어서는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비판과 견제는 야당의 책무지만, 그것이 국회를 멈춰 세우는 방식에만 머문다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협상과 대안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책임 있는 야당의 역할이다.

윤 전 대통령의 탄핵이 한 시대를 정리했지만, 민주주의를 완성한 것은 아니다. 그날 문 전 대행이 국회를 향해 던진 문장은 탄핵 이후, 민주주의를 완성해야 할 정치의 지향점을 제시한 것이었다.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관용과 자제를 바탕으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론에 이르는 것. 탄핵 1년이 지난 지금, 국회가 다시 돌아가야 할 자리다.

grow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