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돈과 표가 얽힌 유혹 '정교유착'
- 한상희 기자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헌법 제20조 2항에 명시된 정교분리 원칙이다. 하지만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는 통일교 금품 로비 의혹은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얼마나 헌법에 무감각한지를 보여준다.
이른바 '통일교 게이트'라 불리는 이 사건은 통일교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정치권에 조직적으로 접근했고, 그 대가로 각종 청탁과 민원이 오갔다는 것이다.
통일교가 교단의 숙원 사업인 한·일 해저터널과 대북 사업 등을 위해 정치권 줄 대기에 나섰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을 깬 종교의 정치 개입이자 정치권이 종교를 수단으로 삼은 전형적인 정교유착 사건인 셈이다.
문제는 이 의혹이 특정 정권이나 진영의 스캔들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검 수사는 애초 윤석열 정부와 통일교의 결탁 의혹에서 출발했다. 20대 대선 때 자금·조직을 동원해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지원했고, 건진법사를 통해 김건희 여사에게 샤넬 가방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건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전재수'라는 이름이 불리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통일교 로비가 문재인 정부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현 정권 유력 인사까지 수사선상에 오르기 시작하면서다.
야권의 차기 부산시장 후보군으로 꼽히던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통일교로부터 현금과 불가리 명품 시계를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통일교가 장기간에 걸쳐 큰그림을 그린 정황도 드러났다. 2017년 한학자 통일교 총재가 정교 일치를 골자로 한 '신(神)통일한국' 전략을 발표한 이후 정치권 로비가 본격화됐다는 것이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통일교 내부에서 여야 국회의원 공천권, 2027년 대권 도전, 청와대 보좌관 진출까지 논의됐다는 진술도 재판 과정에서 공개됐다. 통일교의 구상이 단순한 허상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사건은 몇몇 정치인의 도덕성 문제로 치부할 사안이 아니다.
헌법은 종교와 정치는 분리돼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유력 정치인이 통일교 본부 천정궁을 찾아 총재 앞에 큰절을 했다는 진술, 공천과 선거 자금, 특혜성 지원 등이 오갔다는 정황은 그 원칙이 현실 정치에서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11세기 중세 유럽에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는 파문을 풀기 위해 눈길 위에서 교황에게 사흘간 무릎을 꿇었다. 종교 권력 앞에 정치 권력이 고개 숙인 이 장면은 '카노사의 굴욕'으로 남았다.
현재 대한민국 정치인은 표를 위해 종교에 다가갔고, 종교는 권력을 꿈꾸며 정치의 문을 두드렸다. 그 사이에서 헌법은 뒷전으로 밀렸다.
이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우리는 정치가 표를 이유로 종교 앞에 고개를 숙이는, 21세기의 카노사의 굴욕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angela02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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