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보루 '필버' 통과의례 전락…22대 국회 6번째

"실효성 없다" 무용론 팽배…토론 내용보다 발언 시간 더 주목
강대강 대치 국면서 면피성 지적도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8회 국회(임시회) 본회의에서 한국교육방송공사법(EBS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2025.8.21/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서상혁 기자 = 여야가 노란봉투법 등 쟁점 법안에 합의하지 못하면서 국민의힘이 또다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돌입한다.

이번 국회 들어 부쩍 늘어난 필리버스터를 두고 여의도 안팎에선 '소수당 최후의 저항 수단'이라는 본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는 비판이 적잖다. 거대 여당은 의석으로 밀어붙이고, 야당은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남발하면서 일종의 매뉴얼로 전락한 모습이다. 여야 간 극한 대치가 일상화되고 있는 만큼, 이번 국회 들어 역대급 필리버스터 기록을 써나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1일 정치권에 따르면 'EBS법'으로 불리는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의힘 주도의 국회 필리버스터가 이날 오전부터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은 방송문화진흥회법, 노란봉투법, 2차 상법 개정안을 차례로 강행 처리할 계획이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로 맞대응할 예정이다.

22대 국회 들어 여야의 대치가 일상화되면서 필리버스터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 제정에 따라 40년 만에 부활한 후 19대 국회에서 1회, 20대와 21대 국회에서 각각 2회씩 열렸다.

그러다가 지난해 22대 국회 개원 직후 '방송4법' '민생회복지원금' '노란봉투법' '해병대원특검법'으로 네 차례 열렸다. 이번까지 합치면 22대 국회 들어서만 여섯 번째다.

정치권에서 필리버스터는 소수당이 쓸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 여겨진다. 하지만 점차 '면피성 매뉴얼'로 전락하면서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 적잖다.

더불어민주당이 거대 의석으로 법안을 밀어붙이면 국민의힘은 마치 준비가 돼 있던 것처럼 필리버스터 카드를 꺼내는 일련의 절차가 '뉴노멀'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필리버스터가 남발되면서 실효성에도 점차 의문 부호가 붙고 있다. 여론의 물줄기를 바꾸기는커녕 몇시간을 발언했는지 등 부차적인 요소들이 더 주목을 받는 모습이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필리버스터는 매우 엄중한 정치적 의사 표시로서 임팩트 있게 사용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너무 남발되는 모습"이라며 "여론과 함께 가야 파괴력을 가질 수 있는데, 여론전 등 사전 작업이 충분치 않으니 자꾸만 면피성 필리버스터로 비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야당이 밀어붙이고 있으니 지도부는 뭐라도 해야하겠지만, 실효성이 없는 것은 사실 아닌가"라며 "강대강으로 가면 결국 국민들만 피곤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필리버스터는 진귀한 볼거리로 여겨질 정도로 드문 일이었다. 주로 소수당의 결기를 보여주는 용도로 활용됐다.

1964년 4월 20일 야당 의원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준영 자유민주당 의원이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일본으로부터 3000만 달러를 받았다'고 폭로한 일로 구속 위기에 처하자, 이를 막기 위해 국회 본회의에서 5시간 19분 동안 연설했다. 한때 기네스북에 국회 최장 발언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시절 원내대표를 맡았던 김성태 전 의원은 뉴스1에 "여당의 단독 플레이도 문제이지만, 이를 비판하려면 자신을 희생하고서라도 국민의 인식을 바꿀 노력이 필요하다"며 "진정성을 담아낼 길이 필리버스터 밖에 없는 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hyu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