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화주의와 정의…문재인 정부, 무엇이 잘못됐나

편집자주 ...최근 우리 사회는 극단적 진영논리로 정치 불안과 함께 사회적 동력이 급속도로 이완되고 있습니다. 뉴스1은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진단하고 견제와 균형이 조화롭게 이뤄지는 대안을 모색하는 취지에서 '21세기 공화주의클럽(약칭 공화 21)‘ 소속 학자들과 함께 릴레이 기고를 기획했습니다. 공화 21은 민족대 반민족, 민주대 반민주, 보수대 진보 등 이분법적 선악관에 기초한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대화와 타협 시민참여 주민자치 연방주의 국민통합 등을 기치로 하는 공화주의 국가를 모색하는 학자들의 모임입니다. 뉴스1은 총 6회에 걸쳐 현 정부·정책·정치상황의 문제점을 되짚어 보고 그 대안을 모색합니다.

한면희 공화21 공동대표·성균관대 초빙교수. ⓒ 뉴스1

(서울=뉴스1) 한면희 공화21 공동대표·성균관대 초빙교수 = 문재인 정부는 2016년의 촛불민심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힘입어 등장했다. 통치와 정책 운영서 갈고닦은 실력을 보여준다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집권 초기에 남북관계에서 진중한 행보를 보여주어 고조되던 북핵 위기를 수면 아래로 내림으로써 국민들을 일단 안도케 했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자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야심차게 추진할 때는 다소 불안 속에서도 기대를 갖고 지켜볼 수 있게 했다. 2020년 초 찾아든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서는 비교적 잘 구축된 보건의료 방역체계를 정상 작동케 함으로써 위기관리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집권 4년을 맞이한 지금 그 성적은 4.7재보선이 말해주듯이 참담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성찰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의 회자되는 취임사를 보자.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천명함으로써 국민들에게 한껏 기대를 갖게 했다. 이는 명실상부가 아니더라도 가까이 다가갈수록 고무적인 진전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정치철학자 하버드대 존 롤스는 1971년에 '사회정의론'을 출간하면서 정의에 이르는 길을 분별하였다. 첫째, 예컨대 케이크를 먹고자 여럿 모였을 때 자른 사람이 맨 나중에 자신의 것을 선택하도록 하면, 절차의 공정성 방식에 납득 가능하고 그 결과도 정의롭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예로서 일상적 형사재판서 보듯이 알맞게 악인에게 벌을 주고 죄 없는 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결과는 단연코 정의롭지만, 그 결과로 이끌 공정한 절차를 보장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은데, 실적 위주 수사와 유전무죄 및 전관예우의 로비, 판결의 착시가 섞이면서 죄 없는 자가 유죄, 죄 지은 자가 무죄를 받는 사태가 종종 발생한다.

롤스는 절차를 무시한 결과적 정의관은 마르크스주의처럼 개인의 자유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므로 배제하고 절차의 공정성에 주안점을 두었다. 다만 케이크 사례의 완전한 절차나 형사재판 사례의 불완전 절차의 정의는 현실 사회 전반의 복잡성과 자유로운 경제체제에 비추어볼 때 적합하지 않다고 거부하면서, 순수한 절차적 정의관을 새 대안으로 제안한다.

롤스는 누구나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선택하리라는 전제 속에 사회계약을 맺는 제도를 구성한다. 그는 무지의 베일을 쓰는 착상에 따를 때 절차의 공정성이 보장되고, 그리고 이런 작동 방식에 의해 초래되는 결과는 정의롭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정의의 두 원칙, 첫째 기초적 자유에 대한 평등한 권리, 둘째 최소 수혜자의 최대 이익 및 사회적 직책에 대한 공정한 기회 균등을 제시한다.

문대통령의 취임사는 최대로는 완전한 절차적 공정성의 정의관을 피력한 것이거나 최소로는 롤스의 순수한 절차적 공정성의 정의관을 내세운 것으로 파악된다. 물론 정치적 수사로 볼 수도 있지만, 사뭇 진지한 문대통령 특유의 태도에 비추어보면 별 생각 없이 주어진 글을 낭독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다르게 책임 의식을 가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과연 문재인 정부는 행한 발언 취지에 무게를 두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했는지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사회적 직책에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였는가? 인재를 널리 구한 흔적을 찾기 어렵다. 자신과 정책 기조에 뜻을 같이 하는 범주로 제한하더라도 그렇다. 대부분 좁은 진영 안에서, 그것도 자신이 만난 적이 있는 인사로 국한하여 쓴 사람 또 쓰는 반복을 되풀이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도 기회의 공정성을 열어놓지 않음으로써 기회를 엿보는 많은 청년들을 실망시켰다.

둘째,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최소 수혜자에게 보다 나은 혜택을 주자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현재까지 성과가 그다지 없다. 반면 의도와 상반되게 펼쳐진 부동산 정책은 집 없는 자를 빈곤 수준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사회 진출 청년들에게는 집 가질 희망을 앗아간 대형 참사로서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 불이익을 안겨준 형세이다.

셋째, 다툼의 소지가 있지만 기초적 자유에 대한 평등한 권리도 유린한 사례가 있으니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 대북전단금지법이 그것이다. 탈북자 중심으로 대북전단을 통해 동포에게 자유의 실상을 알리려는 표현의 자유 행위를 북한 당국과의 교섭에 차질을 빚는다는 (진짜)이유로 금지했으니 민주주의를 해친다는 의심을 살 법하다. 미국 하원 청문회에 오른 국제적 사안인 만큼 제대로 된 평가가 필요하다.

정의는 사후 치료적 성격이므로 사전 예방적 덕목이 더 중요하다. 마이클 샌델은 1982년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를 통해 롤스를 비판하는데, 무지의 베일 착상에서 제 이익을 도모하는 인간은 무연고적 자아의 상이어서 실제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실 속의 인간은 누구나 소속 공동체나 사회, 국가로부터 역사와 문화, 언어를 습득하며 사회적 교섭을 하는 가운데 살아가는, 상황에 뿌리박힌 자아로서 나름의 서사적 궤적을 그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샌델은 1996년에 출간한 '민주주의의 불만'에서 민주주의 정부가 자유주의를 토대로 개인에 대한 간섭 불허와 선택을 중시함으로써 선에 관해 뒷짐을 진 중립적 모호함을 취한다고 비판하면서 미국 건국의 공화주의를 소환하여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타개할 이상을 제시하고 있다. 그가 찾아낸 공화주의는 개인이 자유를 누리되,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정치 공동체에 자치로 참여하고, 시민으로서 덕성을 갖추게 하여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조이다.

이제 공화주의 시각서 민주공화국의 대통령 문재인 정부를 평가해보자. 첫째, 적폐청산은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시정적 정의의 부류여서 알맞게 필요하지만, 속성상 과잉으로 치달아 그 유탄을 자신도 맞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오캄의 면도날과 같아서 정치적 적을 향하지만 반사적 이득이 자신들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과도하게 진행되는 관성이 있게 마련인데, 아니나 다를까 조국사태와 청와대 핵심 참모들 일부에서 나타났듯이 자신들도 폐단을 저지르면서 불법이나 불의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위선적 내로남불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둘째, 미국 헌법의 아버지로서 대통령을 역임한 제임스 매디슨은 공화주의 이상에 의거하여 권력분립에 따른 상호견제와 조화가 이루어지도록 제도를 짜면서, 주나 연방 정부에는 가능한 한 덕을 갖춘 지도자들로 채워져서 사익추구보다 공동선을 지향토록 하는 형성적 기획을 도모하였는데, 문정부의 적지 않은 인사들이 기만과 위선이라는 부덕함의 소치를 적지 않게 보여주었다. 물론 사람인지라 누구나 허물은 있게 마련이지만, 대통령이 도를 넘은 사람들을 적지 않게 배치한 것은 공화주의 이상에 대한 배반이라 아니할 수 없다.

셋째, 공화주의의 공동선은 공적 조화도 추구하는데, 진영정치의 배타성이 지나쳐서 정책 경합을 할 상대방을 악의 세력으로만 단죄하는 과오를 범한 것도 문제이고, 더 나아가 정치진영의 편 가름을 국민의 편 가름으로까지 확대하는 씻기 어려운 과오를 범하였다. 남을 인정하지 않는 자, 국민도 그를 승인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가져야 한다. 본을 보이려면, 설혹 정치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단점을 물고 늘어지기보다 장점도 보고 그 역할을 존중할 때, 자신도 존중 받게 될 것이다.

여기서 완전 정부를 기대하자는 것은 아니다. 높은 도덕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하였으니 핵심 기준이라도 알고 진정 노력을 하라는 것이다. 어떤 정부라도 정의와 민주주의, 공화주의에 이르기까지 이상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을 할 때 좋은 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기고문의 내용은 뉴스1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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