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발 돈줄에 北 '돈맥경화' 풀렸나…명품·고층빌딩 넘치는 평양
러 파병·무기지원 대가 최대 20조원 추산…中 교역·가상자산 탈취도 외화 공급
오메가·샤넬에 70만원 스마트폰까지…"경제 호황보다 '프로젝트 붐'"
- 김예슬 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과 대러 무기 지원 등 북러 군사·경제 협력으로 대규모 자금과 물자가 북한에 흘러들면서 수도 평양의 풍경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고층 건물이 잇따라 들어서고 해외 명품과 고가 스마트폰 소비도 늘면서 북한이 이례적인 특수를 누리고 있다는 평가가 23일 나온다.
21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최근 평양에서는 대규모 건설사업과 함께 고가 소비재를 취급하는 상업시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대성백화점에서는 스위스 시계 브랜드 오메가와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의 화장품 등이 판매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상당수 제품은 중국 등을 경유한 병행수입 방식으로 북한에 들어가는 것으로 분석된다.
류경금빛상업중심에서는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도 확인됐다. 다만 이케아가 북한 시장에 정식으로 진출해 직접 판매하는 형태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소비생활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평양에서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택시를 호출하거나 QR코드로 물건값을 결제할 수 있으며, 판매가격이 500달러(약 70만원)에 이르는 스마트폰도 유통되고 있다.
북한 특권층의 해외 명품 소비 자체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변화의 범위가 건설과 자동차, 상업·여가시설 등 도시 전반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특히 2019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당시와 비교해 평양의 외관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격히 밀착한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가 꼽힌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은 북한이 2023년 8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러시아에 병력과 군수품 등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확보한 현금과 물품의 가치가 약 77억~144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한화로 약 10조7000억~20조원에 달하는 규모다.
북러 협력 확대는 북한의 경제지표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은행이 추산한 지난해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38조2640억원으로 전년보다 3.5% 증가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생산이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과의 교역도 회복되고 있다. 올해 1~5월 북한의 대중 수출 규모는 전년 동기보다 68% 증가했다.
사이버 공간을 통한 외화 확보도 이어지고 있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TRM랩스는 올해 상반기에만 북한 연계 해킹 조직이 탈취한 가상자산이 약 6억4300만달러(약 9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러시아와 중국을 통한 교역과 협력에 더해 불법 사이버 활동까지 북한으로 유입되는 외화의 통로가 다양해진 셈이다.
다만 평양의 화려해진 모습이 북한 주민 전체의 생활수준 향상이나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이 경제 관련 통계를 충분히 공개하지 않고 있어 평양 이외 지역까지 소비와 소득 증가가 확산했는지 확인하기 어렵고, 시장과 민간 경제활동에 대한 국가의 강한 통제 역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에서 확보한 막대한 외화와 물자가 생산시설 확충이나 산업 경쟁력 향상 등 장기적인 성장 기반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이 때문에 최근 북한의 경제 상황은 전반적으로 고르게 성장하는 '호황'이라기보다는 지도부가 중시하는 대규모 건설·개발사업에 자원이 집중되는 '프로젝트 붐'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한국이 베트남전 파병 등을 통해 확보한 외화를 산업시설과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하며 제조업과 수출 경쟁력을 끌어올린 것과는 구조적으로 다르다는 평가도 있다. 북한에서는 국가가 자원 배분과 시장을 강하게 통제하는 만큼 외부에서 확보한 자금이 민간 투자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최근 평양의 변화는 북러 밀착으로 유입된 막대한 자금이 만들어낸 일시적인 '특수'의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다. 러시아발 자금이 평양의 스카이라인과 소비 풍경을 바꾸고 있지만, 이를 북한 경제 전반의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yese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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