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여름나기[정창현의 북한읽기]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편집자주 ...북한 정치·군사·사회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함께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등 북한 수뇌부에 대한 '리더십 해석'을 통해 반 발짝 앞서 북한의 변화를 읽어낸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은 서울대 대학원(국사학과)을 마치고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 전문기자를 거쳐 국민대·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국가기록원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살수차가 평양시의 도로와 잔디에 물을 뿌리고 있다.(필자 제공)

연일 낮 기온 35도를 넘나드는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북한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전국적으로 '무더위주의경보'와 '고온주의경보'가 내려졌다. 평양의 밤 기온이 25도 밑으로 내려가지 않는 열대야 현상도 지날 달 말부터 계속되고 있다. 북한의 기상수문국(우리의 기상청)은 일사병과 열사병 등 온열질환 예방을 위해 한낮 야외 활동을 자제하고, 물을 충분히 섭취하는 등 건강관리에 각별히 유의할 것을 당부했다.

낮 시간 야외 건설공사가 중단되고, 평양의 주요 도로에는 살수차가 등장했다. 밖에 나갈 때는 양산과 부채가 필수가 됐고, '손풍기'를 들고 다니며 더위를 식히는 모습도 이제 낯설지 않다. 평양시와 신의주시 등 대도시 중심으로 냉방기 구입이 늘고 있지만 일반 가정집에 선풍기 외에 냉방기를 갖춘 경우는 드물다. 전력 공급 또한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언론에 보도되고 있지 않지만 북한에도 온열질환자, 지역별 가뭄과 물 부족, 산불 등의 피해가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주민들도 나름의 피서법으로 폭염을 견뎌낸다. 크게 보면 20여 년 전 세 차례 8월의 평양과 묘향산, 정방산 등 지방의 명소를 다닐 때 본 모습과 달라지지 않았다. 평양 시민들은 일반적으로 가족단위로 집 주변의 산과 공원, 강과 해변을 찾아 무더위를 식힌다.

궤도전차와 버스를 타고 접근이 용이한 모란봉과 대성산, 용악산에는 더위를 피해 나온 가족들로 항상 빼곡하다. 해가 지면 대동강 강변을 산책하거나 만수대 인근 분수화초공원에 나와 더위를 쫓기도 한다.

평양의 음료판매점에서 빙수와 냉차를 사서 먹는 모습.(필자 제공)

시원한 냉차와 빙수, 아이스크림을 파는 매대가 붐비고, 직장인들은 퇴근길에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더위를 식힌다. 평양시의 경우 냉차와 빙수, 아이스크림을 파는 음료판매점이 1000여 개가 운영되고 있고, 150여 개의 대동강맥주집들이 오후 4시부터 저녁 8시까지 영업한다. 현재 여름철에는 하루 평균 8만여 명의 시민들이 맥줏집들을 찾는다고 한다.

평양의 여유 있는 가정주부들은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창광원수영장을 자주 찾는다. 은퇴한 사람들은 모란봉이나 대동강가를 산책하거나 그늘을 찾아 장기를 두며 더위를 피한다. 대동강변에서 낚시를 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평양단고기집에서 보신탕을 먹고 있는 평양시민들.(필자 제공)

북한 사람들이 즐겨 찾는 여름철 인기음식은 냉면과 단고기(보신탕)다. 평양시에는 옥류관, 청류관 등 해외관광객들에게도 알려진 유명 냉면집들이 있지만 평양시민들에게는 평양면옥이 '냉면 맛집'으로 더 인기가 높다. 여름철의 경우 하루 1만 2000여 명이 찾는다고 한다. 평양냉면은 대동강숭어국, 평양온반, 녹두지짐과 함께 예로부터 평양의 4대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집에서 직접 면을 뽑아 냉면을 만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외식이 대세다.

우리와 달리 북한에서는 여름철 보양식으로 여전히 단고기집의 인기가 높다. 북한에서는 예로부터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전통이 있었다며 평양단고기집을 비롯해 다양한 보신탕집을 소개한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개고기는 성질이 따뜻하고 독이 없으니 장과 위를 두텁게 하고 기력을 더해준다"라고 나와 있다. 평양시에는 단고기요리만을 전문으로 만들어 봉사하는 식당이 60여 개나 된다. 부위별 코스요리도 있지만 깊게 우려낸 탕은 다른 곳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진국이다.

문수물놀이장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모습.(필자 제공)

그래도 여름철 피서의 최고는 물놀이다. 평양을 대표하는 명소는 문수물놀이장과 능라도 야외수영장이다. 20년 전에 문수물놀이장은 평범한 야외수영장이었지만 김정은 시대에 종합 물놀이장으로 새 단장됐고, 능라도 야외수영장은 능라인민공원 안에 곱등어관(돌고래관)과 함께 새로 건설됐다. 평양 시민들은 물론 평양 견학이나 나들이 온 지방 사람들도 연일 앞다퉈 이곳을 찾고 있다. 한 번에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문수물놀이장에는 일요일의 경우 1만 명 이상이 몰리기도 한다. 이외에도 평양에는 만경대물놀이장, 창광원수영장,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대학 수영장,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수영장 등이 있다.

지방에는 강이나 공원에 소규모 야외수영장이 마련돼 있다. 그동안 근로자 편의시설로 수영장을 갖춘 공장이나 농장도 늘었다. 해수욕장으로는 원산의 명사십리와 송도원해수욕장, 함흥 마전해수욕장, 서해안의 온천군 룡수포 등이 유명했다. 지난해에는 명사십리에 종합리조트를 건설해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가 문을 열었다. 숙박 인원 2만 명, 해수욕장과 각종 봉사 시설의 하루 최대 방문객 수용 능력 4만 명 규모다. 칠보산 해안가를 비롯해 동해안 여러 곳에 새로 해수욕장이 개장되거나 새 단장됐다.

함경북도 칠보산을 찾은 북한 관광객들이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필자 제공)

북한 언론매체들은 삼복더위 속 평양 시내 수영장과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등이 연일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고 보도했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는 명사십리 해변을 따라 호텔과 숙박시설, 상업·편의시설, 해양체육시설 등을 조성한 북한 최대 규모의 해안 관광단지다. 조선중앙TV는 2일 지난 7월 1일 개장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에 한 달 동안 수만 명이 방문했다며 "명사십리로 불리는 이 해변에 그야말로 인파십리가 펼쳐졌다"라고 전했다. 해변에는 선베드 약 2500개가 설치되고, 모터보트, 각종 예인용 튜브 등 다양한 수상 레저 기구와 놀이기구, 이를 이용하는 많은 인파가 위성사진으로 관측되기도 했다.

남과 북의 피서문화에서 가장 큰 차이는 야영과 휴양이다. 우리는 개인별로 휴가 기간을 이용해 산과 강, 해변을 찾지만 북에서는 야영과 휴양조차도 기업별로, 단체별로 조직된다.

함경북도 칠보산으로 야양을 온 학생들이 칠보산해수욕장 모래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필자 제공)

북의 소학교, 중학교 학생들은 학생소년궁전에 있는 일상적으로 수영장이나 수영장이 마련된 학교에서 수영을 배우며 무더위를 피한다. 그러나 학생들이 기대하는 것은 친구와 함께 보내는 야영소 생활이다. 여름 방학 기간 북한 아이들은 각 지역 설치된 '소년단 야영소'에 입소해 집을 떠나 친구들과 함께 역사유적 견학, 물놀이, 오락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다. 평양의 용악산, 묘향산, 황해남도 석담야영소 등 주요 산과 강, 해안가에 소년단원(소학교와 초급중학교 학생 조직)을 위한 야영소가 마련되어 있다. 소년단 활동에 모범을 보인 학생들은 원산 송도원야영소나 만경대야영소 등 비교적 시설이 잘 갖춰진 야영소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다.

직장인(공장근로자와 사무원들)은 휴양제도를 활용해 전국적으로 마련된 휴양소를 이용한다. 북한은 각 지역별로 간부휴양소부터 노동자휴양소까지 다양한 휴양소를 설치하고, 1947년부터 휴양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유급휴가인 셈이다. 내각 노동성 산하 '노동휴양국' 주도로 노동자와 사무원들의 휴양은 봄과 여름, 가을에 걸쳐 조직되며, 농민들의 휴양은 겨울에 이뤄진다. 개인별로 이뤄지는 우리와 달리 북한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휴양의 대상과 기간을 조직화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매년 7~8월 여름철 휴양객과 학생들을 이동시키기 위해 평양~함흥, 평양~원산 등의 노선에 특별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여름방학을 맞아 원산 송도원국제야영소 등 전국의 주요 야영소로 가는 학생들과 휴양소를 찾는 근로자들이 주로 이 열차들을 이용한다.

최근 북한이 가장 많이 선전하는 휴양지는 2019년 12월 평안남도 양덕군에 건설된 양덕온천문화휴양지다. 북한은 온천장과 스키장을 갖춘 사계절 레저시설로 건설된 이곳에 개장 후 5년 동안 74만 명이 다녀갔다고 선전한다. 북한은 당분간 이곳에 해외관광객은 받지 않고 북한 주민들만의 휴양지로 활용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묘향산, 칠보산, 금강산. 신평금강산, 정방산 등의 명산, 남포갑문, 함흥의 마전해수욕장 등을 방문해 보면 야영소를 찾은 학생들과 휴양소에 입소한 근로자들 쉽게 볼 수 있다.

평양 개선청년공원에서 놀이시설을 타고 있는 평양의 젊은이들.(필자 제공)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청소년들의 여름나기 풍경도 변화가 감지된다. 평양의 경우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등에 설치된 수영장을 찾거나 빙상관이나 볼링장을 찾아 무더위를 식히는 청년층이 늘고 있다. 무더운 여름철에도 한겨울인 빙상관은 연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동평양에 있는 볼링장은 하루 평균 300명, 일요일에는 1000명 이상이 이용한다고 한다. 개선청년공원이나 능라인민공원을 찾아 놀이기구를 타는 청년들도 늘었다. 특히 개선청년공원은 야간에도 개장돼 청년층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청소년층 사이에서 '뜨는 명소'는 화성지구 신도시에 설치된 컴퓨터오락관이다. 시원한 공간에서 혼자 하는 게임부터 친구끼리 네트워크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오락관 전용 카드에 북한 돈 1만 원을 충전한 후 이용할 수 있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운영시간은 10시부터 22시까지다.

직장 단위의 휴양 외에 개별 관광(북한에서는 '참관'이라고 함)도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여행사도 많이 늘었다고 한다. 평양-묘향산을 잇는 2층 버스가 운행된 지는 20년이 넘었고, 북한 국가관광총국이 내놓은 2박 3일 일정의 여름철 백두산 관광상품이 나온 지도 10년이 지났다. 경제 상황이 나아지고 주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교통수단도 많아지면서 중상류층을 중심으로 해수욕장을 비롯한 다른 지역의 휴양지를 찾는 가족단위 피서객도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에는 자가용을 이용해 해수욕장이나 지방 명소를 찾는 사람들도 늘었다. 평양시의 경우 자가용 보급대수가 1만 2000대를 넘어섰고, 자가용 이용자가 다른 지방에 가기 위한 정치적 규제도 많이 풀렸다고 한다.

그러나 부족한 전력문제는 지금도 풀지 못한 숙제다. 평양 시내와 새로 건설된 화성지구는 그래도 안정적으로 전기가 공급되고 있지만 평양 중심부에서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도 폭염에 선풍기조차 틀지 못하는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지역과 직업에 따라, 소득 수준에 따라 여름나기 풍속도도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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