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잇단 유화책에도 '묵묵부답' 北…"속도 너무 빠르다" 커지는 신중론

연합훈련 조정에 확성기 철거했지만…'상호주의' 지켜지지 않는 상황
"美 정부 협력 없는 유화책 추진, 文 정부 답습으로 끝날 것"

국방부는 4일 남북 접경지역에 설치된 대북확성기 철거를 시작했다고 밝혔다.(국방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8.4/뉴스1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이재명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 통제, 대북 확성기 중단 및 철거, 민간의 대북 접촉 전면 승인, 비전향장기수 송환 검토 등 남북 긴장 완화를 위한 선제적 조치에 상당한 속도를 내고 있다. 한미 간 협의가 필요한 연합훈련의 톤을 조정하는 문제까지 상정했지만 정작 북한의 뚜렷한 호응은 감지되지 않는다. 정부가 '조치'를 취하는 데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북한의 호응도 기다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5일 나온다.

출범 두 달 동안 유화책 쏟아낸 李 정부…北 '진짜 호응'은 없었다

통일부는 지난달 29일 강화도 석모도 인근 해안에서 지난 6월 21일에 발견된 북한 주민의 시신 1구를 이날 오후 3시에 판문점을 통해 인도하겠다고 북한에 공개 통보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인도 예정일인 이날까지도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은 상태다. 이재명 정부의 관계 개선 제스처에도 여전히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북한의 태도에 비춰봤을 때, 시신 인도는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두 달 동안 북한을 상대로 한 선제적 긴장 완화 조치에 집중하고 있다. 출범 닷새 만인 지난 6월 9일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금지를 요청했고, 같은 달 11일 군이 전방지역에서 1년 넘게 이어 온 대북 확성기 방송도 중단했다. 지난달에는 국가정보원이 대북 심리전 차원에서 송출하던 대북 라디오 및 TV 방송도 52년 만에 중단됐다.

더 나아가 통일부는 북한 주민 접촉신고 수리 여부를 판단하는 내부 지침을 폐기하고 북한에 대한 개별 관광 추진을 검토하는 등 남북 교류를 복원하기 위한 조치도 속속 내놨다.

이달 중 개최되는 한미연합훈련의 톤을 조정하는 방안도 논의 중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미 간 협의가 필요한 사안인 데다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적절하지 않다는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에 대남 소음 방송 중단으로 유화 조치에 일면 호응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후 이어진 정부의 유화 제스처에는 이렇다 할 가시적 호응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호응 조치'를 선별할 뿐 '진정한 호응'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막 던지는' 대북 유화책 안 돼…한미 협력 바탕돼야"

이처럼 이재명 정부는 '할 수 있는 선제적 조치는 다 하겠다'는 기조로 북한을 대하고 있지만, 북한은 대화에 나설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은 2023년 말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선언했으며, 이재명 정부에 대한 첫 반응을 내놓은 지난달 28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에선 정부의 대북 유화책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정부를 '전임 정부'와 같다고 표현했다.

이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고 어떤 제안이 나오든 흥미가 없으며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며 대화 테이블에 앉지 않겠다는 입장도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이재명 정부의 일방적인 대북 유화책에 대한 '신중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남북관계가 유화 기조를 유지하는 것과 별개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봤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온전하게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선제 조치는 속도가 빠르다"며 "정책을 검토하고, 전략 기조를 만든 뒤에 실질적인 정책을 이행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이 '막 던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미국 정부와의 협력 없는 독자적인 대북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면 남북관계가 '용두사미'로 끝난 문재인 정부 때와 비슷한 상황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야권 관계자는 "미국과의 협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대화의 결과가 무엇인지는 문재인 정부 때 확인할 수 있었다"라며 "우리가 먼저 바뀌면 북한도 바뀔 것이라는 태도만 고수하는 것은 안일한 측면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도 전날 성명서를 통해 "대북 확성기 철거는 제2의 오물풍선과 남북 연락사무소 폭파로 돌아올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박원곤 교수 역시 "북한이 당장은 대화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큰데, 이런 상황에서는 한미동맹을 다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며 "북한은 김여정의 두 번의 담화에서도 한국과 미국을 '갈라치기' 하며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만 열어두고 있는데, (우리 정부가) 미국과 협의해 같은 정책적 방향성을 갖고 섬세하게 힘을 합쳐야 한다"라고 진단했다.

yeseu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