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100℃] '태양아래'·'굿바이 평양'…인권영화 다시보기
똑같이 어린이 주인공 내세웠지만 풀어내는 방식 달랐던 영화들
- 양은하 기자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북한의 체제나 인권 현실을 들추는 영화 중에는 여자 어린이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가장 약자이자 때 묻지 않은 어린이가 북한이라는 배경 안에 놓일 때 체제의 비정상적 면이 더 극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영화 '태양 아래'(2016)와 '굿바이 평양'(2011)은 그런 여자 어린이가 등장하는 평양 배경의 다큐멘터리 장르 영화다. 하지만 감독이 주인공을 대하는 태도는 사뭇 대조적이다.
'태양 아래'는 2014년 평양에 사는 8살 여자아이 진미와 그의 주변 일상을 비탈리 만스키 러시아 감독이 1년 동안 찍은 영화다. '굿바이 평양'은 도쿄에 사는 재일교포 2세 양영희 감독이 오빠들이 살고 있는 평양을 찾을 때마다 조카 선화의 성장 과정(1995년~2008년)을 기록한 작품이다.
'굿바이 평양' 속 선화는 여느 아이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한겨울에 여름 신발을 신겠다고 투정을 부리고 천연덕스러운 말과 표정으로 가족들을 웃게 한다. 친척들 앞에서 부르는 노래는 찬양가지만 동요 이상의 의미는 없어 보이고, 정전된 상황에서도 '영광스럽게 정전이 됐다'며 천연덕스럽게 장난을 친다.
그런 선화가 북한에 살고 있다고 실감하는 건 마지막 장면에서다. 양 감독은 사춘기 소녀가 된 선화와 연극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선화가 갑자기 카메라를 꺼달라고 하고는 "지금껏 어떤 연극을 봤어요?"라고 묻는다. "잘 모르지만 이야기조차 못 듣는 것보단 나아요. 좀 더 들려주세요"라고 속내를 말한다.
겨우 중학생 정도인데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하면 안 되는 것'을 구분하며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감춘다. 선화를 보면서 우리는 북한 체제가 아이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선화의 미래를 염려하는 양 감독의 시선에서 다시 한번 북한의 비합리성을 체감한다. 감독은 영화 개봉 이후 선화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태양 아래'에 등장하는 진미는 선화와 비슷한 또래지만 다른 모습으로 카메라에 담긴다. 만스키 감독은 원래 북한의 지원을 받아 진미를 중심으로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담는 다큐멘터리를 찍을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 당국이 촬영 직전 진미 부모의 직업과 집을 조작하고 대사와 상황까지 직접 연출하고 나서자 영화 방향성을 '폭로'로 바꾼다.
영화 속 장면마다 북한 관계자가 등장해 사람들에게 대사 연습을 시키고 동선을 설명한다. 지시에 따라 진미는 밥을 먹다가 김치를 찬양하고, 부모와 그의 공장 동료들은 제품 생산성이 높아졌다며 박수를 친다.
북한 감시원이 없을 때 찍었다는 진미와 제작진의 인터뷰는 북한 인권 유린의 결정적 장면으로 여겨진다. 진미는 조선소년단 입단 소감을 묻는 말에 대답하다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데 제작진이 "좋은 기억을 생각해보자"라고 달래도 "잘 모른다"라고 한다. 그러면 "시를 떠올려보자"라고 하자 "나는 위대한 김일성 대원수님께서 세워주시고…"라며 소년단 입단 선언문을 읊는다.
통제 속에서 좋아하는 것조차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고 사상을 주입받는 북한 어린이의 모습으로 해석되는 이 장면은 쉽게 공감가지 않는 측면이 있다. 진미가 '좋아하는 것'을 말하지 못한 것이 정말 그런 기억이 없어서일까.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며 모두가 자기를 뚫어져라 보는 상황이 낯설어서 흘린 눈물은 아닐까.
이런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만스키 감독이 북한의 실상을 폭로한다며 몰래 찍어온 영상이 북한 당국뿐만 아니라 진미 가족도 속였기 때문이다. 진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북한의 참담한 아동 인권 실상을 보여주는 표본으로 전 세계에 얼굴을 알린 셈이 됐다. 아무리 좋은 취지였다고 해도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위해 진미를 이용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진미를 북한 체제 선전을 위해 동원된 '배우'가 아니라 북한에 실제 살고 있는 8살 아이로 여겼다면 제작진은 그를 체제에 세뇌된 불행한 모습으로 공개하는 데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 체제 선전에 진미를 이용하려 한 북한 당국과 어딘가 닮아 보이는 이 같은 감독의 모습은 북한에 대한 반감과 함께 감독에 대한 의심도 남겼다.
yeh2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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