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교양도 '현실' 따르라"…'장마당 세대' 통치 고민 드러낸 김정은
선전 부문 간부 강습회에서 '현실에 맞는 사상교양' 강조
첨단 기술 도입해 '반동 사상' 전파 막으라는 지시도 눈길
- 윤주현 기자
(서울=뉴스1) 윤주현 기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최근 진행한 제3차 선전부문일꾼강습회에서 "새 시대의 요구와 풍격(風格)에 맞게 선전선동사업도 발전해야 한다"며 시대의 흐름, 달라진 '인민의 인식'에 부합하는 사상교양을 강조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
이른바 '장마당 세대'로 대표되는 청년세대의 인식 변화를 체제가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인하는 것이라는 평가도 23일 제기된다.
김 총비서는 지난 21일 진행한 제3차 선전부문일꾼강습 폐강식 연설에서 "사상교양사업의 내용부터 새 시대의 요구와 풍격에 맞게 발전·풍부화해야 한다"며 사상교양사업의 새로운 형식·방법·수단의 발전을 주문했다.
또한 김 총비서는 선전사업이 도식적·기계적으로 진행되면 '진실'이 왜곡되고, 사람들의 회의감과 거부감을 유발하게 된다며 "오늘의 사람들을 깊이 연구하고 그에 맞는 새로운 형식과 수단, 방법을 탐구·적용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이는 지난 2022년 1차 강습회 때 사상교양의 기본이 '위대성 교양'과 '충실성 교양'에 있다며 권위적으로 당과 수령의 위대함과 충성심을 강조하던 것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이다.
김 총비서는 당시 "일꾼들과 당원, 근로자들 속에 당의 위대성을 깊이 심어주고 그 영도를 충직하게 받들어나가도록 교양하는 것을 떠난 사상적 일색화는 '빈말 공부'에 지나지 않는다"라며 인민들을 대상으로 한 무조건적인 사상 투쟁을 강조한 바 있다.
특히 '비사회주적 요소'와의 투쟁에서 사상전의 포격을 집중화, 정밀화하고, 부정적인 사상요소를 발견하면 '수술칼'을 들이대야 한다고까지 강조하며 선전선동사업이 당이 주도하는 강압적이며 획일화된 사업이 돼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그런데 올해 연설에선 당과 수령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요구하면서도, 이를 위한 방법론으로 '현실에 맞는 사상교양'을 제시했다. 김 총비서는 "지난 시대에는 열 가지, 백 가지 처방이 있었다면 지금 시대에는 천 가지, 만 가지 처방이 있어야 한다"며 다양화한 사람들의 기호와 인식에 맞춘 사상교양의 혁신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김 총비서가 외부 정보와 문화에 대한 잦은 노출을 겪으며 '달라진' 인민의 가치관을 이제 꺾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흡수해야 할 대상으로 상정했음을 알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 체제의 통제를 벗어난 '체제 속 체제'를 상징하는 '장마당'을 삶의 터전이자 수단으로 삼으며 시장 경제 체제를 체득한, 이른바 '장마당 세대'는 1984년생인 김 총비서와 비슷한 세대로, 이들은 국가에 의존하기보단 개인의 생존과 안정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국가에 대한 믿음과 충성심도 약해져 노동당의 통제력 또한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김 총비서는 집권 초기만 해도 외부 문물에 대한 강한 통제와 자신과 함께 체제를 이끌어야 할 청년세대의 충성심을 고양하기 위한 각종 고강도 정책을 펼쳤다. 특히 코로나19 시기 고강도 통제로 '민심 이반' 현상이 발생하면서 '괴뢰말'(남한 말)을 사용하면 처벌까지 하는 등 각종 통제를 위한 법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풀리고 북한의 외교 기조가 바뀜에 따라 체제가 다시 '발전'을 향해 외부와의 연결성을 높이면서 북한의 통치 방식도 보다 유연해진 것이 이번 강습회를 통해 확인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어차피 고강도 통제가 완벽하게 먹히지 않는다면, 이를 적절하게 흡수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김 총비서는 연설에서 "반동 사상·문화의 전파를 철저히 분쇄하기 위해 현대적인 정보 수단, 기술 수단들을 활용하는 사업에도 힘을 넣어야 할 것"이라며 첨단 기술을 활용해 북한 당국이 원하지 않는 외부 문물의 유입을 막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장마당 세대의 외부 문물 접촉과 정보 유입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북한 당국이 보다 효율적인 통제를 위해 '신기술'을 도입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그간 주민들 사이 '상호 고발'이나 대규모 인력을 동원한 단속 방식에서 앞으로는 온라인 검열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첨단 통제 방식으로 외부 문물 차단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선전선동의 방식도 세대와 계층별로 다른 생활상과 의식에 맞춰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김 총비서는 연설에서 "이젠 구체적인 생활 처지와 환경, 심리를 고려해 인식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며 서로 다른 집단의 특성에 맞는 선전선동과 통제 방안 마련을 주문했다.
이는 종합적으로 외부 문화와 정보의 유입을 막는 통제 수단은 현대화·고도화하고, 주민들에게 당의 사상을 전달하는 방식은 보다 세분화하고 유연하게 적용한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강압적인 통제 기조 자체를 완화하기보다는, 주민들의 달라진 의식과 생활 환경에 맞춰 선전의 설득력과 수용성을 높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gerrad@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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