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비자로 농장취업, 월급카드는 간부 손에…北 노동자 500명 제재 회피술

MSMT, 北 해외 파견 실태 보고서 발간…제재 피해 1조 외화벌이 나서
러 학생비자 8년 새 41건→3만5839건…캐나다·일본 여권 활용 정황도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일 연안군 발산농장 기계화 초병들과 초급 당 일꾼(간부)가 트랙터 수리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을 실으면서 "농촌 기계화 초병의 영예를 떨쳐가자"라고 보도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윤주현 기자 = 북한이 '학생비자'를 활용해 러시아에 노동자를 파견하는 등 국제 제재망을 우회해 불법 외화벌이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 정보기관은 노동자들의 급여를 전액 인출한 이후 커미션을 공제하는 방식까지 협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노동자를 파견하는 북한의 수법이 입국 신분부터 임금 지급, 취업 과정의 신원 확인에 이르기까지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北 해외노동자 최대 10만명…러시아선 '학생비자' 활용

지난 16일 다국적제재모니터링팀(MSMT)이 발표한 '북한의 해외 노동자 파견' 주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최소 17개국에서 약 3만 5600~10만 1280명의 북한 국적의 파견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노동자들이 창출한 수익은 약 4억 5000만~8억 달러(6000억~1조 700억)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2375·2397호 따라 회원국은 북한 신규 노동자 고용이 금지되고, 자국 내 체류 중인 노동자를 북한으로 송환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북한은 학생비자와 가짜 연수 프로그램 등 여러 회피망을 활용해 노동자를 계속 해외로 내보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보고서는 현재 러시아에 70~80개 북한 회사와 연계된 노동자 1만5000~3만명이 체류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북한과 러시아 측은 취업비자 대신 학생·관광비자를 활용하거나 중개인 네트워크를 동원하는 등의 방법으로 노동자들의 신분과 규모를 숨긴 것으로 조사됐다.

러시아가 북한인에게 발급한 학생비자는 2017년 41건에서 2025년 3만5839건으로 급증했다. 반면 2020년 이후 취업비자 발급은 한 건도 없었다.

보고서는 "2025년 거의 모든 북한 노동자는 외국인 학생으로 가장해 학생비자로 러시아에 입국했다"라며 "학생비자로 러시아에 입국한 뒤 북한 노동자들은 현장실습을 가장해 러시아 전역의 건설 현장, 농업·축산 농장, 벌목 현장에 배치된다"라고 밝혔다.

ⓒ 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北 노동자 500명 '학생'으로 위장…급여카드도 직접 관리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이뤄진 북한 노동자 약 500명의 러시아 파견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 우편사업자 '러시아우편' 관계자와 북한 정보기관 측 대표는 약 500명의 북한 노동자를 외국인 학생으로 위장해 러시아 농업 현장에 보내는 방안을 협의했다.

1차로 260명이 러시아 볼고그라드에 파견됐고, 이후 240명이 추가로 리페츠크와 옐레츠 등으로 이동했다.

임금 지급 방식은 비정상적으로 이뤄졌다. 노동자 개인 명의 계좌로 임금을 지급하면서도 러시아 측 관계자와 북한 당국이 노동자들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OM) 카드를 보관하고, 계좌에 입금된 급여를 직접 인출하는 방식이다.

이후 양측은 일종의 커미션을 공제한 뒤 나머지 일부 금액만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방안까지 논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 노동자를 유학생으로 위장하는 과정에는 러시아 교육기관도 활용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 러시아 교육기관의 2024년 매출은 전년보다 5배 늘어난 7500만 루블에 달했다. 학생 한 명에게 지급된 장학금은 최대 25만 루블로, 보고서는 이런 장학금이 사실상 노동 대가를 지급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정황에 주목했다.

"캐나다 여권 있어"…IT 노동자는 제3국 신분 활용

북한 IT 노동자들이 캐나다와 일본 등 제3국 여권 정보를 활용해 신원 확인 절차를 피하려 한 정황도 포착됐다.

유출된 북한 IT 노동자 계정에는 계약 프로젝트 목록과 위조 여권 정보, 노동자들이 주고받은 채팅 기록이 포함됐다.

채팅에는 "여권 있어?", "나는 캐나다 거 있어", "나는 일본 거 있어" 등의 대화가 등장했다. 보고서는 북한 노동자들이 제3국 신분으로 위장해 현지 업체의 본인 인증이나 취업 절차를 우회한 사례로 제시했다.

북한 해외 노동자들이 벌어들인 수익 상당 부분은 중국과 러시아 소재 북한 무역회사 등을 통해 군수물자 조달 등에 활용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자금은 유엔 제재 대상인 조선무역은행, 조선광업은행 등을 통해 북한으로 송금된다.

이번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입국 및 취업 신분 확인과 임금 지급에 걸쳐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여러 수단들이 공개됐다. 제재를 피해 불법 자금 확보에 나선 북한의 수법이 날이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MSMT는 "북한 해외 노동자들의 활동과 학생비자 사용을 포함해 진화하는 제재 회피 수법, 그리고 정보기술(IT)과 같이 북한 노동자들의 활동이 확대되고 있는 분야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회원국들에 경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gerrad@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