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애=미래세대=핵보유' 북한의 후계자 선정 방정식[한반도 GPS]
핵미사일·구축함 행사 반복 동행…상반기 공개 활동 과반이 군사
북한의 핵 개발 진전과 궤를 같이한 주애의 공개행보 '메시지'에 주목
- 한상희 기자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흰 해군 제복을 입은 북한 해군의 장병들이 5000톤급 신형 구축함 '강건'호의 갑판을 가득 메웠습니다. 기념사진 한가운데에는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와 흰색 투피스 차림의 딸 주애가 장병들과 함께 주먹을 치켜든 채 나란히 섰습니다. 아무런 직책도 없는 13살 아이가 최고지도자와 함께 '중심'을 차지한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사진은 지난 6일 강원도 원산항에서 열린 강건호의 취역식에서 김 총비서가 '해군의 핵무장화 실현'을 선언한 뒤 촬영됐습니다. 북한 매체는 이번에도 '주애'의 이름이나 직책을 공개하진 않았습니다. 주애는 2022년 말에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등장한 이후 4년 가까이 북한 매체에서 이름과 직함이 호명된 적이 없지만, 시종일관 최고지도자 바로 옆자리에서 지도자급 의전을 받고 있습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최근 개정된 북한의 노동당 규약을 분석·공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노동당 입당 최소 연령은 18세에서 20세로 높아졌습니다. 2013년생으로 추정되는 주애는 아직 이 입당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나이이기 때문에, 그가 이른 시기에 당의 직함을 받는다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북한은 왜 이처럼 공식 직함도 없는 어린 주애를 핵무력을 강조하는 군사 행사 한가운데 반복해서 세울까요. 국가정보원은 지난 1일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주애가 사실상 후계 내정 단계에 있다고 보고하면서, 북한이 주애의 권위 있는 모습을 자주 노출해 주민들에게 지도자로 각인시키려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이 평가에 따르면 주애의 공개활동은 최고지도자인 아버지의 통치 현장을 체험하는 '후계수업'인 동시에 전 인민이 차기 권력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특히 잦은 주애의 군사 행보를 "핵무력이 백두혈통과 미래세대를 담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간접 선전"으로 해석했습니다.
주애는 2022년 11월 북한이 완성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고 주장한 화성-17형 시험발사장에서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2023년에는 핵미사일 체계의 새 지평을 여는 차원에서 개발했다는 고체연료 ICBM 화성-18형 시험발사를, 2024년에는 북한이 ICBM의 '최종 완결판'이라고 주장한 화성-19형 시험발사를 김 총비서와 함께 지켜봤습니다.
지난해에는 북한이 '해군의 핵무장화'를 위해 개발한 신형 구축함 '최현'호 진수식에 참석했고, 올해에도 이 구축함들의 개발 단계 때마다 공식행사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최근 4년간, 주애가 북한이 핵억제력의 발전과 확장을 과시하는 주요 자리에 빠지지 않고 동행한 셈입니다. 통일부에 따르면 주애는 올해 상반기에 총 19차례 공개활동에 나섰고, 이 중 11차례가 군사 분야였습니다.
어린 나이가 무색하게 군사 장비를 직접 능숙하게 다루는 장면도 공개됐습니다. 지난 2월 김 총비서가 고위 간부들에게 신형 저격수보총(스나이퍼 건)을 수여하는 자리에 동행한 주애는 직접 사격연습까지 나섰습니다. 지난 3월에는 전차를 운전하는 파격적인 모습도 공개됐습니다.
여전히 주애는 북한 매체에서 '사랑하는 자제분', '존경하는 자제분', '가장 사랑하는 따님' 등으로 불립니다. 지난 2월 노동당 9차 대회에서도 주애에게 부여된 직함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주애의 자리는 늘 '정중앙'입니다.
이는 김 총비서의 후계 공식화 과정과 다릅니다. 북한 매체는 2009년 존재가 알려진 김 총비서를, 2010년 9월 28일 '인민군 대장'으로 부르며 처음으로 얼굴과 이름을 공개했습니다. 김 총비서는 같은 날 열린 제3차 당 대표자회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도 선출됐습니다.
당시 이미 성인이던 김 총비서와 어린 주애의 상황은 다르지만, 김 총비서에 대해서는 '누구이며 어떤 지위에 있는 인물인지'를 동시에 제시했다면, 주애에 대해서는 '누구의 딸인가'를 먼저 보여주고 '어떤 지위인가'는 비워두고 있습니다.
김 총비서 때는 권위로 후계자의 입지를 빠르게 강화하려 했다면, 주애는 잦은 노출로 익숙함과 친밀감을 먼저 강조해 자연스럽게 그가 지도자로 각인되는 효과를 노린 듯합니다. 주애가 진짜로 최고지도자가 된다면, 북한의 첫 여성 최고지도자라는 점에서 이 같은 방법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제도의 시계는 늦추고 선전의 시계를 먼저 돌리는 셈입니다.
주애는 이처럼 북한의 미래를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미래를 상징하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핵무력'입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핵무력 강화를 비롯한 대대적인 국방 성과는 현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후대의 절대적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유산임을 대내외에 선언하는 것"이라며 "여기서 주애의 존재는 핵무력으로 보장받는 백두혈통 4대 세습의 당위성을 강화하는 맥락"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주애의 활동이 군사 분야에 집중된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를 짧게 정리하면 북한의 핵보유는 미래세대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메시지로도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비핵화'라는 복잡한 방정식에 또 하나의 사칙연산이 더해지는 듯합니다.
angela02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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