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이 지운 김정일 아명 '김유라'…1954년 北 잡지서 확인

소련 출생설 감춰온 北 '백두혈통' 신화와 배치…1차 자료 소급 수정 정황

27일 북한 전문매체 NK뉴스에 따르면 1954년 6월 북한 아동문학 잡지에 실린 동시 '우리 교실'의 원본에는 저자가 '평양 제4인민학교 김유라'로 적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NK뉴스 갈무리).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북한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어린 시절 러시아식 이름인 '김유라'를 공식 기록에서 지우고, 과거 자료까지 '김정일'로 바꿔 소개한 정황이 포착됐다. 김정일의 소련 출생과 러시아식 이름을 감춰온 북한이 이른바 '백두혈통' 신화를 유지하기 위해 역사 기록을 소급해 수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7일 북한 전문매체 NK뉴스에 따르면 1954년 6월 북한 아동문학 잡지에 실린 동시 '우리 교실'의 원본에는 저자가 '평양 제4인민학교 김유라'로 적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유라는 김정일이 어린 시절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이름이다. 김정일은 소련에서 '유리 이르세노비치 김'(Yuri Irsenovich Kim)이라는 이름으로 출생 등록됐으며, '유리'의 애칭인 '유라'를 따 주변에서 김유라로 불린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달 25일 문학예술출판사 설립 80주년을 기념한 보도에서 같은 작품을 소개하면서 저자를 '김정일'로 표기했다.(NK뉴스 갈무리).

그러나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달 25일 문학예술출판사 설립 80주년을 기념한 보도에서 같은 작품을 소개하면서 저자를 '김정일'로 표기했다.

'우리 교실'은 김정일이 평양 제4인민학교 4학년이던 1954년 4월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김일성의 초상화가 걸린 교실을 묘사하면서 "원수의 가르침을 따라 새로운 나라의 기둥이 되자"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1954년 잡지는 작품의 저자를 김일성의 아들이라고 명시하지 않았지만, 저자의 학교가 김정일이 실제 다닌 평양 제4인민학교라고 적었다. 이에 따라 해당 자료는 김정일의 러시아식 어린 시절 이름이 북한 내부에서 실제 사용됐음을 보여주는 드문 당대 기록으로 평가된다.

북한 밖에서는 김정일이 어린 시절 '김유라'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이미 알려져 있다. 평양 주재 소련 대사를 지낸 알렉산드르 푸자노프의 일기에도 1959년 김정일을 '김유라'로 지칭한 기록이 남아 있다.

김정일의 옛 동창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남산고급중학교 졸업을 앞둔 1960년 7월께 "내 한국 이름은 김정일이 될 것"이라며 개명 사실을 주변에 알린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의 공식 기록은 이와 다르다. 북한은 김정일이 1942년 2월16일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나 처음부터 '김정일'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선전하고 있다. 반면 외부에서는 김정일이 1941년 소련 극동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당시 김일성은 소련군 제88독립소총여단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북한이 김정일의 러시아식 이름을 지우려 한 것은 그의 소련 출생 배경이 김씨 일가의 통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백두혈통' 서사와 충돌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번에 확인된 자료는 북한이 단순히 김정일의 옛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에 발행된 1차 자료의 저자명까지 사후에 바꿔 소개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1954년 잡지에는 당시 작곡가 박세용이 쓴 작품평도 함께 실렸다. 박세용은 "초등학생이 쓴 작품치고는 진정성이 넘친다"고 평가하면서도 구호적인 표현을 줄이고 보다 솔직한 감정을 담을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비평을 남겼다. 최근 조선중앙TV 보도에서는 이 비평 역시 소개되지 않았다.

NK뉴스는 "이 자료는 김정일의 러시아식 이름이 1950년대에도 여전히 사용됐다는 드문 북한 내부의 증거"라며 "북한이 김정일의 어린 시절을 공식 서사에 맞추기 위해 1차 자료를 어떻게 소급해 수정했는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yeseu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