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워게임' 논리…이번엔 美가 먼저 뛰는 '역할 역전' 북미대화

통일연구원 "대화 재개 의지 반영… 하반기 전환 계기 될 수도"
"北 호응이 관건…새 의제 발굴·한국 소외 방지 필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26.08.21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하반기 한미연합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 축소 지시는 즉흥적인 결정이라기보다 2018년 이후 이어진 '연합훈련은 비용이 많이 들고 불필요하게 갈등을 유발한다'는 인식과 북미대화 재개 의지가 반영된 조치라는 분석이 23일 나왔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규정하고 한국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상황에서는 2018년과 달리 한미가 역할을 바꿔, 미국이 먼저 북한과 대화에 나서고 한국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구상도 함께 제시됐다.

국무총리 산하 국책연구기관 통일연구원의 이상신 통일정책연구실장은 최근 발간한 '트럼프 대통령 한미연합훈련 축소 지시의 의미와 전망' 보고서에서 "한미연합훈련 축소는 이재명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 특히 '책임 있는 평화공존'과 부합한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북한 당국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2026년 하반기에는 북미관계의 의미 있는 전환과 한반도 긴장 완화의 계기가 마련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내다봤다.

이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에도 한미연합훈련을 '전쟁게임(war games)'이라고 부르며 중단하면 "엄청난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훈련 자체가 북한에 "매우 도발적"이라고 주장했던 점에 주목했다.

이번에도 훈련에 큰 비용이 들고 북한에 "전적으로 부적절하고 적대적인" 신호를 보낸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미연합훈련은 비싸고 불필요하게 갈등을 유발한다는 트럼프의 생각은 2018년 이후 지금까지 일관성 있게 이어지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2018년에도 한미는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유도하기 위해 키리졸브·독수리 훈련을 연기했고,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에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과 비질런트에이스도 잇따라 유예했다.

이 실장은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철저히 미국의 단기적 국익 차원"에서, 문재인 정부는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 차원에서 접근했다며 "양국의 동기와 이해관계가 일치하지는 않았으나 훈련 축소에 양국이 동의했고, 이는 두 차례의 북미정상회담이라는 성과로 이어지게 됐다"라고 밝혔다.

'핵보유국' 언급·NSS 변화…트럼프의 지속된 대북 신호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소통이 "말로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라며 2기 취임 이후의 정책 변화도 근거로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차례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지칭하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의 '훌륭한 관계'를 강조했으며, 지난해 6월에는 뉴욕의 북한 유엔대표부를 통해 김 총비서에게 친서를 전달하려 시도했다.

같은 해 발표된 미국의 새 국가안보전략(NSS)에서 북한 비핵화가 빠진 점도 트럼프 1기·바이든 정부와 비교되는 큰 변화로 꼽혔다.

이 실장은 미국이 북한을 공식 핵보유국으로 인정했거나 비핵화 목표를 폐기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NSS에서 북한 핵 위협이 빠진 것은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원한다는 확실한 신호"라고 했다.

이 실장은 이런 흐름이 이재명 정부의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 역할론과 맞닿아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북미대화를 이끄는 '피스메이커'를, 한국은 속도를 조율하며 뒷받침하는 '페이스메이커'를 맡는다는 역할 분담으로, 이 대통령이 지난 6월 G7 정상회의에서 제시한 뒤 8·15 경축사에서 재확인한 개념이다.

그는 "'페이스메이커론'은 미국이 피스메이커로서의 역할을 맡을 때 성립되는 논리"라며 "이 대통령이 북미대화 재개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면서 그것을 계기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공존의 계기로 삼을 것을 천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美는 피스메이커, 韓은 페이스메이커…달라진 역할 분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단독회담을 마치고 중앙정원 회랑을 산책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 AFP=뉴스1

다만 2018년에는 한국이 남북대화를 바탕으로 북미 대화를 주선했지만, 북한이 2023년 말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놓은 뒤 한국과의 모든 소통을 거부하는 지금은 같은 방식이 통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 실장은 "이제는 한국과 미국이 역할을 바꿔 미국이 먼저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고 이를 한국이 뒷받침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라고 밝혔다.

관건은 북한의 호응이다. 이 실장은 "북한은 대화의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으나 대화의 의제로 비핵화가 오르는 것에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며 "훈련 축소 지시가 새로운 북미대화의 계기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미국이 새로운 대화 의제를 발굴하고, 그 과정에서 한국이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7일 보고서가 나온 뒤 북한은 연합연습 축소가 '의미가 없다'라고 일축하면서도 북미 정상 간 개인적 관계는 '훌륭하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대화의 여지를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도 19일(현지시간) 김 총비서와 올해 안에 만나겠다고 공언했지만, 대화의 목표가 비핵화인지를 묻는 말에는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라며 답을 피했다. 북한은 이튿날(20일) 동해상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 10여 발을 발사했고, UFS는 예정보다 엿새 앞당긴 21일 종료됐다.

다만 이번 훈련 축소 지시가 한국 정부는 물론 미국 정부 관계자들에게도 사전에 공유되지 않았던 만큼, 이 같은 역할 분담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한미 간 긴밀한 사전 조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angela020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