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제주 접촉, '적대적 두 국가론' 예외 사례 아닌 교류 구조 변화 시사"
"北, 협력의 수용을 관계 개선과 등치시키지 않는다는 의미"
- 유민주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최근 제주도와 북한의 접촉을 통해 일부 지원 물품이 북한으로 반입된 사실은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기조의 예외가 아니라 남북 교류 방식 및 구조를 새롭게 정의한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박은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연구위원은 15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지난 2월 중국 베이징에서 오영훈 제주도지사와 북한 측 리호남과 만난 것은 "적대적인 두 국가가 서로의 국익을 위해 제한적 협력을 수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박 연구위원은 이어 "이는 적대적 두 국가론의 예외가 아니라 적대적 두 국가 시대에 나타나는 새로운 교류 방식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북한은 2023년 말 적대적 두 국가론을 공식화한 이후 당 통일전선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 기존 대남기구를 폐지·개편하고, 통일 개념을 사실상 폐기하며 남북관계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재규정했다.
최근 북한이 단행한 헌법 개정으로 이런 기조가 더욱 공고해지기도 했다. 북한은 개정 헌법 서문과 본문에서 '조국통일'과 '한민족' 같은 동족 관계 수사들을 전면 삭제하는 대신, 제2조에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는 영토, 영해, 영공"을 명시하는 영토 조항을 신설했다.
박 연구위원은 "국제정치에서 적대 관계와 협력은 얼마든지 양립 가능하다"라며 "실제로 북한은 미국을 최대의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정상회담을 개최했고, 일본과도 국교 정상화 협상 및 납치자 문제를 둘러싼 대화를 진행한 바 있다"라고 짚었다.
이어 "이러한 점에서 적대적 관계인 나라와의 제한적 협력은 북한 외교에서도 결코 낯선 현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박 연구위원은 북측이 물품 수령 이후, 의례적인 공식 회신이나 방북 초청 같은 후속 조치는 일절 취하지 않은 것을 두고 "이는 북한이 지원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남북관계 개선으로의 확대에는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대한민국을 별개의 국가로 규정하고, 교류 역시 관계 개선이나 민족공동체 회복의 수단이 아닌 국가 이익을 위한 도구로 재정의하는 모습"이라며 "협력의 수용을 관계 개선과 등치시키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박 연구위원은 북한이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와 제한적 협력을 먼저 수용한 것은 정치적 파장을 최소화하면서 실익을 확보할 수 있는 채널이기 때문이라고 봤다.
특히 '조선장애자후원회사'를 창구로 내세운 것은 "북한이 모든 형태의 남북 교류를 거부하고 있다기보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영역에서 제한적 협력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외가가 제주라는 감성적 요인을 접촉 배경으로 거론하기도 했다. 하지만 철저한 실리주의 노선으로 선회한 북한의 입장을 고려해 보면, 이러한 사적 연고보다는 20년 이상 다져진 교류 자산, 높은 상징성, 자체 남북협력기금 보유라는 실무적 효율성이 선택의 이유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박 연구위원은 분석했다.
박 연구위원은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의 북·제주 접촉은 북한이 교류를 중단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통제 아래 교류를 철저히 재편하고 있음을 방증한다고 봤다. 이제 북한에 남북 교류는 민족적 화해를 위한 과정이 아니라, 철저히 국익을 기준으로 교류 대상을 선별하고 국가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 허용·차단할 수 있는 '도구'가 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과거에는 교류의 재개 여부 자체가 관계 개선의 척도였지만, 앞으로는 교류 자체보다 그것이 어떠한 목적과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북한은 교류를 중단한 것이 아니라 교류의 목적을 바꾸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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