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 자신감은 통제가 아닌 투명성[한반도 GPS]

편집자주 ...한반도 외교안보의 오늘을 설명하고, 내일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한 발 더 들어가야 할 이야기를 쉽고 재밌게 짚어보겠습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화성지구 4단계 1만 세대 살림집 모습.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북한은 최근 들어 국가 운영 체계의 '정상화'와 국제 교류 확대 기조를 점점 더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정은 정권은 대내·외적으로 선대를 능가한 국방·경제·외교 성과를 연일 선전하며 최고지도자의 통치 자신감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북한 관영매체인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은 사진과 영상을 통해 현대식 건축물과 도시의 화려한 야경 등을 거의 매일 선전합니다. 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한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0년대 북한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는 확실히 직관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지방 공업공장 현대화, 관광지 개발 등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며 북한 사회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이미지를 강조하는 데 주력하는 모습입니다.

이같은 흐름은 제도와 국가 상징 체계 정비에서도 나타납니다. 최근 공개된 북한의 개정 헌법만 봐도 다른 나라들의 헌법과 유사한 형식과 체계를 갖추려는 흐름이 읽힙니다. '사회주의 헌법'이라는 공식 명칭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으로 바꾸면서 헌법에서 이념성을 상대적으로 줄이려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국가 운영 체계를 보다 일반 국가와 유사한 형태로 정비하려는 의도가 반영됐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다만 이러한 대외적 이미지 변화 시도와 별개로, 정작 외부 세계의 취재와 '검증'에는 여전히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교류 확대와 정보 통제 강화가 동시에 이뤄지는 북한 특유의 이중적 태도는 잘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3월엔 외국인 관광객이 대거 몰릴 예정인 평양국제마라톤 대회를 돌연 취소한 반면, 같은 달 중국과의 열차·항공 교류는 재개하는 모습도 '선별적 개방'의 연장선으로 읽힙니다.

통제가 어려운 서방의 관광객이 몰리는 국제 행사는 부담스러워하면서, 통제가 가능한 범위의 교류는 확대하려 하는 것입니다. 북한이 말하는 개방은 국제사회가 이해하는 개방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이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국제 스포츠 행사 대응에서도 이런 흐름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올해 6월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던 아시아청소년탁구선수권대회도 돌연 무산됐습니다.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접촉면을 넓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일 때 한번씩 두드러지는 '통제'는 과거의 폐쇄적 관행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듯합니다.

오는 20일 수원에서 열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4강전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경기 외 북한 선수들에 대한 취재와 노출 문제를 두고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 "극도로 조심해야 할 것 같다"는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AFC 역시 지난 8일 대한축구협회에 이번 경기를 정치적 의미보다 축구 자체에 집중해 다뤄달라는 취지의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남북관계 경색 국면에서 스포츠 대회를 무조건적으로 관계 개선의 계기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8일 중국 쑤저우에서 열린 2026 AFC 17세 이하(U-17) 여자 아시안컵에서도 한국 선수들과 악수는 물론 별다른 인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경기 전후 인사를 나누는 것이 공식 의무는 아니지만, 대부분 국제대회에서는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관례라는 점에서 현재 남북관계의 냉랭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장면으로도 받아들여졌습니다.

결국 북한이 추진하는 '정상국가 이미지 구축'은 아직 '소프트웨어'의 변화까진 이루지 못한 외형적 변화와 제한적 교류 확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정상적인 국가 시스템은 단순히 조직과 상징을 정비한다고 완성되진 않습니다. 국제사회가 신뢰하는 국가는 예측 가능한 정보 공개 체계와 최소한의 취재 접근성을 갖춥니다. 성과만 공개하고 실패와 실태는 숨기는 방식으로는 신뢰를 얻기 어려운 것이 당연합니다.

특히 관광과 국제 교류 확대를 추진할수록 투명성 문제는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외부 세계와 접촉하겠다고 하면서도 취재와 검증에는 과도하게 예민한 태도를 유지한다면 국제사회의 의구심은 오히려 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체제의 자신감은 통제 강화가 아니라 투명한 공개와 예측 가능성에서 나온다는 점을 북한도 이제는 직시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다음 주, 수원에서 조금은 달라진 북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youm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