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마두로 지지했는데…'독재자 축출' 트럼프 '군사행동'에 화들짝

'레짐 체인지' 공포 커지며 정부의 '4월 대북 분수령 마련' 구상도 난기류

김영남 전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지난 2016년 9월 17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마가리타 섬 포를라마르서 열린 비동맹운동 정상회의 개막식에서 악수를 하는 모습.ⓒ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북한이 공개적으로 지지해 온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작전으로 무너졌다. 이번 사건은 독재 정권의 지도자를 축출해 정권을 교체하는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의 현실적 사례가 된다는 점에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가장 경계해 온 방식이다. 김 총비서가 대화를 촉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지도부 축출로 정권 교체'…北, 미국에 대한 불신으로 '반미 연대' 강화 예상

북한과 베네수엘라는 반미 노선을 공유하는 상징적 파트너다. 정상 간 직접 교류는 없었지만, 북한은 2015년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 대사관을 개설했고, 2019년 베네수엘라도 평양에 대사관을 설치하며 외교 관계를 제도권으로 격상했다. 마두로 대통령이 지난 2019년 10월 평양 방문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점도 북한과 베네수엘라가 서로를 단순한 우호국 이상으로 인식해 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북한은 지난해 말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군사 개입 가능성이 커지자 관련 상황을 주목하면서 관영매체를 통해 미국을 비난하는 톤의 보도를 매일같이 반복했다. 다만 북한은 당국 차원의 입장을 밝히지는 않고 외신을 인용한 보도에 치중하면서 상황에 직접 개입하는 듯한 모습은 피하기도 했다.

북한은 이번 사건을 상당한 위협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이란 핵시설 폭격에 이어 베네수엘라에서도 '제재–외교적 압박–군사행동'이라는 패턴화된 행보를 보이면서, 같은 방식으로 자신들을 상대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북한 지도부에서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북한은 미국의 군사작전이 대규모 군사력을 동원한 전면전이 아니라 '지도부 축출'에 초점을 맞춘 제한적 작전이었다는 점, 정보·심리전을 통해 발생한 내부의 균열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더 민감하게 이번 사안을 분석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북한이 오랫동안 현실적인 위협으로 간주해 온 '저강도 레짐체인지 모델'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다.

이미 지난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뒤통수'를 맞은 김 총비서의 트럼프에 대한 불신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적절한 시기를 봐서 미국과의 접촉을 모색하기보다는, 현재 주력하는 러시아와의 밀착을 기반으로 한 반미 연대 확장 기조에 더 집중할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는 오는 4월을 북한과의 대화 및 정세 변화의 분수령으로 삼으려던 이재명 정부의 구상에도 불확실성이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 4월에 트럼프 대통령이 "만나자"라고 다시 제의해도 북한의 답이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지난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로이터=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유엔 안보리, 5일 긴급회의 개최…중·러 반응 주목하는 北

이 과정에서 러시아, 중국, 이란 등 미국과 대립각을 세워 온 국가들의 대응은 북한의 계산에 중요한 참고 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5일(현지시간) 이번 사태와 관련해 긴급회의를 소집하기로 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에 대한 비난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마두로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보낸 추샤오치 특사와 만난 직후 미국에 의해 축출·체포됐다. 그 때문에 중국은 미국의 행위에 날 선 반응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중국이 이번 사안에 물리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은 작다는 점에서, 중국의 비난은 외교적 수사에서 더 나아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베네수엘라의 영향력에 비춰봤을 때 이 사안이 미중 간 갈등 사안이 될 소지도 크지 않다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러시아 역시 미국을 비난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 우크라이나와 미국, 러시아가 종전을 위한 3각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수준의 '조치'에 나설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무엇보다 마두로 대통령이 축출되고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에 지속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는 점에서, 중국과 러시아도 베네수엘라와의 새로운 관계 설정에 더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총비서의 입장에선 이러한 상황이 달가울 순 없다. 자신이 물리적으로 축출되기 전과 후의 중국, 러시아의 대응 방식이 180도 달라질 것이라는 시나리오 구성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다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중남미 정세와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 정세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물리적 개입을 선택할 '우방'이 없지만, 중국·러시아는 미국의 지역 내 영향력 확대를 극도로 경계하기 때문에 미국에 의한 북한 정권 축출을 관망할 리 없다는 측면에서다.

북한 정권과 김정은 총비서도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이해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당장 미국과의 적극적 외교에 나설 요인은 크게 줄어든 상황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과 어떤 합의가 이뤄져도 트럼프 행정부를 믿기 어렵다는 인식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1~2월 중 5년 만에 열리는 9차 노동당 대회를 통해 새로운 외교 전략을 수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는 북한이 당 대회를 통해 한미와 접촉·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측면에서 다양한 준비를 해 왔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사태를 계기로 북한이 한미를 향한 외교의 문을 더 굳게 걸어 잠글 것으로 예상되면서, 정부의 대북 구상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yeseu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