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악산 위치부터 모내기 시기까지…'집요한 관찰자' 애기봉 해설사[155마일]

김성이 애기봉 평화생태공원 문화관광해설사 인터뷰

애기봉 해설사 김성이 씨 사진.뉴스1 ⓒ News1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올해는 모내기 기간이 유난히 길었어요. 보통 6월이면 끝나는데, 올해는 5월 초부터 7월 초까지 이어졌습니다."

남쪽 농촌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이 말은 사실 북한의 들녘을 바라본 경험에서 나왔다. 지난 22일 경기도 김포시 고촌역 인근에서 뉴스1과 만난 김성이(58) 씨는 조강 넘어 북한과 불과 1.4㎞ 떨어진 김포시 애기봉 전망대에서 근무하는 문화관광 해설사다.

애기봉은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와 월곶면 조강리 경계에 있는 해발 154m의 산이다. 산의 형태가 쑥갓을 닮아 '쑥갓머리산'으로 불리다가, 1966년 고 박정희 대통령이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던 기녀 '애기'의 한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의 정서와 닮았다며 '애기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건너편 마을의 변화 읽기…'송악산' 위치 바로잡기까지

애기봉 전망대의 고배율 망원경으로 내려다보이는 곳은 북한 개풍군의 이른바 '해물 선전 마을'이다. 김 씨가 근무 중 매일 마주하는 풍경이다. 이 마을은 1960년대 말 조성됐는데, 당시에는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이 한국보다 높았던 시기여서 3~5층 규모의 콘크리트 건물을 세워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했다고 한다.

김 씨가 이 마을을 꾸준히 관찰하고 공부하는 이유는 방문객들에게 가능한 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풍경 속에서도 변화를 포착하려면 그만큼의 집요함이 필요하다.

그는 황해북도 개풍군이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개성직할시'를 거쳐 현재는 '개성특별시 개풍구역'으로 불린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전망대 교육 영상에서 천마산이 송악산으로 잘못 표기된 사실도 바로잡았다. 김 씨는 방문객들에게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 국토지리정보원 홈페이지에서 옛 한반도 지도를 찾아보고,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전망대에서 각 산까지의 거리를 직접 계산했다.

애기봉에서 송악산까지는 약 28㎞, 천마산까지는 약 38㎞다. 북한산은 약 34㎞로, 송악산이 가장 가깝다는 점을 근거로 삼아 다른 해설사들과 정보를 공유했다.

"개성공단 위치를 묻는 분들이 많아요. 애기봉에서 직선으로 보이는 건 개성역이고, 개성공단은 12시30분 방향 쪽에 있습니다. 어떤 산이 송악산이고 천마산인지 같은 디테일이 결국 신뢰로 이어지죠."

북한 선전 마을 초등학교 앞에 걸린 플래카드 문구도 그렇게 확인했다. 기존에는 '장군님 따라 천만리'로 읽혔지만, 날씨가 맑은 날을 골라 반복 확인한 결과 실제 문구는 '당중앙 따라 천만리'였다.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누군가 질문했을 때 자신 있게 설명하기 위해서다.

김성이 씨가 애기봉 전망대에서 촬영한 천마산과 송악산 사진 (김성이 씨 제공)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작은 평화'"

김 씨는 2000년 김포로 이주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무렵, 도서관에서 ‘김포 역사 문화 동아리’ 모집 공고를 보고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2007년 김포시 해설사로 활동을 시작했고, 2021년 애기봉 전망대가 평화생태공원으로 새로 단장한 뒤 2022년 이곳에 배치됐다. 현재 애기봉 해설사는 모두 7명이다.

초기에는 접근성이 떨어져 지원자가 거의 없었고, 팀장이 직접 연락해 인원을 꾸렸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해설사들이 지망하는 지역이며 하루 최대 2000명이 찾을 정도로 방문객이 늘었다. 민간인통제구역 인근에 있어 사전 예약이 필수지만, 예약이 조기 마감되는 날도 적지 않다.

방문객이 늘수록 김 씨의 책임감도 커졌다. 특히 '통일'이라는 단어에 불편함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어, 표현 하나하나를 더 조심하게 됐다고 한다. '통일은 무슨 통일이냐, 안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이런 의견을 받으면 김 씨는 이제는 '통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인지 반문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는 전쟁 세대는 아니지만, 아버지 세대는 전쟁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여기 서 있을 수 있는 건 남북 사이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거창하지 않더라도, 이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저는 '작은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내년부터는 이곳에 영어 해설사도 추가될 예정이다. '평화 관광지'로 홍보되면서 많은 외국인이 이곳을 찾고 있어서다. 김포공항역에서 셔틀버스로 약 50분이면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에 도착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23일 오후 경기 김포시 애기봉 평화생태공원 탐방로가 트리 모양으로 불을 밝히고 있다. 김포시는 1971년부터 매년 높이 18m 철탑을 트리로 꾸며 점등했지만 2014년 철탑 철거로 중단했으며 지난해부터 생태탐방로를 트리 모양으로 꾸며 점등하고 있다. 2024.12.23/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타깃'이 될 수 있는 곳…남북관계 온도계

애기봉 근무가 시작되자 김 씨의 지인들은 걱정이 많았다. 북한과의 거리가 체감된 사건도 있었다. 2022년 북한 무인기가 강화도 인근 상공을 비행했을 당시, 김 씨는 애기봉 전시관에 있었다.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관람객과 직원은 즉각 퇴장하라"는 안내 방송이 울렸고, 이후 사흘간 출근이 중단됐다.

"그때는 이유도 모른 채 집으로 돌아갔죠. 나중에 사정을 알고 나서야 '아, 여기가 정말로 북한과 가깝고 예민한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일대는 수도 서울 서측 최전방을 방어하는 해병대 2사단의 관할로, 출입 시 신분증 검사가 이뤄진다.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과 달리, 애기봉은 남북 관계의 긴장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전망대 11시 방향에는 한때 철거됐다가 지난해 10월 재설치된 대남 소음 확성기가 보이고, 북측 산 능선에는 감시초소와 철조망이 이어져 있다. 북한군의 전술도로이자 탈북 흔적을 감시하기 위한 '흔적로'도 눈에 띈다.

대북 심리전의 상징이었던 애기봉 크리스마스트리는 1953년 장병들이 소나무에 전구를 달며 시작됐다. 1971년에는 높이 18m의 철탑 트리가 세워졌고, 남북 관계가 악화하면 점등이 중단됐다가 완화되면 다시 불이 켜지곤 했다. 북한은 이를 대북 선전 시설로 규정하며 2010년에는 포격을 위협하기도 했다. 결국 해당 시설은 2014년, 설치 43년 만에 철거됐다.

올해는 새로운 방식의 트리가 등장했다. 김포시는 전망대로 이어지는 약 800m의 생태탐방로를 지그재그 형태로 조성해, 조명이 켜지면 하나의 거대한 트리처럼 보이도록 연출했다. 4.5m 규모의 ‘미니 트리’와 미디어파사드·레이저쇼를 결합한 ‘미디어 트리’도 처음 선보였다. 미니 트리는 북한에서 보이지 않는 위치에 설치됐다.

지난해에도 예정돼 있었지만, 계엄령 선포 등으로 군 수뇌부의 공백이 현실화한 상황에서 북한을 자극하는 행동은 자제해 달라는 군의 요청에 따라 계획은 보류됐다.

북한 마을도 마찬가지로 남북 관계에 따라 변화가 생긴다고 김 씨는 말했다.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이 개장한 이후에는 남한에 보여주기 위해 주민 300여 명을 마을로 이주시키기도 했지만, 또 오래 머무르면 남한을 보고 동화될 수 있어서 3년에 한 번씩 강제 이사를 시킨다는 증언도 일부 북한이탈주민들을 통해 나왔다.

"얼마 전까지 마을 건물이 잿빛이었습니다. 오래된 폐가처럼 회색빛이었죠. 그랬는데 올해 여름 흰색으로 페인트칠했습니다. 저는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이 새롭게 단장된 이후로 저기서도 부단히 무엇인가를 계속 보여주려고 노력한다는 느낌을 받아요.모든 관계가 상대적인 것처럼 (남과 북도)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이런 관찰을 통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youm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