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전 北, "특수관계, 모호해" 지적…"나라와 나라 사이 아냐"
[남북대화 사료집 공개] '두 국가' 선언 현재 북한과 전혀 다른 모습
- 최소망 기자
(서울=뉴스1) 최소망 기자
"'잠정적인 특수관계'라는 표현은 모호하고 명확하지 못합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다'라는 것을 명백히 지적했으면 좋겠습니다" (북측 백남준 남북고위급회담 대표 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통일부가 2일 공개한 제7차 남북회담 문서 사료에 따르면 지난 1991년 11월 11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기본합의서 내용조정과 문안 정리를 위한 대표접촉에서 북측은 기본합의서에 '잠정적인 특수관계'라는 표현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남북은 기본합의서를 도출하기 위해 5차례의 남북고위급회담과 13차례의 실무 대표 접촉을 통해 합의문을 완성했다. 이후 1991년 12월 13일 서울에서 개최된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화해 및 불가침·교류 협력 등에 관한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됐고, 이 합의서는 1992년 2월 19일 평양에서 열린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발효됐다.
북한의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다'라는 문구를 넣자는 주장에 당시 남측 대표 송한호(당시 통일원 차관)는 "남북 관계의 틀을 잡아가는 과정에서는 '무엇이다'가 더 필요하지 '무엇이 아니다'가 더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그러다 함께 협상하던 남측 대표 이동복(국무총리 특별보좌관)이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며,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명시하자는 북측의 주장에 남측은 "연구해 볼게"라고 답하고 추후 이는 서문에 반영된다.
결국 당시 남북이 각각 원하는 개념의 남북 관계가 들어간 것이 현재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이다. 서문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규정하고 있다.
또 남북기본합의서는 합의서상 최초로 국호 '대한민국'(국무총리)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무원 총리)이라는 표현도 사용하게 된다. 남측은 북측의 '하나의 조선' 논리에 대항하기 위해 쌍방 국호 사용을 강력히 주장했으며, 북측은 반대했으나 최종적으로는 북측이 양보하여 국호 명기하게 됐다.
남북 관계를 규정하는 것에 대한 남북의 이견은 유엔 가입 문제 관련 실무 대표 접촉에서도 볼 수 있다. 남북은 1990년 9월~11일까지 3차례의 유엔 가입 문제 관련 실무 대표 접촉을 가졌는데, 북한은 '단일의석', '공동 가입'을 주장했다. 국제관계에 적용되는 국가인정 원칙을 민족 내부 문제로 적용하면 안 된다는 논리였다. 결국 1991년 7월8일 북한이, 그해 8월 5일엔 남한이 유엔 가입을 신청하고 1991년 9월 17일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이 이뤄졌다.
북한은 그 시절 상주 대표부를 설치하는 문제도 '국가 대 국가' 논리로 번질 수 있음을 우려하며 반대한 바 있다. 당시 북측 대표 김영철 인민무력부 부국장은 1991년 11월 15일 제2차 대표 접촉에서도 상주대표부 설치와 관련 "이 문제가 한마디로 찍어 말하면 갈라지는 그런감, 분열 지향적인 그런감이 있다"면서 "외교 관례상 정신 국교 관계가 수립 전 나라와 나라 사이 또 국제기구들에 설치하는 하나의 외교 기구"라면서 반대했다.
30여년 전 북한이 남북 관계가 '나라와 나라 관계'가 아님을 부인하던 것과는 다르게, 현재는 '적대적인 두 국가'를 강조하고 있는 모습이다. 북한은 지난 2023년 말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를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선언했으며, 2024년 초부터 통일·민족 지우기에 나서고 있다. 북한이 이처럼 남북 관계를 '두 국가' 관계로 선언한 데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로 남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해 '흡수통일'에 대한 우려가 작용했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김웅희 전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장은 "북한은 (체제를 인정하지 않으며) 하나의 조선이라고 계속 주장했다"면서 "당시 남쪽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게 되면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생기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렇다고 하나의 국가라고 표현을 못하니 '남북은 나라와 나라 사이가 아니다'라는 표현을 주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은 과거부터 흡수통일에 대한 우려가 깊었다. 북측 대표 백남준은 1990년 9월 개최된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우리 민족이 바라는 것은 먹거나 먹히는 통일이 아니다"라면서 "흡수통일 미련을 가지고는 고위급회담 순조롭게 진행되기 어렵다"라면서 '흡수통일론'에 강한 거부감을 표하기도 했다. 이에 우리 측은 꾸준히 "우리는 북쪽을 흡수통일할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라고 다독이고 있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남북 간 평행선을 달리는 주장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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