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은 계속 '특수'할 수 있을까? [한반도 GPS]
법과 합의에 따라 '특수관계'…현실은 변화 불가피한 측면 있어
국민적 공감대와 합의 필요…상호 존중 태도도 중요
- 최소망 기자
(서울=뉴스1) 최소망 기자 = 지금 남북은 어떤 관계일까요.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일까요, 아니면 '국가 대 국가 관계'일까요.
우리가 법적으로 규정하는 남북관계는 '특수관계'입니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이 헌법 정신을 위배하지 않으면서도 남북 교류가 가능하도록 제정한 남북관계발전법 제3장 제1항도 '남북관계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한 관계이며,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고 명시합니다.
남북의 합의도 이에 맞춰 체결됐습니다. 남북 간 최초 합의인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는 '통일'이라는 원칙이 담겨있으며,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제1장 1절에도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한 관계'로 남북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남북은 분단 후 80여 년간 이러한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고민이 좀 필요한 시점이 된 듯합니다. 북한도 바뀌었지만, 우리도 바뀐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북핵의 고도화로 정부의 대북 정책은 남북 양자만 생각할 수 있었던 시기를 벗어나 이제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는 '외교'에 맞춰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 북한은 중국에서 벗어나 러시아로 외교의 축을 이동하면서 남북 간 접점이 흐려지고 있습니다. 2018년 북미 대화의 성과, 남북 대화의 실패가 거리감을 더했다는 냉정한 평가도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도 일단 남북관계 '복원'을 내세웠지만, 달라진 현실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책의 이행 과정에서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과 '두 국가' 사이의 어디쯤으로 설정한 듯한 모습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정부 출범 후 이어진 대북전단 통제, 대북 방송 중단·확성기 철거, 북한인권보고서 미발간 검토 등의 조치들은 북한과 대화를 추진한 과거 정부의 유화책과 표면적으로는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어쩐지 '스타일'이 좀 다르다는 느낌입니다. 대화가 멈췄을 때 어떻게든 북한의 답을 듣기 위해 수요 없는 지원과 협력을 제안하고, 그것을 '사명'으로 여겼던 것과 차이가 납니다.
정부는 일련의 대북 조치가 당장의 대화보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일임을 더 강조하거나 '그냥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반응은 우리의 목표가 아니라 북한의 몫일 뿐이라는 뜻일까요?
지난 13일 국정기획위원회는 이재명 정부 임기 내에 '남북기본협정'을 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이 협정은 1972년 체결된 '동서독 기본조약'을 기반으로 삼겠다는 계획인데, 동서독 기본조약은 동독과 서독이 서로를 '주권 국가'로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꽤 의미심장한 대목입니다.
최근의 통일부 명칭 논란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6월 말 장관 후보자 지명 직후 통일부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 시대상에 부합한다며 새 이름에선 '통일'을 빼는 것이 적합하다는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달 3일 취임 한 달 기념 기자회견에서 "지금 통일을 얘기하는 것은 자칫 상대(북한)한테 흡수하겠다는, 굴복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장 대북 접촉을 추진한다기보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것이 정부의 기조라는 해석이 나온 이유입니다.
정동영 장관은 지난 12일엔 정부의 대북 조치가 '대북 유화책'이라는 표현이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라면서 "대북 유화책이 아니라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정상화 조치로 불러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통일부와 북한학계에는 '남한은 형님, 북한은 아우'라는 오랜 인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새 정부는 이제 북한에 '손짓'하는 남한과, 이를 수용하는 북한이라는 관계를 바꾸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면 바꾸는 것이 맞습니다. 산의 정상은 변하지 않지만, 오르는 길은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듯 우리가 '통일', '한반도 평화'라는 '정상'에 오르기 위해선 오르는 길을 다르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국민에게 정책을 '내리 먹이지' 말고,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이루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의 갈등을 보면, 이것이 어쩌면 '평화 정착'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된 듯도 합니다. 아직도 '빨갱이'나 '애국 보수'라는 말로 점철되는 뒤처진 이념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담론 형성에 정부가 좋은 길을 제시하기를 기대합니다.
somangcho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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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반도 외교안보의 오늘을 설명하고, 내일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한 발 더 들어가야 할 이야기를 쉽고 재밌게 짚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