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세에 관심 많아진 김정은…美와 '다자 대화' 추진 여지

김정은, 한미일·나토·우크라·가자지구 등 '폭넓은 관심사' 피력
미국 '통제' 위해 '6자 회담'과 유사한 다자 대화 가능성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News1 DB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한미일 3각 협력, 아시아판 나토(NATO), 가자지구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 등 복잡한 국제 정세 현안을 '잘 숙지하고' 있으며 러시아와 밀착하는 현재의 외교 노선이 '가장 정당하다'라고 강조했다.

언급된 사안들은 모두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개입 중인 것으로,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양자보다는 다자의 틀에서 가져갈 구상을 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10일 제기된다.

김정은, 우크라·가자 등 언급하며 정세 분석…트럼프와 '기 싸움'

김 총비서는 지난 8일 인민군 창건 77주년을 맞아 국방성을 방문해 군인들을 격려했다.

그는 '핵 무력의 고도화'나 '핵 억제력의 가속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사업' 등을 언급하며 '최강경 대미 전략' 하에서의 군의 과업을 재차 제시했다.

동시에 현재의 국제 정세에 대해 북한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도 명확히 했다. 김 총비서는 먼저 미국이 한미일 3각 밀착을 통해 '아시아판 나토(NATO)'를 창설하려 하고 있으며 이것이 북한의 '안전환경 조성'에 도전 요인이라고 짚었다.

그는 이어 "지난해 세계의 지정학적 충돌과 대결의 무대가 된 가자지대와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 위기와 우크라이나 문제가 올해에도 긴장된 정세의 기본 축이 될 것"이라며 악화된 정세가 역시 미국에게 책임이 있다고 비난했다.

아울러 현재 북한군이 참전 중인 우크라이나전과 관련해 "러시아에 전략적 패배를 안기려는 실현 불가능한 망상을 미국이 가지고 있다"라며 자신들은 지난해 6월 체결한 북러 조약(포괄적 전략적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에 따라 러시아 군의 정의의 위업을 지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같은 김 총비서의 정세 인식은 그가 당장 미국과의 양자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진단이 가능한 대목이다. 특히 그는 "우리 당과 정부의 노선이 가장 정당하다"라고 강조했는데, 최고지도자의 이러한 공개 발언은 북한이 당분간 북러 밀착을 기반에 둔 '대미 대결전'에 외교 전략의 초점을 맞추고 나가겠다는 의지가 부각되는 부분이다.

김 총비서가 자신의 정세 판단과 외교 기조를 드러내는 발언을 노동당 회의나 정권수립일, 당 창건일과 같은 정치적 이벤트가 아닌 군 관련 행사에서 공개한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이를 두고 두 갈래의 해석이 제기된다.

먼저 취임 후 줄곧 '대화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주도권 다툼을 위한 기 싸움 차원에서 이런 행보가 나오는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과거 비핵화 협상 때 미국의 '결렬' 선언으로 성과를 내지 못했던만큼, 김 총비서가 아직은 '미국을 믿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내면서 미국의 움직임을 자신들 쪽에 유리하게 유도하려는 것이라는 취지다.

아울러 북한이 러시아와의 밀착에 대한 강한 의지와 자신감을 내비치는 것은 향후 미국과의 대화가 전개되더라도 과거와같이 양자 대화가 아닌 다자 대화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한 것도 북한의 입장에선 양자 대화에 대한 의지가 떨어지는 요인이라는 해석도 있다.

北 "다극화된 세계 건설해야"…북러 밀착으로 '상황 돌파' 노림수

다자 외교에 대한 북한의 의지는 최근의 외교적 활동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9월 최선희 외무상은 러시아에서 열린 제4회 유라시아 여성포럼, 제1차 브릭스 여성포럼에 참석해 "자주와 정의에 기초한 다극화된 세계를 건설해야 한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러시아의 주장과 동일 선상에 있는 것으로, 북한은 담화 등 외교적 수사를 선보일 때마다 "미국의 단일패권주의는 이미 몰락하고 전 세계 정세가 다극화되고 있다"라는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그 때문에 북핵 협상이 재개돼도 북한은 러시아, 중국과 연대해 과거 '6자 회담'과 유사한 다자적 틀 안에서 협상에 나서 '독보적 이익'보다는 '폭 넓은,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 미국이 함부로 협상을 결렬시키지 못하는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관건은 미국의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2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공식 발표하지 않고 있다. 집권 1기 때 다자 대화보다는 양자 간 '탑 다운'식 대화를 선호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스탠스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지만, 일단 북한의 협상 테이블로 끌고 나오기 위해 표면적으로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yoong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