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현의 북한읽기] 세대가 교체되면 사고도 변한다

편집자주 ...뉴스1이 북한 전문가 정창현 머니투데이미디어 평화경제연구소 소장의 글을 연재한다. [정창현의 북한읽기]는 북한 정치·군사·사회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함께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 북한 수뇌부에 대한 '리더십 해석'을 통해 반 발짝 앞서 북한의 변화를 읽어낸다. 정창현 소장은 서울대 대학원(국사학과)을 마치고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 전문기자를 거쳐 국민대·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국가기록원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2020년 10월 8일 삼지연관현악단이 당·정·군의 고위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당 창건 75돌 경축 공연을 하고 있다.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정창현 머니투데이미디어 평화경제연구소장 = 지난 10월8일 조선노동당 창건 75돌을 경축하며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이 삼지연극장에서 열렸다. 여성안내원의 부축을 받으며 극장에 들어선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양형섭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 최영림 전 내각총리, 김기남·최태복 전 당 부위원장 등은 공연장의 1열 객석에 앉아 손자뻘 나이의 공연자들이 펼치는 무대를 진진하게 관람했다. 이들은 북한의 '2세대'로 최고원로 대접을 받으며 10월10일의 열병식을 비롯해 각종 축하행사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소련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이들은 1960~70년대 김정일 후계체제가 수립될 때 당과 내각에서 선봉장 역할을 했던 간부들이었다. 이제는 공직에서 물러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 명예직만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정치의 중심이 된 3세대들

2012년 김정은체제 출범 이후 북한에서는 젊은 최고지도자의 등장에 맞춰 새로운 세대로의 교체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어떤 인사는 건강문제로, 어떤 인사는 정치적 문제로 일선에서 물러났고, 2세대 원로들을 대체해 3세대들이 당·정·군의 핵심간부로 부상했다.

어느 사회나 세대교체나 세월에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체제, 특히 북한에서 세대교체는 '정치적 과정'이기도 하다. 새로운 최고지도자의 등장과 후계체제의 수립과정에서 정치적 목적의 세대교체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세대교체는 "단순한 육체적 생명의 교대가 아니라 정치적 생명의 교대과정이고 그것이 더욱 붉게 꽃피는 과정"이라고 규정된다. 과거세대와의 단절보다 계승을 강조한다.

북한의 첫 세대교체는 1970년대에 이뤄졌다. 1972년 김일성 수상의 국가주석 취임을 전후해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완성한 북한은 새로운 후계자 선정과 세대교체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1972년 4월 김일성 주석은 환갑을 맞아 1세대의 노간부들과 함께 고향집을 방문해 기념사진을 찍었고, 이 자리에는 김정일 당시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비롯해 전병호·김기남·김국태·최태복 등 다수의 2세대들도 동행했다.

1972년 4월 북한의 1세대 주요간부들이 김일성 주석의 환갑을 맞아 2세대 주요 간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만경대고향집’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 제공: 미디어한국학)ⓒ 뉴스1

이 자리에서 김일성은 "우리가 처음으로 개척하여 40년간 해온 혁명사업을 이어나갈 교대자들"이라며 "우리 혁명의 교대자들은 아무리 세찬 폭풍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고 우리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1년 10개월 뒤 김정일이 공식후계자로 결정됐다. 이후 1세대의 2선 후퇴와 2세대의 전진배치가 이뤄지기 시작했고, 세대교체의 명분을 세우는 이론작업도 이뤄졌다. 2세대인 이길송(당시 함경남도 당 책임비서, 전 최고검찰소 소장)은 1976년 당 이론기관지에 실은 글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날 항일혁명투쟁시기에는 총을 잘 쏘고 적들과의 싸움에서 용감한 사람이 혁명에 충실한 사람으로 되었다면 우리 당이 정권을 잡고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는 높은 정치실무적 자질을 가지고 대중의 앞장에 서서 그들을 능숙하게 이끌어나가는 사람이 주체형의 혁명가로 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1980년에 열린 조선노동당 제6차대회에서 북한은 당 중앙위원의 65%를 교체했다. 그리고 2세대의 '선진주자'들이 정치국과 비서국의 간부로 기용됐다. 후계자 김정일의 등장과 함께 2세대가 북한정치의 주력으로 등장한 것이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김정일이 공식적으로 당 총비서와 국방위원장에 취임하면서 이 같은 추세는 더욱 가속화됐다.

사람이 바뀌면 조직과 정책도 변한다

주목할 대목은 이때부터 이미 북한에서는 3세대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흐름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북한은 전쟁을 겪지 않은 3세대를 향해 "혁명 1세들은 조국을 해방했고, 2세들은 전승을 안아 오고 부강 조국의 기둥을 세웠다. 이제는 3세, 4세들의 차례"라며 "사회의 주력을 이루는 혁명 3세, 4세들을 정치사상적으로 준비시켜야 한다"라고 부쩍 3~4세대의 역할론을 내세웠다. 3세대들이 수행해야 할 과제도 제시됐다.

김정일 위원장은 2009년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를 구호를 제시하고, "제 정신을 가지고 제 힘으로 일떠서면서도 배울 것은 배우고 받아들일 것은 실정에 맞게 받아들이며 모든 것을 세계최첨단수준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정은 위원장도 취임 첫 해인 2012년 4월6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간부)들과 한 담화에서 "오늘 세계는 경제의 지식화에로 전환되고 있다"며 "나라의 경제를 지식의 힘으로 장성하는 경제로 일신시켜야" 할 것을 시대적 과업으로 제시했다.

2010년 10월 당창건 65주년을 맞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후계자 김정은이 행사참석 주요 간부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리을설 등 1세대부터 3세대 간부들이 망라돼 있다. (사진 제공 : 미디어한국학) ⓒ 뉴스1

김정은 위원장은 2012년 4월 당·정·군의 최고직책을 모두 승계하고, 4년 뒤인 2016년 조선노동당 7차당대회를 통해 제도적 리더십을 완성됐다. 김일성시대에서 김정일시대로 전환 때 그랬던 것처럼 이 시기에 2세대에서 3세대로 간부들의 세대교체가 수반됐다. 2019년 4월 김정일시대 때부터 대외적으로 국가수반 역할을 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퇴진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16년 노동당 7차 당대회를 거치면서 당 중앙위원의 55%가 교체되고, 당 중앙위원회는 대부분 3세대들로 채워졌다. 김영철·박봉주 당 부위원장 등 2세대 원로도 일부 남아 있지만,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과 정무국(옛 비서국)에도 김재룡 당 부위원장, 김덕훈(내각 총리), 이일환(당 선전부장) 등 3세대 간부들이 다수 기용됐다.

상징적으로 이일환 당 부위원장은 북한의 1세대인 '항일빨치산'의 손자다. 이들은 대부분 남한으로 치면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86세대'이다. 이외에도 내각에는 40-50대의 젊은 층이 장관급으로 등용됐고, 군의 경우에도 군단장과 사단장급에 40-50대가 약진했다.

사회주의국가에서 차지하는 중앙위원회의 위상에 대해 "중앙위원회 위원 70명 가운데는 우리 사회의 제1급 산업지도자들, 제1급 집단농장 지도자들, 군부 지도자들 및 민족문제 전문가들이 망라되어 있다. 우리 당의 지혜가 결집되어 있는 곳이 바로 여기다"라고 지적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당의 부부장급, 내각의 차관급, 주요 기업의 책임자급이 망라된 중앙위원의 대폭 교체는 곧 사회주도층의 세대교체를 의미한다.

이러한 세대교체를 주목하는 이유는 세대가 바뀌면 정책기조나 조직 운영방식도 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한 세대가 과거 공유한 성장과 교육환경은 현재의 행동방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런 측면에서 수해현장을 직접 운전해 방문하거나 경제실패를 솔직히 인정하고, 대중연설에서 눈물을 보이며 '인민대중제일주의'를 강조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은 과거와 다른 리더십이기도 하지만 1-2세대와는 다른 환경 속에서 성장한 3-4세대와 공감대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 개인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북한의 세대변화에 주목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고난의 행군'과 디지털문화를 경험한 북한의 3-4세대

북한의 3세대는 1970~80년대 경제가 비교적 좋은 상황에서 국가로부터 무상으로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사회주의 시스템을 습득한 세대다. 이들은 전쟁을 겪지 않은 첫 세대로, 주체사상과 유일사상체계가 확고하게 자리 잡은 시기에 교육을 받았다.

국가의 혜택을 받은 만큼 충성도가 높고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보수적 사고를 갖고 있다. 또 3세대는 1980년대에 들어와 소련과 동구사회주의권이 개혁·개방의 길을 걷기 시작했기 때문에 외국 유학경험이 2세대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따라서 통제된 사회 속에서 '주체성'과 충성심은 앞선 세대보다 오히려 더 강하게 사회화되어 있지만 '혁명성'과 대외 접촉도, 자본주의국가 중심의 국제정세 흐름에 대한 이해도에서는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 후 ‘고난의 행군’이라는 최악의 경제난을 경험했다.

3세대의 엘리트층은 1970~80년대에 대학이나 군관학교를 나와 2000년대에 들어와 급부상했고, 김정은시대에 들어와 북한사회와 정치권의 주력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청소년기에 '고난의 행군'을 거친 4세대들은 3세대들보다 상대적으로 '사회주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북한은 3세대의 젊은 층과 4세대들을 '고난의 행군세대', '피눈물의 세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피눈물의 세대'란 한마디로 '처절한 전쟁에 비유되는 1990년대의 혹독한 굶주림과 경제난을 이겨낸 세대'란 뜻으로 사용됐다.

그만큼 체제 고수를 위해 고생을 한 세대지만 실력을 쌓기에는 국제적, 내부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지 못했다. 이와 달리 국내외 학자들은 이들 세대를 확대된 시장을 경험하며 성장했다는 측면을 부각시켜 '장마당세대'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경험한 북한의 3~4세대들은 혹독한 경제난을 경험한 만큼 경제부흥에 대한 열망 또한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체제 사수에 힘을 기울였던 김정일시대보다 경제성장을 하던 김일성시대에 대한 향수가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시대에 북한이 김일성시대를 모델로 정치리더십이나 정책기조를 가져가고 있는 이유다. 그래서 김정은 위원장의 리더십이 김정일보다 김일성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외 학자나 언론들이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이나 행동을 이례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지만 김일성시대를 경험했거나 학습한 북한 사람들은 이례적이라고 보기보다는 김일성 주석에 대한 향수를 떠올릴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된 '위임통치', 즉 김 위원장이 측근에게 권력을 나눠주는 형태의 위임통치를 하고 있다는 것도 당·정·군의 '집단적 협의구조'로 운영된 김일성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렇게 낯선 행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이 전자도서관 열람실에서 컴퓨터를 활용해 학습하고 있다. 북한의 3~4세대는 컴퓨터와 휴대폰 등 디지털문화에 본격 접하기 시작한 세대다. (사진 제공 : 미디어한국학) ⓒ 뉴스1

북한의 3~4세대를 이끄는 엘리트층은 해외의 새로운 조류에 민감하고,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는 정보화의 흐름에 적응하기 시작한 세대다. 단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조차도 외국 유학의 경험이 있고, 컴퓨터와 휴대폰 사용에 익숙하다. 김 위원장과 가장 가깝게 있는 이설주 여사나 김여정 제1부부장도 짧든 길든 유럽 경험이 있다. 평양에서 2016년부터 개최되고 있는 유럽풍의 '대동강맥주축전' 행사도 이들의 유럽경험에 밑바탕을 두고 있을 것이다.

또한 김정은시대의 정책을 만드는 경제관료 중에는 중국을 비롯해 유럽지역에 유학하거나 연수를 다녀온 인물이 다수 포진해 있다. 중국이나 베트남의 개혁개방 과정에 대한 현장 조사나 연구도 상당히 축적돼 있다. 2011년 북한의 3세대 핵심 경제관료로 구성된 경제대표단이 미국을 방문해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구글 본사 등을 비롯해 주요 기업들을 둘러보기도 했다.

특히 개인 컴퓨터와 휴대폰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주민들의 생활문화 자체가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다. 외부의 시선으로 보면 여전히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북한의 구세대들이 보기에는 '이래도 되나'라고 할 정도로 우려할 만한 현상이다.

북한 세대교체가 가져올 변화에 주목해야

김정은시대 북한의 핵심어는 '세계적 추세 수용'과 '실리 추구'다. 이러한 시대어는 북한 신세대의 지향을 반영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 하나의 정책 성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완고한 2급보수'란 표현을 썼다. 북한 내부에 여전히 개혁개방에 대해 소극적인 전통적인 보수층이 강고하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최선희 외무성 부상도 "사실 우리 인민들, 특히 군부와 군수공업 부문은 우리가 절대로 핵을 포기하면 안 된다면서 우리 국무위원장 동지께 수천 통의 청원 편지를 올리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최고지도자가 내부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미국과의 협상에 나섰음을 강조하면서 미국에 책임을 돌리려는 맥락에서 평양 내부 분위기를 전한 것이지만 북한의 신세대 내부에도 여전히 개혁개방의 폭과 깊이를 두고 '정책적 갈등'이 상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은 지난 8월 19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 전원회의를 열고 제8차 당대회를 내년 1월에 소집할 것을 결정했다. 지난 해 말 '정면돌파전'을 선언한 후 1년여 만에 열리는 8차 당대회는 더 어려움 환경 속에서 열린다. 국제사회의 대북경제제재에 더해 연초부터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19 대유행, 홍수와 태풍 등 연이은 자연재해 등 북한이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많은 상황이다. 벌써부터 북한이 어떤 경제정책을 내놓을지, 대외·대남정책의 방향이 어떻게 나올지 관심거리다.

노동당 8차 당대회를 거치면 북한의 3세대들은 명실상부하게 북한사회를 움직이는 중추로 자리 잡을 것이다. 북한의 세대교체가 갖는 의미, 신세대의 성향 등을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해야 하는 이유다. 북한도 세계적 추세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고, 변화와 정책은 결국 사람이 만들기 때문이다.

정창현 머니투데이미디어 평화경제연구소장/뉴스1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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