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없는 대북 유화책에도 北 반응은 '냉랭'…결국 북미 소통이 관건

[李대통령 100일] 정부, 출범 직후부터 각종 유화책…북한은 외면·비난
전문가 "북러·북중 밀착 등으로 남북 대화 쉽지 않아…북미 대화 선결돼야"

이재명 대통령,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뉴스1 ⓒ News1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이재명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을 강조하며 남북 간 대화와 협력을 적극 추진했지만 북한의 반응은 여전히 냉랭하다. 북한은 한국을 대화 상대로조차 여기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도, 미국에 대해서는 온도 차이가 있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북한을 상대로 한 선제적 긴장 완화 조치들을 빠르게 선보였다. 취임 닷새만인 지난 6월 9일 통일부 주도로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금지를 요청하고 나섰다. 같은 달 11일에는 국방부가 1년여간 이어왔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 데 이어 7월에는 국가정보원이 그간 대북 심리전 차원에서 송출하던 대북 라디오 및 TV 방송을 52년 만에 처음으로 멈추기도 했다.

정부는 북한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해 온 한미연합훈련의 톤을 조정하기도 했다. 한미 양국은 지난달 18일부터 28일까지 열흘간 한미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 프리덤 실드)를 진행하면서, 당초 기획된 야외기동훈련(FTX) 40여건 중 20여건은 9월로 연기하기로 했다.

정부는 연기 이유를 폭염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그간 북한이 한미연합훈련을 '북침 전쟁연습'이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해 온 것을 감안하면, 북한의 반응을 끌어내 한반도 긴장 완화를 달성하겠다는 목적의 조치로 해석됐다.

정부의 대북 유화책에도 또다시 선 그은 북한…이전보다 '높아진 문턱' 제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조선중앙TV 갈무리) /뉴스1 ⓒ News1

그러나 정부의 각종 유화책을 북한은 모두 평가절하했다. 북한의 대외정책을 총괄하며 김정은 당 총비서의 '입' 역할을 하는 김여정 당 부부장은 연이은 담화 공세로 이 대통령과 정부를 비난·조롱하기만 했다.

김 부부장은 지난 7월 28일 "한국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든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첫 공식 반응을 내놓았다. 이어 지난달 14일에는 '북한이 일부 대남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한미연합훈련 조정 조치를 "헛수고"라고 폄하했다.

같은 달 20일에는 이재명 정부가 남북 간 신뢰 회복을 위해 여러 조치들을 취하고 있는 건 알지만 이같은 한반도 평화 구상은 '망상'이고 '개꿈'일 뿐이라고 깎아내리면서, "리재명(이재명)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을 위인이 아니다"라며 남북관계에 대한 정부의 기대를 일축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지난 2023년 연말 '남북 적대적 두 국가' 정책 추진을 선언한 이후 한국을 철저히 외면해 온 북한이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은 것 자체가 한국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그러나 북한이 '요구 조건'을 내걸었더라도 그 조건의 문턱이 너무 높은 것이 문제다.

북한은 한국이 정말 대화에 나서고 싶다면 자신들이 요구하는 대로 △남북 두 국가 체제로의 전환을 인정하고 통일을 포기할 것 △한미연합훈련 폐지·비핵화 포기 △미국과의 밀착 없이 자신들을 상대할 것 등 무리한 조건을 선결 과제로 제시하며 사실상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북한, 중·러와 밀착하며 한국과는 거리두기…북미 대화 전개 시점이 문제
지난 2018년 6월 12일(현지시간) 싱가포르 센토사 섬의 카펠라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합의문을 발표한 후 악수하는 모습. ⓒ 로이터=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난해 6월 러시아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한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하는 등 밀착을 강화해 '새로운 동맹 관계'를 맺었고, 최근엔 중국과의 '혈맹 관계'도 복원하면서 한국과의 대화는 우선순위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다만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 여지는 남겨두고 있기 때문에, 북미 대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국도 '틈'을 파고드는 것이 현실적인 전략이라고 조언한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미관계가 개선되면 한반도 긴장도 본격적으로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우리 정부는 북미 대화 추진 과정에서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부 역시 이같은 판단 아래 대북정책 추진에 있어 한미 간의 협력을 중시하는 분위기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그를 '피스메이커'(peacemaker)로, 자신을 '페이스메이커'(pacemaker)로 칭하며 미국을 앞세워 남북관계를 풀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올해 연말 또는 내년 초에 개최될 제9차 노동당 대회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9차 당 대회 이후에 한국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하고 새로운 대외노선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때 적대적 두 국가 관련 헌법 개정을 진행하거나, 미국의 대화 시그널에 대한 응답으로 해석할 만한 메시지를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전망했다.

plusyou@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