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넘지 못하는 유전자 기록…이산가족 염원 대를 잇길"[155마일]
황춘홍 다우진유전자연구소 대표 인터뷰
해외 검체 100명 확보 목표…탈북민도 남측 가족 찾으려 의뢰
- 유민주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이산가족의 염원은 여전하지만, 그 간절함은 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남북이 분단된 지 올해로 80년, 혹은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를 시간을 기억에만 의존할 수 없기에 우리 정부는 일찍이 이산가족 유전자(DNA) 정보 보존 사업을 실시했다. 고령의 이산가족이 세상을 떠나도 후대가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지난해부터는 2·3세대로 검사 대상이 확대돼 유전자 정보 보존의 '바통'이 넘겨졌지만, 세월의 간극만큼이나 그리움의 온도 차는 크다. 생전에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조부모, 혹은 이름만 들은 삼촌을 찾기 위한 노력은 당대의 고통만큼 절박하긴 어려워진 것이다. 이전에도 이산가족 2·3세대의 유전자 검사가 불가능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간 사업의 초점은 이산가족 1세대에 맞춰져 있었다.
다우진유전자연구소는 통일부가 주관하는 이 국가사업을 2014년부터 11년째 수행해 왔다. 지난 18일 뉴스1과 만난 황춘홍 다우진유전자연구소 대표는 "작년에 정부가 이산가족 2·3세대들로 검사 범위를 확대했지만, 참여율이 저조하다"며 "부모 세대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뿌리를 보존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통일부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988년부터 올해 7월 31일까지 정부에 등록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3만 4484명 가운데 9만 8981명(73.6%)이 숨졌다. 생존 이산가족 중 △59세 이하는 5.6% △60대는 10% △70대는 17.8% △80대는 33.7% △90세 이상이 32.9%로 70세 이상이 전체의 대부분인 84.4%를 차지한다.
"아직 유전자 보존 신청을 안 하신 분들은 '내가 생전에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겠느냐'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가장 큰 것 같아요. 혹은 '70년 이상 떨어져서 살았는데 가족 찾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이산가족으로 등록된 모든 가정이 유전자 채취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올해는 2024년 실시된 '제4차 이산가족 실태조사'에 참여 의사를 밝힌 '검사 희망자' 중 우선순위 대상자를 선정해 2·3세대 이산가족 포함 총 1550명이 명단에 올랐지만, 연구소의 연락에 응하는 비율은 30% 미만이라고 황 대표는 말했다.
다우진유전자연구소는 올해 상반기 약 400명의 검체를 확보했다. 사업 초반에는 해마다 1만 명씩 채취한 것과 대비되는 숫자다. 대부분 고령에 거동이 불편한 경우가 많아 연구원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직접 어르신들의 혈액, 타액, 모발 등을 채취했다고 한다. 현재는 4명의 연구원이 현장에 파견되고 있다.
황 대표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6월과 7월 채취 수준을 보면 올해는 700명도 어려울 수준일 것 같다"며 "이제는 하루에 성사되는 예약이 총 2~3건 밖에 없는데 과거에는 한 연구원이 하루에 7~8건은 예약을 했었다"라고 말했다. 이산가족 유전자 검사 사업이 활발히 진행됐을 당시 현장 직원들은 매해 주어진 기간 안에 맞춰 일정을 계획하다 보니 늘 시간에 쫓기고 분주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예약 방문을 해도 당일 채취가 어려운 상황이 생긴다. 혼자 사는 이산가족 어르신들의 연락이 두절돼 헛걸음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고, 예상치 못한 야단만 맞고 오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그동안 기다려온 세월의 노여움을 연구원들에게 퍼부은 분들도 있었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시작된 이산의 역사는 80년이 흐른 지금까지 가족들의 만남을 가로막고 있다. 남북 당국 간 회담은 2018년 12월이 마지막으로 남북대화가 성사된 1971년 이후 최장기간 단절이다. 남북 간 연락 채널은 2023년 4월 7일 북한의 일방적인 차단 이후 복원되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가 하면 식탁에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려두고 연구원들을 기다리는 분들도 있었다고 한다. 채취는 끝났지만 1시간 동안 연구원들을 붙잡고 북한에 있을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갈 때 손에 반찬을 쥐여주던 어른들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황 대표는 말했다.
"지금은 당장 못 만난다는 사실을 다 받아들이고 알고 계세요. 하지만 어떤 분들은 '죽어서라도 만나고 싶다'라는 말씀을 하시니까, 부모 세대들의 심정을 잘 헤아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족 확인이다 보니 추후 재산분할에 대한 염려 등의 이유로 가족이 반대해 어르신들이 신청을 못 하는 등 여러 가지 사연으로 검사자들이 줄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황춘홍 대표는 유전자 감식 회사의 벤처기업 연구원으로 재직하다 2002년 다우진유전자연구소를 설립했다. 우리나라는 분단국가이기에 유전자 감식 기술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에 창업을 결심했다. 그는 창업을 시작할 때부터 '유전자 검사 시료'를 장기 보관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해 특허 등록을 하며 유전자 '보관'에 대한 의지를 이어왔다.
정부는 사업 초반에 유전자 검사 후 시료를 폐기하자는 의견을 냈는데, 당시 황 대표는 이산가족 유전자정보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고 한다. 시료를 보관하는 작업은 막대한 책임이 따르고, 재정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기에 정부 부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사업이었다. 통일부는 사업을 추진할 업체를 선정할 때 경쟁에 참여한 업체들이 제출한 사업 제안서를 검토하는데, 황 대표는 이러한 내용을 포함해 정부에 제안했다는 설명이다.
"검사한 시료를 다 폐기하고 기본 검사만 해놓으면 실질적으로 가족을 찾았을 때 매칭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검체를 많이 확보해 두고 보관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예산 낭비를 하지 않기 위해 현재도 우선은 기본 검사만 해두지만, 더 복잡한 가족 확인을 위해서는 유전자 마크를 더 많이 분석해야 합니다. 이 사업에 사명감을 가지고 장기적 관점에서 실질적으로 '가족 찾기'에 무엇이 도움 되는지 고민을 많이 한 것이 저희가 선정됐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우진유전자연구소가 자체 개발한 글로벌 표준 유전자감식 시약인 'DowID Coreplex24 Kit'는 국산화에 성공해 국내 최초로 조달청 혁신제품으로 인증받았다. 한 번의 시험분석으로 24개 유전자 마커가 동시에 분석되고, 유전자 분석 시간도 1시간 반으로 단축한 개체 식별력이 높은 제품으로 다양한 현장 검체나 대량시료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활용도가 높다.
채취된 혈액을 검사용과 보관용으로 구분해 FTA 카드를 두 장으로 늘리자고 제안한 것도 연구소였다. FTA는 '신원확인 카드'라고 불리는 특수카드로, 카드 내 종이필터는 특수 화학 처리돼 있다. 혈액을 몇 방울 떨어트리면 흡수되는 즉시 혈액 내 모든 단백질이 파괴돼 유전자 손상 방지를 위한 안정화가 이뤄진다. 사혈침으로 당뇨 검사 하듯이 손가락을 찔러 카드에 혈흔을 묻히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타액과 모발을 채취하는 방식도 이후에 추가된 것인데, 모두 최대한 많은 유전자 정보를 남겨 혈연관계 계산법에서의 확률을 높이는 데 활용하기 위함이다. 황 대표에 따르면 부모와 자식 관계가 아닌 먼 친척 관계일 때는 가족 관계 확인을 위해 더 다양한 유전자 검사가 필요하다. 현재는 유전자 검사에 한계가 있지만, 추후 발전되는 기술력으로 어려운 가족 관계를 밝힐 수 있는 날을 대비해 유전자 시료를 장기 보관하자는 취지다.
"현재는 형제나, 삼촌 관계까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나아가면 복잡해집니다. 혈연관계에 따라 종합적으로 고려할 디테일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모든 케이스를 데이터베이스에 구축할 수는 없고 특별한 혈연 찾기 검사가 생긴 경우 추적 검사가 진행됩니다.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추린 다음, 정밀한 검사가 필요한 가족은 각각 개별검사를 진행하는 거죠. 혈연관계를 확률적으로 나타내는 지수 계산법은 유전자 마커가 많을수록 정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남북 이산가족 생사 확인 및 교류 촉진에 관한 법률' 제8조의2에 근거해 2014년부터 유전자 검사 사업을 추진해 온 연구소는 현재까지 총 2만 8141명의 이산가족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다. 이렇게 확보된 유전자 정보는 지난 2017년 개정된 '남북이산가족 생사 확인 및 교류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통해 민간업체가 아닌 질병관리본부 국립중앙인체자원은행에서 통합 관리하게 됐다.
다우진유전자연구소는 현재 이산가족 이외에도 국방부의 '6·25 전사자 유가족 유전자 검사 사업'도 수행 중이며 약 1만 2500명의 6·25 전사자 유가족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의 '2025년 민간인 희생자 발굴 유해 유가족 유전자 검사' 수행기관으로 선정됐다.
진화위 사업에는 제주 4·3 사건과 관련된 대전 산내 골령골 지역에서 발굴된 유해를 중심으로 유해 230구와 관련 유가족 100여 명의 유전자 정보를 활용하여 발굴된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사업으로, 유해 및 유가족의 시료 채취 및 목록화, 확보한 유전정보의 비교 분석 등이 포함됐다.
6·25 전사자 유가족을 찾는 사업은 유전자 채취 후 검사를 한 뒤 폐기가 가능하다. 바로 매칭할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황춘홍 대표는 "발굴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는 사업 등은 바로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오는 사업이지만, 반면 통일부 사업의 경우 대부분 보관이 목적이기에 관심도가 떨어지기 쉽다"라고 설명했다. 이산가족들 입장에서는 보여주는 결과물은 없는데, 개인의 유전자 정보만 제공한다는 것이 꺼림직하다는 심정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해외 이산가족 유전자 채취도 막막한 일이다. 통일부는 지난해 이산가족 2·3세대 유전자 검사 확대와 더불어 해외 거주 이산가족까지 사업 대상을 확대했다. 연구소는 지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방문해 24명의 검체를 확보했다. 그리고 올해는 애틀랜타 지역에서 100명의 검체 확보를 목표로 세우고 추진 중이다.
하지만 넓은 미국 땅에 흩어져 거주하는 이산가족에게 검사 소식을 홍보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고 황 대표는 설명했다. 연구소 직원들이 해당 지역에 머무는 날짜는 제한적인데, 정해진 장소에 이산가족들이 개별 일정을 맞춰서 모여야만 한 번에 채취 작업을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 안내하는 설명회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사전에 출장을 가서 계획을 하고, 식당을 빌려서 저희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어요. 식사하고 행사가 끝난 뒤에 두 번은 모이기 힘드니까 바로 그 자리에 채취할 수 있는 부스를 준비해 검사하도록 하고 기획하고 있습니다."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이산가족의 범위는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북한이탈주민(탈북민)들도 남측에 있는 가족을 찾기 위해 의뢰를 한다고 한다.
황 대표는 "탈북민분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피해를 줄까 봐 인적 자원을 잘 안 남기고 싶어 하는데, 간혹 부모 세대로부터 남쪽에 가족이 있다고 들은 것을 기억하고 가족을 찾으려는 분이 계신다"라고 말했다. 이들 모두에게 이산의 세월은 멈추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다. 간절했던 염원이 유전자에 담겨 있다면, 이제 그 기억을 이어갈 책임은 남은 세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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