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다면서도 계속 '말 폭탄' 던지는 북한…한국 시험대에 올렸다
김여정, 李 대통령 대북정책 구체적 언급하며 문턱 높은 '요구사항' 제시
한미연합훈련 폐지·적대적 두 국가론 수용 요구 등
- 임여익 기자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최근 한국을 겨냥한 북한의 메시지가 잦아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한국을 더 이상 상대조차 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도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강력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대화의 문턱을 높여 이재명 정부가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을지를 시험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20일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전날 외무성 주요 국장들과 협의회를 열고 김정은 당 총비서의 '대외정책 구상'을 전달 포치(지도)했다고 보도했다.
협의회에서 김 부부장은 이재명 정부가 남북 간 신뢰 회복을 위해 여러 조치들을 취하고 있지만, 이같은 한반도 평화 구상은 '망상'이고 '개꿈'일 뿐이라고 깎아내렸다. 또한 이 대통령이 닷새 전 광복절 80주년 경축사에서 내놓은 대북 유화 메시지를 언급하면서 "리재명(이재명)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을 위인이 아니다"라고 현 정부에 기대가 없다는 입장을 부각했다.
정부가 남북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알겠지만 이는 현재 북한이 천명한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을 바꿀 만큼의 유인은 아니라는 뜻이다.
최근 김 부부장은 새 정부 출범과 8월 한미연합훈련 등을 계기로 한국을 겨냥한 메시지를 자주 내고 있다. 지난달 28일 김 부부장은 "한국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든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에 첫 공식 반응을 내놨다.
지난 14일에는 '북한이 일부 대남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을 반박하고,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단행한 한미연합훈련 '조정' 조치를 "헛수고"라고 폄하했다.
북한의 대외사안을 총괄하며 이와 관련한 김정은 당 총비서의 '입' 역할을 하는 김여정 부부장이 연일 한국을 향해 작심 발언을 이어가는 것은 남북 대화에 대한 기대감이 없다면서도 '할 말은 많다'는 모습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은 지난 2023년 연말 김 총비서가 '남북 간 따로 살기'를 선언한 이후 한국을 아예 없는 상대처럼 외면해 왔는데, 이날 김 부부장이 이 대통령뿐 아니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조현 외교부 장관·안규백 국방부 장관 등의 이름을 모두 호명하고 이들이 인사청문회에서 했던 '주적 발언'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그만큼 북한이 이재명 정부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김 부부장은 한국이 겉으로는 북한에 대화의 손짓을 건네면서도 한편으로는 한미동맹을 유지·강화하고 흡수통일을 추구하는 것이라며 이를 '이중적'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지난 18일부터 진행 중인 한미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 프리덤 실드)를 "우리 공화국의 안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무모한 미한(미국·한국)의 침략전쟁 연습"이라면서, 이 대통령이 이를 '(북한에 대한 공격 의도가 없는) 방어적 훈련'이라고 말한 것도 '전 정부와 똑같은 행동'이라고 폄하했다.
또한 한국은 보수·진보 정권 관계없이 "우리 공화국에 대한 대결 야망을 추호도 변함없이 대물림왔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한국 헌법 제3조와 4조가 각각 명시하고 있는 영토 조항과 자유민주적 평화통일 관련 조항이 '흡수통일'과 다름없음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현재 북한이 한국을 상대로 △한미연합훈련의 폐지 △남북 두 국가 체제로의 전환과 통일 포기 등의 조건을 내걸고 이에 대한 한국의 반응을 가늠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한국이 대북 '주적' 인식을 유지하고 미국과의 연합훈련을 진행하면서 유화 정책을 펼치는 게 이중적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라면서 "한국이 이와 관련된 근본적인 '전환'을 보이지 않으면 남북 간 대화나 협력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못 박은 것"이라고 봤다.
북한 역시 이재명 정부가 '한미동맹 약화'와 '적대적 두 국가 체제 인정'이라는 요구사항을 받아들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한국이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항복'에 가깝게 전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대화하지 않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러시아와 밀착하며 여러 군사적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남북 대화가 급하지 않은 만큼, 우선은 한국에 자신들의 '조건'을 계속해서 관철하며 그전까지는 어떠한 교류와 협력도 없을 것이라는 태도를 밀고 나갈 것으로 관측된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핵을 보유한 정상국가로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전, 혹은 그럴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대전환 시점' 전까지 북한이 미국 또는 한국과 대화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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