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은 적대적 두 국가"라던 北…헌법 개정 1년 넘게 미뤄

지난해 초 김정은이 '새 남북관계' 관련 '개헌 지시'…이행은 아직
법 조항 신설 관련 내부 논의 길어졌나…한국 압박 위해 미뤘을 수도

(평양 노동신문=뉴스1) = 지난해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 '남북 적 대적 두국가 관계' 관련 개헌을 지시하는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북한이 지난해부터 새 남북관계 정책 기조로 밝힌 '남북 적대적 두 국가 관계'와 관련한 헌법 개정을 1년 넘게 미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법 조항 신설과 관련한 내부 논의가 길어졌거나, 헌법 개정을 한국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뜸을 들이고 있을 가능성이 동시에 제기된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14일 담화를 통해 남북이 '적대적 두 국가 관계'에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며 앞으로 이와 관련된 헌법 개정 절차를 밟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는 앞서 김정은 당 총비서가 지난 2024년 초 내린 '개헌 지시'가 아직 온전히 이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 부부장은 이날 담화에서 이재명 정부의 각종 대북 유화 조치들을 평가 절하하며 "우리는 미국의 충성스러운 하수인이고 충실한 동맹국인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전혀 없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같은 입장이 "앞으로 우리(북한)의 헌법에 고착될 것"이라면서 "우리의 국법에는 마땅히 대한민국이 그 정체성에 있어서 가장 적대적 위협 세력으로 표현되고, 이는 영구적으로 고착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당 총비서는 지난 2023년 12월 개최된 연말 당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처음 정의했다. 이듬해 1월 15일 한국의 국회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는 헌법에 영토·영해·영공 조항을 신설해 주권 행사 영역을 규정하고, 통일과 관련한 표현을 모두 삭제하는 내용의 개헌을 지시했다. '민족과 통일'이라는 개념에 따라 상호 특수관계를 인정했던 과거를 지우고 남한도 '나라 대 나라'로 대하겠다는 취지다.

이같은 방침에 따라 북한이 새로운 '국경'을 설정해 이를 공표하고 과거 남북 합의를 파기하는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아직까지 북한은 '남북 두 국가 관계'와 관련해 신설한 법 조항을 공개하거나, 접경지에서 분쟁 소지가 있는 행동을 보이진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개헌을 했지만 대내외적 파장을 고려해 의도적으로 공개를 미루고 있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실제 북한은 작년 10월 15일 남북 연결도로와 철도를 폭파하는 '단절 조치'를 취하면서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 국가로 규제한 공화국 헌법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며 헌법이 개정됐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김 부부장의 담화로 아직 관련 결정이 구체적으로 내려지지 않았거나, 아직 관련 작업이 기초적인 단계에서 진행 중임이 확인된 것이다.

경기도 파주시 자유로에서 바라본 북한군 초소2024.1.16/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전문가들은 북한의 개헌이 늦어지는 이유가 북한의 현재 외교 기조, 대외 상황에 따라 고려할 사안이 다각적이기 때문일 것으로 봤다.

우선 북한이 헌법에 새로운 영토 조항을 추가하고 남북을 서로 다른 국가로 명시하기 위해서는 지난 1953년 맺어진 정전협정을 무력화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협정 체결 당사자 중 하나인 중국의 입장을 고려할 시간이 필요했다는 분석이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날 김 부부장이 담화에서 '한국은 자국 헌법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흡수통일하려는 망상을 명문화'하고 있다고 언급한 점에 주목하며 "이는 한국 헌법 제3조와 4조가 북한의 존재를 먼저 부정하고 위협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향후 개헌 절차에서 중국 등을 설득하기 위한 명분을 만들어 둔 것"이라고 봤다.

또한 북한은 지난 한 해 동안 러시아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조약'을 맺고 대규모 전투부대를 러시아에 파병하는 등 '혈맹' 수준의 관계가 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이라는 상황을 맞이하면서 대남 노선과 관련한 개헌 조치를 잠시 미뤘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내부적으로는 선대인 김일성·김정일이 줄곧 유지해 왔던 통일, 민족 개념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교육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편 북한이 1년여간 미룬 개헌 구상을 다시 밝힌 것은 '핵보유국 지위 인정'에 대한 북한의 의지가 이전보다 강화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남북 간 민족관계라는 특수성 아래에서는 한국이 계속 북한의 비핵화를 추구하고 관여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이제는 두 국가론을 법제화해야겠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연말 당 전원회의 또는 내년 초 9차 당 대회 이후에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하고 헌법을 개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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