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도 서울살이도 외롭긴 마찬가지"…'연결' 필요한 청년들 [155마일]

남북 청년 커뮤니티 '온도시' 운영진 인터뷰
"소외된 청년들 소속감과 안정감 느끼길"

편집자주 ...155마일은 남북 사이에 놓인 군사분계선의 길이입니다. 이 경계의 실체는 선명하지만, 경계에 가려진 사실은 투명하지 않습니다. 분단의 현실을 직시하되, 경계 너머 북한을 제대로 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겠습니다.

지난 5일 뉴스1과 만난 '온도시'의 운영진 한현재 씨. 2025.8.5/뉴스1 ⓒ News1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고립'과 '청년'이란 키워드로 남북 청년이 모였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통일 담론도, 북한인권 상황을 알리는 행사도 아닌 그저 일상을 또래와 함께 나누는 시간이었다. 남과 북을 막론하고 경쟁과 불안 속에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려는 공통된 마음이 이들을 연결시켰다.

남한과 북한 이탈 청년 모두(온)에게 따뜻한(溫) 도시가 되길 바란다는 뜻의 '온도시'는 2018년부터 시작된 소규모 커뮤니티다. 매번 10명 내외의 인원이 모인다는 이 모임에는 20대 중반부터 40대까지의 남북 청년들이 참여하고 있다. 대부분 사회초년생이거나 직장인이다.

지난 5일 뉴스1과 만난 '온도시'의 운영진 한현재 씨(33)는 "저희 모임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단어는 '친구'"라며 "보고 싶을 때 만날 수 있는, 목적 없이 만날 수 있는 친구가 되는 게 저희 모임의 목표"라고 말했다.

한 씨는 "탈북 청년들과 남한 청년들이 저희 모임을 통해 연대를 느끼고 관계망을 유지하면서 안전한 어떤 공동체의 소속감을 느낀다면, 살아가는데 '쉼'이 되기도 하고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소외된 청년들이 안정감을 느끼며 살아가도록 서로 도울 수 있는 모임을 형성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덧붙였다.

청년들의 고민, 남과 북 다르지 않다

'온도시'는 4명의 남북 청년이 운영진으로 활동하며 프로그램을 기획해 나가고 있다. 모임 홍보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하거나, 각자 가까운 지인들을 십분 활용한다. 매번 지정된 만남과 활동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의 일정과 관심사에 따라 원하는 남북 청년 누구나 모임에 신청할 수 있다.

여타 커뮤니티와 달리 일관된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온도시'만의 특징이다. 흔히 독서 커뮤니티, 런닝 커뮤니티 등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은 참가자의 수요에 따라 다음 모임의 컨셉과 내용을 준비한다.

지난 6월 진행된 '남북 올림픽'도 다른 성향의 청년들의 수요를 맞추고자 다양한 스포츠가 가능한 '올림픽'으로 기획했다. 폐활량 게임, 림보, 탁구공 맞히기 등의 게임이 진행되면서 부담 없이 친해지는 시간이 마련됐다.

"규모가 큰 커뮤니티를 가면 정치적인 활동이나 종교,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너무 쉽게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탈북 청년 중에는 그런 것들에 피로도가 높은 분들도 있다.남과 북을 떠나 각박한 도시에 사는 청년의 입장에서 다들 힘드니까, 서로 위로하고 자주적으로 모이고 또 친구가 될 수 있는 모임이 되고 싶다".

지난 7월에는 'NEET'(직장, 교육, 훈련 등을 하고 있는 상태가 아닌 젊은이) 청년을 위한 토크콘서트를 준비했다. 진로, 취업 등의 고민을 가진 사회초년생들과 '나답게 사는 방법'에 관심 갖는 직장인들을 위해 마련된 시간이다. 무업기간 동안 청년들의 문화와 네트워킹을 만들어온 박은미 '니트컴퍼니' 대표를 섭외해 서로의 아이디어를 나눴다.

한 씨는 이번 토크콘서트의 결이 '온도시'의 고민과 맞닿아 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나 요즘 어디서 일한다"를 쉽사리 말하지 못하는 부끄러움은 남과 북을 구분 짓지 않는다. 삶의 궤적은 다 달라도 사회생활,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힘듦은 거의 비슷하다.

소박하지만 후원도 한다. 매년 꾸준히 열고 있는 연말 파티의 '물품 경매' 행사는 그해 한 번이라도 모임에 참가했던 청년에게 초대장이 발급된다.

뜯지 않은 칫솔, 램프, 디퓨저, 바디스크럽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품들이 3000원~1만 원대로 팔린다. 지난해 연말에는 의료비 지원이 필요한 북한이탈주민에게 판매 수익금 20만 원을 후원하기도 했다. 값비싼 물건은 없지만 작은 마음들이 모여 후원하는 활동이기에 가장 뿌듯한 시간이라고 한 씨는 전했다.

온도시 '남북 올림픽' 활동 사진. (온도시 제공)
시선이 '탈북민'에게로 옮겨지기까지

온도시 운영진들은 대학 시절 봉사 연합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다. 한현재 씨는 탈북민을 대상으로 영어 봉사 활동을 했고, 같은 운영진 중 하나인 지예진 씨는 쪽방촌에 살고 있는 탈북민에게 도시락을 전달하고 말동무를 하는 봉사 활동을 하기도 했다. 동아리 활동을 하며 서로 나눈 탈북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늘 '강렬하고 무거운' 그들의 인상에 대한 편견도 느끼게 됐다고 한다.

'다름'에서 오는 이질감도 있었지만 이들이 자발적, 타의적으로 소외되기 시작했을 때 원인 모를 죄책감도 생겼다고 한 씨는 말했다. 한 씨는 "(당시에) 저희가 가진 편견 때문에 상처받은 또래 탈북민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그분들이 우리의 시선을 느꼈을 때의 억울함과 수치스러움, 원망 등을 듣고 저희랑 어울리고 싶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매우 슬펐고, 사실은 서로를 잘 몰랐던 것뿐인데 솔직히 조금은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다 2018년 4월 한 프로그램에서 유엔 SDGs(지속가능개발목표) 기반 사회문제 해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동아리원들이 다시 모였다. 주변에서 일어나지만 그동안 관심을 두지 못했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을 계기로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시선을 넓혔다.

'왜 탈북민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그들이 갖고 있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어려움 해결에 도움을 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 매주 스터디 모임을 했다. 그리고 남북 출신 청년들이 서로의 삶과 문화를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껴 커뮤니티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3월 비영리단체 등록…'친구' 넘어 '가족' 만들기 프로젝트 꿈꾼다

온도시는 출범 7년 만인 올해 3월 비영리단체로 등록했다. 홍보와 지원의 필요성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각종 커뮤니티가 활성화돼 홍보도 잘 됐는데,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사람들이 온라인 알고리즘에 더욱 갇혀버렸고 신청자수도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코로나19 전에는 환경, 유기견, 비만 치료 등 다양한 주제의 플랫폼에서 협력 활동을 했기에 홍보할 기회도 많았다.

또 코로나19 이후로 소모임인 경우 지원 규격을 갖추지 못해 각종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게다가 온도시는 대다수 청년이 경제 활동을 하고 있는 대외활동으로 분류되다 보니 지원금 심사에서 통과되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모든 활동을 사비와 회비 정산으로 해결됐지만, 대관비와 교통비, 식비까지 지출이 지속되자 형편이 어려운 청년과는 같이 밥도 먹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시작했고, 이는 비영리단체 등록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온도시는 천천히 성장하고 있다. 언젠가는 '친구'를 넘어 '가족' 만들기를 목표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 씨는 말했다. 청년들과 나누는 이야기 주제에는 연애, 결혼 등도 빠지지 않는데, 사실 아직까지 북한에서 온 사람을 가족으로 맞이한다는 일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을 지인들의 경험을 통해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도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지만, (남북 청년들이) 친구 교제를 넘어서 진짜 가족이 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을 최근에 느꼈다.언젠가는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를 넘어서고 싶다. 지난해 파일럿처럼 오프라인 남남북녀 소개팅 시간을 가졌는데 약속한 시간이 1시간 반이 지나도록 다들 집에 가질 않더라. 거기서 희망을 봤다."

youm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