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주적 논란'과 처형의 전짓불

국무위원 인사청문회에서 이어진 '주적' 공방, 꼭 필요할까

지난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장에서 열린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해 자리가 비어있다.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은 김 후보자가 "북한은 주적이 아니라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도 말씀하셨다. 거기에 동의한다"라고 답한 것에 대해 북한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정리해 소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청문회장을 퇴장했다. 2025.7.16/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너는 어느 편이냐."

6·25 전쟁이 한창이던 어느 날 밤, 민가에 들이닥친 군인들이 깜깜한 어둠 속에서 눈을 뜨기도 어려울 정도로 밝은 전짓불(電池불)을 들이밀며 묻는다. 자신이 국군인지 인민군인지 밝히지 않은 채 사람들에게 양자택일의 대답을 강요하고 '내 편'이 아니면 처형하는 극단의 시대. 이청준의 소설 '소문의 벽'의 한 장면이다.

최근 여의도에서 불거진 '주적 논란'을 보며 소설 속 전짓불을 떠올린다. 이번 한 주 동안 진행된 이재명 정부 국무위원들의 인사청문회에서는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북한은 우리의 주적인가 아닌가"이다.

후보자들의 대답은 다양했다. 북한이 실존적 '위협'은 맞지만 동시에 대화와 협력을 추구해야 하는 상대인 만큼 '주적'은 아니라는 의견부터(정동영), 20~30년 전 사용되던 낡은 용어인 만큼 '주적'이라는 표현을 현시점에 다시 꺼낼 필요가 있냐는 반문까지(권오을).

이런 답변에 야당 의원들은 후보자들의 대북관을 문제 삼으며 정회를 요구하거나 청문회장에서 단체 퇴장하는 등 반발했다. 결국 한 후보자는 마지못해 "(북한이) 주적이 맞다"며 앞선 자신의 입장을 바꾸기도 했다(김영훈).

물론 국무위원들의 대북관은 중요하고, 검증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 빠르게 재편되는 국제질서 속에서 남북관계를 딱 떨어지는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성찰도 동시에 필요하다.

북한은 러시아와 혈맹 수준의 군사동맹을 맺고 한동안 소원했던 중국과의 관계도 복원하면서 한미일에 대응하는 '북중러 3각 밀착'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를 향해 대화를 하자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한반도 문제는 더 이상 남북 양자 간의 사안이 아닌 셈이다.

투철한 안보관도 국무위원의 미덕이다. 그러나 '주적 논란'으로 안보관을 모두 검증할 순 없다. '적'과 '동지'라는 편협한 선택지 사이에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배제할 때, 그 리스크는 온전히 우리의 몫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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