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라도" 36년 전 남북회담 중 정전…北 '고난의 행군'의 징후
1989년 북측 통일각서 남북회담 중 11분 가량 정전 발생
19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대표되는 경제난 조짐 노출돼
- 양은하 기자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전력이 어려우신가? 촛불이라도…(킬까요?)."
19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극도의 경제난을 겪기 전 북한의 경제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징후들이 이미 남북회담장에서 포착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통일부가 공개한 '남북대화 사료집' 회의록편 2권에 따르면 1989년 3월 2일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열린 고위급회담 2차 예비회담이 정전 발생으로 11분간 중단됐다.
전기가 나가자 남측 대표는 "중요한 회담을 하는데 (전기가) 끊어졌다"며 "촛불이라도 (키자)"라고 제안했고, 북측 대표는 "물 좀 드십시오", "자 물이나 마시면서, 전기 오면 합시다"라며 당황한 듯 상황을 정리하려 했다.
체제 경쟁이 극심하던 시절 남북한의 중요한 회담이 이뤄지는 장소에 전기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은 북한의 경제 사정이 이미 상당히 어려워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통계청과 한국은행 추정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소득수준은 분단 이후 북한에 뒤지다가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중반 사이에 역전했고, 이후부터 점차 격차가 벌어졌다. 하지만 80년대 회담장에서도 체제 경쟁 차원에서 경제적 우위 선전을 위한 남북 간 신경전이 벌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남측 대표는 전기가 나가자 "전력이 좀 어려우신가요? 우리는 요즘 전기가 상당히 풍부하다"면서 "그런 어려움이 있다면 우리가 빨리 남북교류도 많이 확대해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북측 대표는 이에 질세라 "오늘 어떻게 돼서 이렇게 (정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전력은 우리가 옛날에도 남측에 보내주겠다고 그랬다"면서 "전력이야 우리 쪽만큼 하는 데가 있습니까. 대소 수력발전소가 얼마나 많고 화력발전소가 얼마나 많은데"라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1989년 10월 12일 판문점 우리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린 고위급회담 3차 예비회담에서도 이같이 장면이 반복된다.
남북 대표들이 인사하며 환담하는 자리에서 북측 대표는 "금년도에 우리 농사가 잘됐다"면서 "논농사도 잘 되고 또 강냉이 농사도 잘되고 그래서 논빼미(논배미)는 전년에 비해서 한 톤가량 더, 강냉이는 한 톤 오백 내지 두 톤 더 증수될 것 같다. 서해갑문 건설로 그 덕을 금년에 많이 보았다"라고 말했다.
이에 남측 대표도 "벼 가을걷이가 아직 안 됐지만 우리는 한 3900여만섬 생산하고 평년작을 웃돈다"라고 응수했다.
하지만 이같은 신경전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국은 1990년대 들어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뤄낸 반면 북한은 최악의 기근으로 대규모 아사가 발생한,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겪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은 1990년부터 1998년까지 9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지난해 발표된 통계청 지표에선 남북한의 국내총생산(GDP) 격차가 60배, 1인당 소득 격차는 30배로 나타나는 등 북한의 '고난의 행군'으로 무너졌던 경제를 아직 제대로 복구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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