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도 야구가 있었다…'고난의 행군'이 쓸어간 첫 야구장

1990년대 초반 재일동포 지원으로 야구장 건설 추진…경제난에 불발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방북한 리카르도 프라카리 세계야구·소프트볼총연맹 회장 등 세계야구·소프드볼총연맹 대표단.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리카르도 프라카리 회장의 이례적인 북한 방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이 참가한 야구 국제대회는 지난 1993년 호주에서 열린 아시아 선수권 대회가 마지막으로, 오랜 기간 야구 불모지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이 야구를 싫어해 멀리한 것은 아니었다. 북한 야구를 활성화하기 위해 일본의 선진야구를 먼저 접했던 재일동포들의 노력이 있었다. 지난 2015년 개봉한 영화 '그라운드의 이방인'(감독 김명준)에는 재일동포 야구인들이 북한에 야구를 전파하기 위해 공을 들였던 역사가 잘 기록돼 있다.

"총련 야구팀이 잔디 옮겨 야구장 건설…'고난의 행군' 때 보리밭 돼"

북한이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쿠바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실제 북한은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권유에 따라 야구를 도입한다. 1985년 야구협회를 창설한 뒤 1990년 아시아야구연맹(IBA)과 국제야구연맹(IBAF)에도 정식 가입한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야구가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하지만 야구를 가르쳐 줄 곳이 필요했다. 야구를 잘하는 미국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남한에 손을 벌리는 것도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북한이 눈을 돌린 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다.

일본 사회에 뿌리를 내린 총련에는 일본의 중·고등학교와 사회인 야구에서 선진야구를 경험한 동포들이 많았다. 정원덕 전 재일조선인 야구협회장의 주도로 총련 야구단이 결성됐다. 그는 20명의 선수를 모아 삼지연호를 타고 북한으로 향했다. 그렇게 그가 북한을 오간 것만 33번이라고 한다.

총련 야구팀이 북한에 도착해 제일 처음 한 일은 축구장의 잔디를 옮겨 야구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총련 야구팀 소속으로 북한에 다녀온 재일동포 2세 황철진 씨는 "(당시 북한 주민들은) 야구라는 스포츠를 몰랐다"라며 "던지는 방법, 캐치볼부터 가르쳐야 하는 수준이었다"라고 기억한다.

'그라운드의 이방인'에 따르면 북한이 첫 해외 원정을 나섰던 1991년엔 10개 대학팀을 포함해 32개 팀이 국내 리그전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또 재일동포들이 돈을 모아 평양에 '정원덕 야구장' 건설을 추진했다고 한다.

하지만 1990년대 초부터 심화한 북한의 경제난(고난의 행군)이 90년대 중반 정점을 찍었다. 결국 야구장은 지어지지 못했다. 정 전 협회장은 "논밭이 모자라니까 주민들이 야구장 안에 보리를 심어서 보리밭이 됐다"면서도 "비참했지만, 야구보다는 먹는 것이 먼저니까…야구장은 둘째가 되어도 반대할 수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북한에서 야구가 지워졌다.

지난 2015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사전회의에 참석한 장정남 북한 대학생 체육협회 부위원장이 경기장 시찰을 위해 광주 기아챔피어스필드야구장을 찾은 모습. 2015.4.12/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완전히 꺼지지 않은 야구 불씨…북한이 먼저 '스포츠 외교' 나설지도 주목

그래도 북한은 야구의 불씨를 완전히 꺼뜨리진 않았다. 야구보다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높은 소프트볼이 명맥을 이어갔다. 실제 북한 여자소프트볼대표팀은 2000년대까지도 국제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1991년 '국제 소프트볼연맹'의 회원국으로 가입한 북한의 소프트볼 대표팀은 2006년 중국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대회와 같은 해 12월에 열린 아시안게임, 그리고 2007년에 열린 올림픽 예선에 참가했다.

북한의 관영 언론매체는 2010년 5월 모란봉 소프트볼 경기장에서 열린 '만경대상' 체육경기대회의 여자 소프트볼 경기를 중계하기도 했다.

국제대회 참가는 아니지만 2013년 9월 조선중앙TV는 남포 야구경기장에서 청년 야구 선수권대회가 열린다고 보도했고, 2015년엔 '공화국 야구 선수권 대회'와 동평양 경기장에서 열린 '기관차 체육단'과 '대령강 체육단' 간의 야구 경기 소식을 알리는 등 야구도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음이 확인되기도 했다.

이번 프라카리 회장의 방북은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체육 강국'을 목표로 스포츠 육성에 지대한 관심과 투자를 다시 확대하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완전히 꺼지지 않은 야구·소프트볼의 불씨가 다시 살아날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야구 종주국이 미국임을 감안하면 야구에 대한 북한의 관심이 되살아난 것이 외교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youm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