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Out 인터뷰] '분단'을 재감각하는 밀레니얼 세대 시각예술가들
가상 박물관 '분단이미지센터' 만든 5인
- 양은하 기자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미학적 곤궁 상태'
분단된 한반도에서 지난 70년간 생산된 '분단 이미지'에 대해 젊은 시각예술가들은 이렇게 규정했다. 악수를 나누는 남북 정상, 총을 맞든 남북 군인, 작별 인사하는 이산가족, 굶주린 북한 어린이 등 '분단'을 생각했을 때 떠올리는 이미지의 수는 많지만 획일화돼 있다는 것이다. '통일'이라는 지향을 담은 이미지 혹은 북한에 대한 편견을 전시하는 언론, 대중문화, 예술 속에서 분단에 대한 감각은 '일차원'을 벗어나기 힘들다.
시각예술가 3인(반재하, 오로민경, 조기현)과 예술기획사 더블데크웍스의 기획자 강재영, 김솔지 등 5인은 이렇게 "납작하고 평평한" 분단에 대한 감각을 깨우기 위해 지난해 가상의 박물관 '분단이미지센터'를 만들었다. 미래에 탈분단된 어느 시점에 개관할 이 박물관에서는 분단 종식 이전에 생산된 이미지와 텍스트를 수집하고 전시한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생인 이들은 특히 '밀레니얼 세대'가 주체가 되어 '분단을 재감각'하고자 한다. 전쟁을 겪지 않았지만 분단을 일상으로 살고있는 세대의 '분단 인식'은 이전 세대와는 다를 수밖에 없을 테다. 더욱이 통일이라는 목표가 힘을 잃어가는 현실에서 탈분단에 대한 새로운 서사를 채워가는 예술 실천은 언젠가 도래할 미래에 대한 능동적인 대처가 될 수 있다고 이들은 기대한다.
그 결과물로 지난해 12월 첫 전시 '환영으로 채운 굴과 조각보로 기운 장벽 탐사대'를 선보였다. 북한을 어두운 동굴로 상정하고, 관람자가 탐사대가 되어보는 전시에서는 스토리텔링 형식의 게임, 배우의 소설 낭독 영상, 마음의 리듬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설치물, 북한지역에서 활동한 한 인물을 따라가는 영상으로 분단에 대한 감각을 환기한다.
이들이 제시한 '분단'을 감각하는 방식에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통일이라는 허약한 남북의 미래상만 남은 상황에서 언제, 어떤 형태로 올지 모르는 탈분단을 대비해 새로운 이야기를 지금부터라도 채워간다는 점에서 이들의 활동이 주목된다.
"어느 시점에 분단이 해체된다면, 단일하고 고정된 '통일'이라는 미래 이미지는 참으로 곤궁한 상태일 것이다. 그래서 기존에 생성된 분단과 관련된 이미지들을 통해서 분단을 재감각하거나 재사유하고, 유실된 문화적 유산과 분단으로 사라진 관계, 기억, 세대 간 단절을 해소하는 가능성을 탐색한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분단이미지센터'는 어떤 곳인가.
▶김솔지) 가상의 박물관이다. 미래에 탈분단된 어느 시점에 개관할 이 박물관에서는 분단 종식 이전에 생산된 이미지와 텍스트를 수집하고 전시한다. 이를 통해 '분단'과 '통일'에 대한 고착화된 틀에서 벗어나, 분단에 관한 다른 감각을 일깨울 수 있다. 밀레니얼 세대가 주체가 되어 분단을 재감각하는 예술 실천이라고 보면 된다.
-왜 '분단 이미지'에 주목했나.
▶강재영) 지난해 1월부터 모여 분단상황에서 생산된 '이미지'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회의를 할수록 분단을 드러내는 시각 이미지는 당혹스러운 수준으로 많은데, 그 속에서 묘사된 북한의 모습은 너무나도 납작하고 평평하다는 것에 동의하게 됐다. 또 우리 삶에 이렇게 깊이 영향을 주고 있는 분단인데, 이를 감각하는 방식은 너무 일차원적이거나 극단적이었다. 분단을 감각하는 방식이 매우 제한돼 다차원적으로 인식하기 어려운 현 상황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리가 접하는 분단 이미지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달라.
▶김솔지) 분단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역사적인 사진이나, 통일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수렴하는 몇 개의 이미지만을 생각하곤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악수하는 남북 정상회담이나 분단의 상징인 철조망,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사진 등이다. 언론을 통해 생산된 이런 이미지는 대중문화와 대중매체, 그리고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고, 고정된 이미지를 통해 사람들의 인식도 고착화된다. 우리는 이런 상태를 '미학적 곤궁'이라고 칭한다. 또 북한은 실재하지만, 우리가 직접 가볼 수 없다 보니 상상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사실 없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은 존재이니까 북한에 대한 상상이 일차원인 것이다.
-한반도 분단이 종료된 미래 시점에서 과거 분단 이미지를 수집한다고 설정한 것은 어떤 의미인가.
▶강재영) 분단을 감각하기 어려운 현재, 어떤 미래의 시점에 분단이 종료되었다고 가정하는 건 우리한테 매우 중요하다. 미래에 탈분단된 어느 시점에 개관할 수 있는 장소라는 설정 속에서 상상의 탈분단 서사를 채워나가는 예술 실천의 틀이 만들어진 것이다. 탈분단에 대한 상상을 통해, 탈분단이 이루어진 어느 시점에서 바라볼 과거를 능동적으로 수집하고 이를 2022년 분단된 대한민국 서울에서 여러 사람들과 나눔으로써 분단을 재감각하거나 재사유하고, 유실된 문화적 유산과 분단으로 사라진 관계, 기억, 세대 간 단절을 해소하는 가능성을 탐색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존 예술에서 '분단'을 다루는 방식, 접근법과는 다른가.
▶김솔지) 기존의 분단을 다룬 시각예술 프로젝트는 주로 분단이 만들어낸 경계에 주목해왔다. DMZ라는 미지의 공간이 시각예술가에게 상상의 공간이 되어 왔던 것이다. 이는 시각예술뿐만은 아니다. 혹은 북한 미술품이나 북한 시각 문화 등을 직접 소개하며 '이데올로기 리얼리즘 미술'을 나열해 전시하는 정도였다. 최근 젊은 작가와 기획자들은 분단을 좀 더 다각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우리의 접근방식도 또 다른 참조점이 될 거로 생각한다.
-'밀레니얼 세대'가 주체가 되어 분단을 재감각한다고 했다.
▶김솔지) 전쟁 이후 세대는 분단의 과정이나 전쟁을 겪지는 않았지만 분단된 나라에서 살고 있고 그것이 일상이다. 하지만 분단을 매일 겪고 있음에도 감각하기는 어렵다. 이들은 분단을 보통 북한의 핵무기 도발이나 경제 제재 등의 '사건'으로서, 혹은 종편 방송에서의 에피소드로, 유튜브에서 소재화한 영상으로 접하는 경우가 많다. 길을 지나며 한 초등학생이 "너 모자 김정은 것 같다"라고 친구에게 말하는 것은 그다지 특이한 일이 아니다. 이렇게 일상적인데도 "분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라고 물으면 대답은 아주 간결하거나 비어있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탈분단 시대의 새로운 서사를 채워 넣는다면, 실제로 탈분단이 일어난 어떤 미래에 대해서 그 어떤 주체, 세대보다도 능동적이고 미래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단을 감각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조기현) 분단이 장기화되면서, 이를 주제로 한 예술 실천은 통일이라는 단일한 목표를 수행하는 이미지로 수렴되거나, 분단으로 발생한 북한에 대한 인식 오류나 편견을 전시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탈북민 패널의 예능프로그램에서 북한 내부의 가장 자극적이고 소비적인 일상을 반복재생하는 식이다. 이는 남북 사이의 문화적 간극을 심화시키고, 남과 북의 허약한 미래상을 생산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이는 북한을 거울삼아 남한을 성찰하도록 하는 데에 한동안 유효했지만 가치가 점점 다분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어느 시점에 분단이 해체된다면, 단일하고 고정된 '통일'이라는 미래 이미지는 참으로 곤궁한 상태일 것이다.
▶김솔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과 같은, 북한에 존재하는 인간을 조명하는 방식의 미디어 접근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 드라마가 많은 공감을 받고 국제적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환상으로만 존재하는 공간에 드라마라는 서사를 채워 넣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궁핍하고 낡은 분단의 이미지에, 새로운 이미지들을 채워 넣어 분단에 대한 환기를 시킬 수 있고 이것이 다양하고 새로운 분단의 이미지가 할 수 있는 역할이다.
▶오로민경) 분단을 마주한다는 것은 일상 속의 마음과도 관계되어 있다. 분단된 사회가 마음에 작동하는 감각을 성찰해내는 과정 속에서 사회의 갈등을 직시하고 해결해 나갈 힘도 함께 길러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1년여 준비를 해서 지난해 12월 첫번째 전시 '환영으로 채운 굴과 조각보로 기운 장벽 탐사대'를 선보였다.
▶김솔지) '탐사대'는 우리 안의 분단('환영으로 채워진 미지의 동굴 속 조각보로 기운 장벽')을 새롭게 감각할 수 있는 주체다. 관람객이 '탐사대'가 되어 공간 속에 유기적으로 배치된 작품을 직접 작동하고 시청각과 촉각 등을 활용해 감각함으로써, 분단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재편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낼 수 있기를 기대했다. 이를 위해 전쟁, 평화, 군사접경지역, 예술 기관 등 어떠한 상징적 의미도 부여되지 않은 화이트 박스 형태의 어두운 공간에 4명의 시각 예술가의 작업을 배치했고 탈분단된 미래의 시점에서 과거의 분단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조각보로 기운 장벽'은 남과 북 사이의 굳건한 장벽을 의미한다. 파편화된 북한, 분단에 대한 인식 조각들을 새롭게 채워나갈 때만이 남북 사이 장벽을 새로운 환영으로 비춰주지 않을지 생각했다.
-4개의 작업에서 관객은 어떤 방식으로 북한을 감각하게 되나.
▶반재하) 스토리텔링 게임이라는 형식을 통해 관객들에게 분단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소소한 웃음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남한은 자유로운 땅인 것 같지만, 그 자유의 끝이 분명한 땅이기도 하다. 북한과 관련된 정보는 여전히 감시와 검열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남한의 태도, 아이러니가 유머 코드가 될 수 없을지 고민했다.
▶오로민경) 한국사회 안에서 작동하는 '분단의 이미지'가 사회 구조 안에서 혐오와 배제에 대한 정당성을 만드는 동력이 된다. 이 힘들이 작동하는 문화 안에서 각 세대가 경험해온 폭력의 기억과 이미지들을 바탕으로, 소리가 공간에 일시적인 배경으로 울려 퍼지는 작업을 제작했다. 묻혀 있는 것 같지만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는 트라우마를 마주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조기현) 1996년에 쓰인 김소진의 '목마른 뿌리'를 배우가 낭독하는 영상작업을 했다. 2002년의 통일된 한반도를 배경으로 한 미래소설이다. 영토는 통일이 되었지만, 남북에서 각각 살았던 형제의 경계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소설은 그 경계를 '뿌리'라는 단일한 감각으로 통합하지만, 나는 그 경계 자체의 의미를 확장하고 싶었다.
▶정승규) '네눈박이'라고 불렸던 구한말의 호랑이 사냥꾼 양코프스키라는 실존 인물을 따라가면서 그와 관련된 요소들을 덧붙여 제작한 영상작업이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약간은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지금의 디지털 미디어 현실 속에서 무언가를 선명하게 감각하려고 할수록 그 대상이 멀어지고 흐려진다. 그 대상이 지금은 닿을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것이라면 더욱 기술과 미디어에 의존하게 돼서다. 이것이 지금의 '분단'이라는 이미지를 다른 형태로 상상하고 감각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길 기대했다.
-자체 평가, 후기를 남긴다면.
▶오로민경) 한국 사회에 경직된 분단 이미지가 변화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이러한 만남과 대화를 통해서 남한에서 북한에 관한 예술, 연구 등을 수행한다는 의미가 '북한'이라는 나라 자체를 다루는 작업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남북 관계에서 발생한 흔적, 접경 지역, 전쟁의 기억이 남겨진 공간과 사람에 대한 기록, 조명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로써 기존에 평화 예술이나 DMZ 예술, 북한 미술 등, 미술계 내 분절된 분단 인식에 균열을 내는 역할을 한 것은 아닌지 자평해본다.
▶반재하) 분단되고 정보와 지리적 접근이 제한된 상태에서 북한은 마음껏 상상해도 되는 공간이 되었다. 손쉽게 분단과 북한에 대한 이미지를 자의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는데 이게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지 고민됐다. 분단은 미학과 윤리 사이에 균형이 필요한 소재인 것 같다.
-전시 외에도 웹진, 초빙강연, 분단 이미지 아카이브 등을 하고 있다. '분단이미지센터'는 앞으로 어떤 공간으로 꾸려지나.
▶오로민경) 전쟁 이후를 살아가는 현재 세대들이 겪는 분단감각, 우리에게 주어진 분단의 당사자성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발생될 수 있는 유연한 공간이 되기를 지향한다.
▶조기현) 도래하지 않은 어떤 시점을 다양한 서사로 채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북이라는 문제에 가두지 않고, 분단이라는 개념이 우리 삶에 재편되는 다양한 모습을 떠올리기를 바란다. 분단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계획하고 있는 다음 활동은.
▶김솔지) 우리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고 싶다. 우리의 예술 실천을 통해 기존에 서로 알지 못하는, 국내외 분단 관련 MZ세대 예술가, 연구자, 활동가들과 남북 분단 이미지와 연구 내용을 공유해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분단과 분단 이후를 바라보는 시야를 확장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
-5명은 어떻게 함께 하게 됐나.
▶강재영) 모임은 반재하 작가가 먼저 제안했다. 반 작가는 북한을 대하는 남한의 태도를 다루는 작업을 해왔다. 미국에서 생산된 김정은 굿즈를 해외직구하면서 세관, 국정원과 얽혀 일어나는 상황들을 기록해 작품으로 만들었다. '분단'으로 더 큰 프로젝트를 꾸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그게 '분단이미지센터'의 시작이었다. 나머지 기획자와 작가들에게도 '분단'은 언제나 관심에 닿는 주제여서 합류하게 됐다.
yeh2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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